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5-07 06:49 (화)
[자청비](99) 사계 이모님
[자청비](99) 사계 이모님
  • 송미경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05.11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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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수필가
송미경 수필가
▲ 송미경 수필가 ⓒ뉴스라인제주

쓰러질 듯 버티고 있는 저 나무도 한때는 건장한 나무였으리라, 무성하게 매달린 열매 사이로 신선한 바람이 몰려와 낙원을 만들고 튼실한 열매로 건강을 책임지며 아름다움을 뽐냈을 것이다. 덕지덕지 두터운 나이테가 사방으로 둘러쌓여 물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건조한 노목으로 변해가고 있다. 내가 갓 결혼해 이모님 집을 찾았을 때만 해도 마당 한 구석에 아름드리 싱그러운 열매로 젊음을 과시하던 나무다.

내게는 어머니가 세분이시다.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 그리고 사계에 살고 있는 시이모님이다. 건강하던 이모님이 갑자기 아프시다. 새벽부터 이모님은 몸이 안 좋다며 전화가 걸려왔다. 웬만해선 아프다고 하지 않는데, 남편은 서둘러 이모가 계신 안덕 사계로 출발하여 제주대 병원으로 모시고 왔다. 종일 검진에 하루가 흘렀다. 오후가 되자 의사 선생님은 안타깝게도 유방암 말기라는 진단에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보자고 한다. 순간 이모님의 인생이 한없이 불쌍하게만 느껴졌다. 이모님은 평생을 남편도 자식도 없이 홀로 지냈다. 조카인 남편을 의지처 삼아 크고 작은 일을 의논해 왔다.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는 이모님은 철 따라 생산되는 농산물은 물론 갖가지 식료품들을 보내오곤 했다. 그때마다 당연한 듯 받으면서도 고마움과 감사함에 나 또한 이모님이 필요로 할 때면 마음껏 잘해 드려야지 다짐한 터였다.

병원에서 한 달 정도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당분간은 통원치료를 해야 해서 퇴원 후 어머님 댁에서 지내기로 하였다. 며칠쯤 지났을까, 평생을 혼자 살다 보니 다른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 영 불편한지 성치 않은 몸으로 이모님은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속으로는 내심 불안했지만 자신이 집이 오히려 더 편할 것 같아 혼자 거동도 할 수 있고 해서 보내 드렸다.

한 달에 두 번은 정해놓고 병원 진료를 받는다. 남편은 이모님의 병원 동행은 물론 보호자 역할을 하다 보니 병원 예약이 있는 날은 어떠한 경우도 다른 일정은 잡지 않는다. 원래 강인한 체질인지 큰 병을 앓고 있어도 별다른 전이 없이 악화되지 않는다니 다행인 듯싶다. 그러나 아픈 이모님은 날이 갈수록 아이가 되어간다. 평생을 혼자 지내다 보니 상대방 입장을 배려하는 부분이 부족해서일까,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꾸만 감당하기 힘든 성격으로 변해가는 것만 같다.

피붙이 자식이라도 하나 있으면 덜 서러울 텐데, 아무리 잘해 드린다고 한들 자식만큼이나 할까, 조카며느리인 나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가끔 입맛에 맞는 음식과 남편과의 동행이 전부다. 긴병에 효자 없다고 남편은 이모님께 잘해드리다가도 가끔은 짜증 섞인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세상천지에 이모님 혼자뿐인데....

천지가 꽃몸살을 앓고 있는 춘삼월, 눈부시게 만발한 벚꽃이 휘날리는 오후, 이모님을 모시고 밖으로 나섰다. 꽃구경도 하고 우울한 마음도 달랠 겸 벚꽃처럼 활짝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에.

이모님이 눈에서 갑자기 주르르 눈물이 흐른다. 마음이 동요되다 보니 내 마음도 함께 젖는다. 고맙고 고맙다며 말을 잇지 못한다. 우리는 두손을 꼭 잡고 한참을 벚꽃에 심취되 있었다.

세상은 참으로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자신이 선택한 인생이지만 한 사람이 일생이 이렇게 허무하다니, 젊었을 땐 결혼도 했었다. 하지만 결혼 후 일주일 만에 혼자의 길을 선택해 평생을 홀로 지냈다.

며칠이 지났을까, 이모님이 걱정되어 전화드렸다. 혼자 식사도 하고 움직일 수 있는 한 운동도 하고 있다니 다행이다 싶다. 성치 않은 몸으로 혼자 지내다 보니 많이 무섭고 외로운 모양이다. 완벽하게 혼자 인 것임을 체감한 걸까, 수화기를 타고 전해오는 목소리는 한없이 애잔하게만 들린다. 병원 예약 날짜보다 며칠 더 일찍 모시러 간다는 말에 아이 처럼 좋아하신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이렇게 힘겨워하지 않았을 텐데, 수술해서 완치될 병이라면 그래서 예전처럼 건강한 삶이면 얼마나 좋을까, 막힌 수도관을 뚫듯 시원한 숨길을 만들어 드릴 수 있다면...

모든 사물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늙고 병들고 변하는게 자연의 법칙이거늘,

예전 소녀처럼 환하게 미소짖던 이모님의 얼굴이 한없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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