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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79) 첫사랑.3
[문상금의 시방목지](79) 첫사랑.3
  • 문상금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2.07.09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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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은, 일을 한다는 것은, 사랑을 한다는 것은, 시를 쓴다는 것은, 쓰러져도 달려오는 흰 파도처럼 또 끊임없이 달려가는 일이다 ’

 

첫사랑 . 3

 

문상금

 

나의 첫사랑은
항상 지지대 같은 것이었네

자고 일어나면
쉴 새 없이 밀려오는
흰 파도 물결
거친 바다 같은
세상의 두려움 속에서

나의 첫사랑은
위안이었네 기쁨이었네

오롯 설렘과 평화로
가는 길이었네

작은 지지대 하나 입에 물고
나는 늘 세찬 파도 위를
흰 물새 되어
날아오르곤 했었네
 

-제1시집 「겨울나무」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산다는 것은, 쓰러져도 끊임없이 일어서는 일일 것이다.

쏴아 느닷없이 소나기가 쏟아진다. 무방비인 채로 거리를 걸어가다가 그냥 오랜만에 비를 흠뻑 맞아보기로 한다. 머리카락을 타고 내려온 비는 제일 먼저 얼굴을 적시더니만 내 피부 뼛속 그리고 영혼 깊숙이 타고 흘러내린다. 물방울 맺힌 안경 너머로 바라보는 세상은 온통 물에 젖은 세상(世上)이다.

거리에 풀꽃들과 가로수들은 더욱 싱싱하게 살아나 하늘 향해 마음껏 기지개를 켜고 있다. 다들 파릇파릇 살아나고 있는데 제일 기운 없어 보이는 것은 간혹 유리창 속에 엿보이는 사람들과 건물 계단에서 잠시 비를 긋고 있는 남녀(男女)의 얼굴들이다.

비 맞은 탓에 더 초라해진 것을 감추려는 것일까. 그들은 핸드폰을 열고 어디론가 쉴 새 없이 통화를 하거나 하나 같이 담배를 피워 물고 있다. 소나기가 그치자마자 쏜살같이 사라져가는 그들의 등 뒤로 그들이 뿜어낸 말과 연기들만 채 떠나지 못한 채 거리를 떠돌고 있다.

마당 골목 돌담 밑에 팥이며 호박을 심었더니, 이른 새벽마다 연보라 팥꽃과 노란 호박꽃이 피어나고 제법 줄기가 잘 뻗어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소소한 기쁨이다. 어느 것 하나 눈물겹지 않은 것들이 없다. 참 대견하다.

가끔 밤새도록 비바람이 불어올 때면 그 잎들이, 그 꽃들이, 그 열매들이 한없이 걱정되는 것이었다. 아침이면 일어나자마자 달려가 그 어린잎들을 만져보며 안도하곤 하는 것이었다. 나도 이런데 하물며 농부들의 마음은 어찌 그 무게를 다 감당할까.

바람 불고 몹시 무덥던 날, 보목 섶섬 앞 구두미 작은 포구를 거닐었다. 흡사 말갈기 같은 거칠고 하얀 파도들이 뭍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오는 광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지칠 줄 모르는 그 뭍을 향한 그리움들은 해안선을 향해 검은 돌을 향해 순비기꽃을 향해 달려왔다. 파르르 떨다가 하얀 포말이 되어 하늘로 솟구쳐 오르곤 하였다.

그런 바다를 바라보며 걷다 보니, 여름의 한가운데 서서 고달프고 지친 내 영혼에도 조금씩 물기가 오르고 반짝반짝 생기가 나는 것이었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저기 달려와 순식간에 부서져 소멸하는 파도처럼 다소 허망할지라도 또는 자갈길에 쓰러져 피투성이가 될지라도 끊임없이 일어서며 살아가는 것일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거닐다 보니 포구엔 모래알처럼 생각들이 쌓이고 간혹 시(詩)들도 날아와 쌓였다. 천생 나는 시인(詩人)으로 살아갈 운명인 모양이다.

오늘도 갯바위에 물까마귀와 사이좋게 앉아 시(詩)를 쓴다. 파도의 하얀 물방울들이 쉴 새 없이 내 몸을 간질이고 어느새 나는 바다의 넉넉함으로 가득 채워져 아주 편안해져 있었다.

‘나의 첫사랑은 위안이었네, 기쁨이었네, 오롯 설렘과 평화로 가는 길이었네’

삶은 사랑이고, 그 삶 속의 흰 파도는, 첫사랑이다. [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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