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밝히는 제주오롬 이야기
몽골어로 녹오롬 ‘다음의 오롬’이란 말의 ‘따라긴’에서 유래한다
2020년 12월 7일, 큰 눈이 내린다는 ‘대설大雪’에도 따라비는 맑았다. 불과 한 달 전만 하여도 허리에 차오르던 은황색銀黃色 황새가 물결치던 따라비 자락에 황새를 베어내니 털 깎인 양처럼 말끔하다. 표선면 성읍리는 제주목, 대정현과 함께 민속촌으로 지정, 보호되는 곳이다.
성읍성에는 관아, 제주 초가와 돌담들이 옛 모양으로 보존되어 있다. 그러니 당연히 초가草家를 새로 덮을 황새가 필요하다. 또한 표선면 소재지 표선리에도 민속촌박물관이 있는데 거기에도 초가를 덮을 황새가 필요하니 따라비 자락의 황새를 베거나 구입하여 쓸 것이다.
따라비로 가는 길은 ‘유채꽃 큰 잔치’가 벌어지는 녹오롬 입구에서 유채꽃, 왕벗꽃이 피어나는 녹산장 길이 끝나는 성읍리 4거리에서 좌회전함과 동시에 좌쪽에 ‘따라비 가는 길’이란 조그만 팻말을 보며 시멘트 농로를 따라가면 된다. 오롬을 왼쪽으로 바라보며 대나무, 후박나무 등의 푸른나무들이 늘어선 시멘트 길 너머로 따라비오롬이 보인다.
따라비에 봄은 계단 틈새에 보라 빛 제비꽃이 피어나고 철쭉꽃이 한 바탕 잔치를 치르고 나면 봄이 무르익는다. 골짜기에는 돌배나무, 가막살,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난다. 따라비 5월은 천상의 춘국春國이다.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종달새가 울어울어 가는 봄이 아쉬운 곳이다. 따라비는 언제 찾아도 좋지만 특히 억새가 피어나는 10월부터 종달새가 우는 5월까지가 좋다.
따라비를 오를 때는 남쪽 기슭을 따라가는 게 좋다. 정상 우측 끝자락에는 한겨울에도 철쭉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언덕을 오르는 조붓한 오솔길 남쪽 기슭에는 겨울에도 몇 그루 철쭉이 피어난다(진달래를 좀처럼 보지 못한 제주사람들은 철쭉을 진달래로 잘못 아는 경우가 많다). 따라비 오롬 너머 남쪽은 표선면 마른영아리와 마주한 남원읍 물영아리도 환히 보인다.
이제껏 따라비의 이름에 대해서 몇 가지로 전해진다. ➀지아비 지어미가 서로 따르는 모양이라서 ‘따라비’ ➁땅하래비, 땅애비라 뜻에서 ‘따래비’, ➂민속학자 김인호는 “<다라-달達>이라는 고구려어의 ‘높다’와 제주어 오름을 뜻하는 ‘비’의 합성어로 ‘다라비’라 하였다.”는데 턱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가시리 오롬들 중에 비고 107m의 따라비오롬 인근 2~3km 안에 구두리117m, 여문영아리134m, 큰녹오롬125m, 병곳오롬113m 등에 둘려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어의 ‘달’은 제주어 ‘ᄃᆞᆯ’로 ‘들판’에서 온 말이고, 한자로는 ‘월月’(월랑봉, 은월봉 등)로 쓰였다. 이를 풀어 쓴 말이 ‘드르(들)’고 한국어에서는 ‘다리’로 쓰였고 한자로는 교橋로 쓰였다. ➃필자가 전하는 따라비의 뜻은 이제껏 누구도, 어디서도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로 아래와 같다.
‘따라비’ 서쪽은 녹오롬과 갑마장길(巡還路)로 이어진다. 갑마장은 제주 10개所場(구좌면1소장, 조천면2소장, 제주읍3소장, 제주-애월면4소장, 애월면5소장, 한림-한경면지역6소장, 안덕면7소장, 중문면8소장, 남원면9소장, 표선면10소장) 중 갑마장(갑甲종으로 뽑혀 온 마馬를 키우는 목장場)을 운영한 헌마공신 김만일에게 맡겨진 녹麓(산기슭록, 산림山林, 산감山監)이 주관하던 곳이다.
‘녹麓오롬’의 명칭은 ‘녹산장麓山場’에서 유래한다는데 이제껏 ‘사슴록鹿’자로 잘못 써온 것이다. 그래서 ‘녹산장鹿山場’이나 ‘大鹿山큰사스미’로 잘못 불린 것이다. ‘녹麓오롬’ 일대는 김만일에게 ‘녹장麓長’의 직분職分을 주어 맡겨진 곳이 갑마장이다. 여기가 정의군 서쪽 끝인 표선면-10소장, 북쪽의 구좌면-1소장, 서쪽의 조천면-2소장, 남쪽의 남원면-9소장 등 4개소장과 다루치 직할의 성산면소장까지 제주의 절반인 한라산 동쪽의 5곳 마장의 중심지로 서쪽 10소장-표선면 서쪽 끝인 가시리 녹오롬과 그 다음의 오롬인 따라비오롬까지 소재한다.
‘따라비’라는 말은 제10소장인 표선면 갑마장의 시작인 서쪽 끝 ‘녹오롬 다음의 오롬’이란 말이다. 제주어를 닮은 데 제주어가 아니고, 만주어를 닮은 데 만주어도 아니어서 몽골어에서 근원을 알아보니 딱 들어맞았다. 몽골어 ‘따라긴-오롬Дараагын-уул’은 ‘다음의 오롬’이란 말이다. 여기서 ‘따라’는 ‘다음’, ‘긴’은 ‘~의’를 뜻하니 ‘따라긴오롬’은 곧 ‘녹오롬 다음의 오롬’이다. 갑마장의 서쪽 끝은 녹오롬이고 그 다음의 오롬이니 ‘따라비오롬’이 맞고 몽골어로 ‘다음의 오롬/따라긴-오롬Дараагын уул’인 것이다. 그러므로 ‘따라긴+오롬=따라긴오롬이다.
➀외몽골은 러시아어에서 부족한 몇 글자를 첨가하여 몽골어를 표기하고 ➁내몽골은 중국자치성으로 중국어를 빌어서 표기하고 ➂러시아 브리야트 몽골자치주는 러시아어 그대로를 몽골어로 표기한다. 혹시나 싶어 러시아어를 살펴보니 ‘다음’은 ‘슬레듀시сле́дующий’니 전혀 아니다. 그러므로 ‘따라비’는 a)‘녹오롬 다음의 오롬’이라는 ‘따라긴’에서 왔거나 b)몽골어 ‘따라긴’의 변형으로 ‘다음을 뜻하는 따라’+‘제주어 오롬을 뜻 하는 비’를 더한 걸로 볼 수도 있다.
녹산장-가시리 아래는 옛날 수산진과 접하는데 그 북동쪽에는 표선면 좌보미가 있고 그 길 건너에는 성산면 수산리다. “왜 제주도 10개 소장 중에 성산면은 빠졌을까?” 생각해보았다. 수산리 왕뫼(大王山)는 몽골목마총관부 다루치가 주재하던 곳이다. 그러기에 성산면은 다루치의 직할 소장이었기에 넘버를 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비 본체는 복합형 굼부리로 정상의 3개 원형굼부리와 외부의 3개 말굽형굼부리로 이루어졌다. 원형굼부리에는 억새, 황새가 너울거리고 이따금 푸른 소나무, 사스레피 몇 그루가 보인다. ➀동남쪽 낮은 말굽굼부리 안에는 참나무, 국수나무, 망개, 찔레, 인동줄기 등이 엉켜 있다. ➁동북쪽 말굽굼부리 동봉과 북봉 사이로는 갑마장 북쪽길이 이어진다. 그 벌판(草原)을 따라 서쪽으로 쭉 나가면 갑마장 서쪽 끝인 녹오롬으로 나가게 된다.
따라비 남서쪽 언덕은 큰 비탈을 이루며 남쪽 입구로 나간다. ➂남쪽으로 난 굼부리는 입구 계단이 있는 골짜기로 곧 따라비오롬 입구에서 정상을 오르내리는 곳이다. 그리고 그 입구의 3거리에는 ᄍᆞᆯ븐갑마장 남동쪽에서 녹오롬으로 나가는 길이다. 이 길은 북서쪽 초원길과 달리 숲속 길을 따라 녹오롬으로 나가는 길이다.
따라비오롬은 갑마장 동쪽 끝이고 그 서쪽 끝은 녹오롬이다. 따라비는 용암이 분출할 때 중앙에 3번의 폭발로 3개의 원형 굼부리가 생겼고 그 때 용암 뻘이 따라 흘러가면서 퇴적한 것이 3개의 말굽형 굼부리로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 따라비 오롬에는 다른 곳보다 붉은 송이-쇄석물이 많은데 남쪽 입구에는 이 화산 돌들을 세워 놓았고 원형 굼부리 안에는 누군가 돌탑들을 쌓아 놓은 게 보인다.
2020년 12월 7일, 대설 절기에도 따라비 남쪽기슭엔 철쭉이 꽃피었다. 전망대 아래, 동남쪽을 바라보니 푸른 무밭이며 바람 막힌 기슭에는 겨울 햇살이 따스하다. 틈새에는 아직도 보랏빛 당잔대가 피어있다. 따라비오롬은 억새, 국수나무, 찔레, 인동초, 망개, 가막살, 참나무가 이미 잎이 지었는데 소나무, 삼나무, 편백나무, 사스래피는 아직도 푸르다. 겨울 속 따라비에서 제주의 푸른 계절을 보며 춘국春國을 꿈꾼다. 나의 봄은 제주의 오롬들이 자기의 이름을 찼고 그 이름이 불려질 때이다.
2020년 12월 7일, 대설 절기에도 따라비 남쪽기슭엔 철쭉이 꽃피었다. 전망대 아래, 동남쪽을 바라보니 푸른 무밭이며, 바람 막힌 기슭에는 겨울 햇살이 따스하다. 틈새에는 아직도 보랏빛 당잔대가 피어있다. 따라비오롬은 억새, 국수나무, 찔레, 인동초, 망개, 가막살, 참나무가 이미 잎이 지었는데 소나무, 삼나무, 편백나무, 사스래피는 아직도 푸르다. 겨울 속 따라비에서 아직도 남은 제주의 푸른 계절을 보며 춘국春國을 꿈꾼다. 나의 봄은 제주의 오롬들이 자기의 이름을 찼고 그 이름이 불려질 때이다.
풍경화 감상하듯 그려볼 수 있네요.
비교 언어학을 동원한 오름명 설명이 참 재미 있고
오름 해설이 경이롭게 까지 여겨집니다.
Than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