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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103) 고사리 꺾는날
[자청비](103) 고사리 꺾는날
  • 송미경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06.0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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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수필가
송미경 수필가
▲ 송미경 수필가 ⓒ뉴스라인제주

마트를 찾았다. 진열장엔 토실토실 먹음직한 고사리가 진열되어 있다. 가장 실한 것을 골라 한 팩을 샀다. 밖을 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린다. 사월의 내리는 비를 일명 고사리 장마라고 한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은 고사리도 쑥쑥 자라서 꺾고 지나간 자리에 또다시 새로운 고사리가 생겨 한 뿌리에서 무려 9개의 고사리가 돋는다고 한다.

고사리는 봄을 알리는 제주의 명물이다.

산에서 나는 소고기로 불리는 고사리는 단백질과 무기질이 풍부하여 여성과 어린이는 물론 골다공증 예방에 효과가 있다. 오래 섭취하면 양기가 감한다 하여 제사음식이나 사찰 음식으로 이용해 왔다.

난생처음 고사리 꺾기에 나섰다. 동이 틀 무렵 이른 새벽에 출발하기로 하고 약속 장소에 모였다. 길목마다 자동차 행렬이 장관을 이루고 들녘 곳곳엔 고사리를 채취하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일명 꾼들은 고사리가 많이 있는 곳을 안다고 한다. “고사리 밭은 며느리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 어느 장소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날 수확량이 정해진다. 얼만큼 달렸을까, 교래리 부근 어느 야산 곶자왈에 내렸다.

우리는 서로 흩어져 꺾기로 하고 시간이 되면 만나자고 하여 각자 흩어졌다. 눈이 시야를 가렸는지 고사리인지 풀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사람이 다녀간 흔적들로 제대로된 고사리는 보이지 않고 갓자란 물기 어린 고사리들만이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그 자리에 앉아서 한 줌 꺾었을까, 풀숲을 헤쳐 나뭇가지인 줄 알고 치우려는 순간, 뱀이 뙤리를 틀고 앉아서 혀를 날름 거리며 나를 응시한다. 아뿔싸! 그 자리를 벗어 나지도 못한 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으악 소리를 지르니 다른 일행이 경직된 나를 보더니 자신의 주변에서 꺽으라며 데리고 갔다. 뱀도 소리에 놀랐는지 어느새 수풀 사이로 숨어 버렸다. 고사리를 꺾는데도 많은 경험과 요령이 수반되는 것이다

긴줄기에 동그랗게 오므려 있는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가 주먹을 꼭 쥔 것처럼 보인다. 잔뜩 물먹은 고사리가 손이 닿자 톡톡 끊긴다. 허리를 숙여 눈을 크게 뜨고 고사리 꺾기에 심취했다. 내손으로 직접 꺾은 고사리를 조상님 제사상에도 올리고 일년내내 요긴하게 찬거리로 사용하겠다는 상념은 사라지고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적으로 하다보니 허리가 아파온다. 하지만 뱀 때문에 소동을 피운지라 아프다는 말도 하지 못한채 묵묵히 고사리 꺾기에 몰입 하였다.

세상 일 어디 쉬운 게 있을까, 남들이 꺾어다준 고사리를 당연한 듯 받았다. 현장에서 직접 꺾어보니 다른 사람에게 내준다는 것은 보통 정성이 아니다.

채취한 고사리를 한 옴큼 삶아 봄볕에 널어 두었다. 제법 통통하게 살 찌운 몸매를 드리운채 하늘을 향해 제멋대로 기지개를 켠다. 내가 직접 꺾은 고사리라 더 애착이 간다.

양념에 조물거려 볶아낸 깊은 맛은 감동이다.

따스한 햇살 아래 말려놓은 풍성한 고사리와 마주하니 다시 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이런 마음에 다시 찾는 것이리라, 봄바람 따라 섬 전체를 수놓고 있는 고사리 군락들

너른 들판이 그리워진다.

아, 행복한 제주의 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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