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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27) 수국(水菊) 옆에서
[문상금의 시방목지](27) 수국(水菊) 옆에서
  • 문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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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7.05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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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水菊)은 물집이다, 곪을 대로 곪았다가, 비로소 터져 나오는 꽃이다, 한라산에도 바다에도 내 마음에도 항상 물집들은 용암처럼 부글부글 곪다가 순간 피어오른다, 순간 훨훨 날아오른다, 순간 솟구친다, 한 마리 푸른 새처럼, 하늘의 꽃 되어, 물집에서 꽃으로의 변신이다, 재탄생이다’
 

수국(水菊) 옆에서
 

문 상 금
 

천 개의 수국이었다.
그것은 다닥다닥 물집들이 터질 때
와와 천 개의 함성이었다

때로 가슴에 묻은 말들을 품은
천 개의 오름이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수국(水菊) 꽃길

물 애기
항문에 피어난
열꽃처럼

진물과 피고름이
수국으로 피어
더 압도적인 이 길에서
나는 갈 길을 잃고
오래도록 서성거렸다

내 안에서 자꾸만 커져가고 곪아가는 이것들은
언제 활짝 피어날까,

꽃으로 피어나
훨훨 날아오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걸어보는 길

저마다의 가슴엔
천 개의 물집들이 있다
 

-제4시집 「꽃에 미친 女子」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바람이 힐끗 스치자, 향(香)이 날아들었다, 앞마당 흰 치자 꽃, 짙은 그 향(香)이, 그건 축축함의 전령사랄까, 스멀스멀 다가오는 장마의 시작점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지난 7월 2일에는 안타깝게 작고하신 김재윤 시인의 영결식이 돈내코 법성사 입구 가족묘지에서 있었다, 2020년 열린시학 겨울호로 등단하신 김시인은 ‘어머니의 손’ 외 8편의 등단작이 결국 유작시가 되었다, 고맙게도 그 등단작품이 실린 책을 나한테 보내온 터라 찬찬히 읽었었다. 뭐랄까, 그 시작품들은 화려했던 방송활동이나 정치활동과는 아주 별개의 시인 김재윤의 내면이 적나라하게 투영되고 있었다, 어둡고 슬프고 착잡하고 억울하고 혹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을 원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겁게 다가왔었다.

창밖에는 물안개비가 촉촉이 내리기 시작했다. 느닷없이 전화가 울렸다, 사랑 조옥순 선생이 돈내코에 이미 도착하였는데, 아직 장지는 찾지 못하였고, 안 올 거냐며 연거푸 묻는 것이었다, 실은 여러 가지 착잡한 사정으로 갈 상황이 안 된다고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물청소를 시작하였다, 답답할 때 한바탕 물청소를 하면 온몸이 시원해지곤 하였다, 그러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통화 말미에 ‘나 죽어도 안 올 거냐’ 하는 울먹이듯 한, 사랑 선생의 목소리가 또 가시처럼 목에 걸려서,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준비하고 있겠다고 하니, 곧장 태우러 와 주셨다.

한라산 자락 돈내코로 가는 길은 그 누구의 생각이었을까, 누가 심었을까, 가도 가도 수국꽃길이었다, 제주도에선 어딜 가나 등 뒤로 따라붙는 수평선처럼, 이 곳 돈내코 장지로 가는 길은 물집 같은, 무덤 같은, 파란 지붕의 집 같은, 수국이 한창이었다, 산수국도 한가득 폈고 개량수국도 도열하듯 양 길가에 지천으로 피어있었다.

‘아 그 징징하도록, 징그럽도록, 내 마음의 바다에도 산수국이 피었다 졌다 했었지, 그 파란 꽃잎이 바다 물결에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할 때마다, 나는 깊어지고 짙어지고 짠물에 절여져서, 불안했던 마음은 편안해지고 다시 더 편안해져서,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

‘모여있는 이유를 알겠다, 별 총총, 죽어서도 한없이 외로운 사람들, 나직한 봉분 하나 끌어안고, 온기 나누며, 모여서 살아간다’

돈내코에는 무덤들이 셀 수 없이 많이 있었다, 열 바퀴 스무 바퀴를 돌아도, 시간이 일러서 그런지 장지를 좀처럼 찾을 수 없었고, 멀리 수평선처럼 수국 꽃만 잔뜩 우리를 따라붙었다.

한시 반에 도착예정이라 들었는데 설상가상으로 효돈 성당에서 영결미사를 올린다음 네 시 무렵에 도착한다고 기별이 왔다. 두 시간 정도를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사랑 선생과 다시 세시 삼십분에 만나는 것으로 하고 나는 집으로 와서 전에 읽었던 열린시학 문학지를 부리나케 꺼내 김재윤의 시 아홉 편을 찾아내었다.

다시 시를 읽어보며 돌이켜보니, 고인과는 크고 작은 인연들이 셀 수 없이 많았음이 떠올랐다, 서귀포 문협 초창기 시절 그 당시에는 탐라대에 재직하시면서 문협 회원으로 평론을 쓰셨고 특히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아서 ‘시로 봄을 여는 서귀포’ 행사시에는 좋은 의견들을 많이 내주시곤 하였다, 하루는 임원회의에 오셨는데, 이마와 얼굴에 수국 꽃처럼 빨갛게 물집이 서너 개 잡혀 핏물이 배어나고 있었다, 깜짝 놀라 ‘피가 납니다’ 했더니, 오늘 회의 참석하려고 모처럼 시간을 낸 김에 피부과에 들려서 점을 몇 개 빼고 곧장 회의하는 데로 달려왔다는 것이었다, 얼마 후부터는 텔레비전에 출연해야 한다며, 수줍게 웃던 그 빨갛고 흰 얼굴, 그 후에 정말, ‘책책책, 느낌표’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셨다.

그것뿐이랴, 내가 서귀포지역 초중고 어머니회 연합 협의회장을 하며, 성산포부터 모슬포까지 전 학교 운동장 시설과 도서관 확충 및 도서 구입에 매진할 때, 엄청난 관심과 지원을 해주시기도 하셨던 것이다, 결국은 책과 글과 시가 그렇게 연결이 되었던 것이었다.

시인들이 작고하셨을 때 나는 그 분들의 시를 시낭송으로 명복을 빌어주곤 한다. 김광협 시인작고 시에는 ‘유자꽃 피는 마을’을, 허은호 시인 작고 시에는 ‘과원에서’ 라는 시를 낭송해 주었다.

아홉 편의 시 중에서 가장 따뜻한 ‘어머니의 손’ 이라는 시를 골라서 시낭송으로 옮겨 적고 동홍동에 사는 김정필 선생이 마중 나와서 이번에는 곧장 법성사 입구 가족묘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서울 정치계와 제주 정치계에서도 많이 와 있었다, 내 간절한 소망이 장례위원장과 유족 대표 측에 전달되어서 흔쾌히, 예정에 없었던 시낭송을 중간에 넣어 주셨다. 아주 고마웠다.

시낭송하는 내내 하늘과 땅과 사람과 새들과 나무들, 모든 것들이 일제히 침묵하였다, 고작 육 개월 정도, 비록 짧은 시인의 길이었지만, 얼마나 가치 있는 시간이고 삶이었을까, 한 자 한 자 피 토하듯 써내려간 그 처절한 몸부림은 또 이렇게 시로 남아 그 누군가가 시낭송으로 들려주며, 이 숨죽인 순간, 모든 사람들에게 약하면서도 강인한 시인의 본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니 같은 시인으로서 마지막 가는 길, 시인으로서 미련 없이 잘 가라고, 명복을 빌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나마 안도하였을까’, 비로소 쏟아지는 유족들의 흐느낌을 뒤로하고, 수국꽃길을 걸어 나왔다, ‘잘 자라는데, 꺾어다 삽목 해봐도 좋은데’, 사랑 선생이 가만히 쳐다본다, ‘아니요, 제 마음 밭엔 이미 수국 뿌리가 한가득 내렸고 잎이 자라고 꽃이 피어나고 있어요’

‘수국처럼만, 꼭 수국 꽃처럼만 곪을게, 터질게, 피어날게, 내 온 몸에 돋는 물집들아, 다닥다닥 피어나 주어서 고마워, 크게 빵 터지지 않아서 너무 고마워’

이승과 저승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불안과 안도의 경계인, 수국 꽃길을, 참 오랜만에, 징징하도록 걸어 보았다. [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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