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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107) 걸어서 동네 한바퀴
[자청비](107) 걸어서 동네 한바퀴
  • 송미경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08.10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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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수필가
송미경 수필가
▲ 송미경 수필가 ⓒ뉴스라인제주

주말 오후 느긋한 마음으로 동네 산책을 하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옛 의료 문화 행정의 중심지로 제주의 명동이라 불릴 만큼 한때는 번화가였다. 지금은 신제주 상권의 개발과 신규택지개발로 많이 가라앉은 상태다. 추억을 더듬으며 마음의 여유를 갖고 주변 풍경을 들여다본다. 늘 마주하는 풍경이 익숙한 골목길에 들어섰다. 사람키보다 훨씬 큰 나무들이 삐죽하게 담장을 넘었고 그 뒤로 푸른 하늘이 배경처럼 깔려 있다. 한때 번성하던 골목 상권은 예술가들의 작업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저마다의 가게엔 창작한 다채로운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문득 예술가는 배고프다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앞을 보니 복합문화공간인 ‘이아’가 보인다. 예전 제주대학교 병원이 있던 곳이다. 예술공간 ‘이아’는 전시실과 창작실등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잘 갖추어졌다. 안으로 들어서자 2층은 회의실이 있고 전시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 되 있었다. 기회에 작품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덤으로 얻을 수 있었다. 이아를 나와 천천히 걷다 보니 제주 최초의 근대식 학교인 북초등학교에 이르렀다.

늘 이곳을 지나면서 김영수 도서관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본교 출신 김영수 선생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도서관이다. 2019년 마을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옛 건물을 그대로 살려 리모델링한 후 학교 도서관으로 마을 도서관과 병행하고 있다. 색감과 문양이 고풍스러운 데다 여러 가지 서적들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해 진다. 오늘의 나를 키워준 것은 동네의 자그마한 도서관이다. 라고 한 빌게이츠의 어록이 떠오른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는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은 이미 부자가 된 듯 따뜻하다. 오후 5시부터 9시까지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하니 자주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도서관을 나와 칠성통으로 들어섰다. 주말이라 북적거려야 할 상권이 조용하다. 상인들은 하나같이 경기가 좋지 않다고 아우성이다. ‘코로나19’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오랜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하루속히 경제가 활성화 되어 상인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몇 발자국을 걸으니 나의 단골 책방이기도 한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인 우생당을 찾았다. 해방직후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에서 명맥을 이어온 제주문화사의 큰 역할을 해 온 곳이기도 하다. 발길 닿는 데로 현란한 소리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섰다. 주말이라 목관아 망경루 앞 광장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색소폰 동아리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무대에 서기 위한 리허설이 한창이다. 잠시 그 자리에서 감상을 하다 보니 음악에 심취되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고즈넉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마치 한옥마을인 여행지에 놀러 온 기분이다. 주말이면 늘 마주하는 장면이지만 볼 때마다 새롭게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곳에 터를 두고 생활 한지도 어느덧 수 십여년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정감이 든다. 또한 아이들과의 숱한 추억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저곳을 두루 돌아보고 돌아서는 길, 오래전 목관아 연못으로 귀향 보낸 금붕어가 생각나 연못 속을 살폈다. 하얀 얼룩무늬가 인상적이다. 비좁은 우리 집 수족관에서 지내다 넓은 이곳으로 보내졌다. 연못을 제 집 삼아 조화롭게 노는 모습이 아름답다.

옛 시간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 늦은 오후의 들려오는 풍경소리는 저절로 마음을 설레게 한다. 돌아오라 소렌토로, 따스한 감성이 묻어있는 노랫소리, 주말이면 공짜로 주어지는 소리에 내 귀는 매번 호강 중이다. 문화가 있는 삶은 참으로 풍요로운 것이다.

변할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이고 변하지 않는 것들은 그대로 간직한 성짓골 마을. 처음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역사와 전통을 지킨다는 것이다. 옛 선인들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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