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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74)꿈꾸는 민들레
[문상금의 시방목지](74)꿈꾸는 민들레
  • 문상금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2.06.01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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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민들레는 해다, 하늘에 뜬 하나의 해를 닮아, 무수히 피어난 해들의 무리이다, 노란 혀들이 하늘 향한 꽃’
 

꿈꾸는 민들레
 

문상금
 

행복을 꿈꿉니다
창문 옆
코닥 필름의 천연색 광고에
갇힌 나는
가느다란 풀줄기를 타고
곡예를 합니다
거꾸로 매달려 굽어보기도 하는
조그만 세상
그러나 내 슬픈 운명을
눈치 챌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창문 옆
코닥 필름의 천연색 광고 속
꿈꾸는 민들레
안개의 벽 속에 갇힌 채
푸르른 내일을 향해
날아갑니다
 

-제1시집 「겨울나무」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꽃 한 송이, 가냘픈 그러나 끈질긴, 노란 꽃 한 송이, 저만치 피어 있다. 진한 그리움의 향(香), 폴폴 날린다.

‘노랗다’는 것은 괜히 목이 메여 꺽꺽, 숨을 잘 쉴 수가 없다, 삶거나 구운 계란의 노른자의 맛이다. 그 섬세한 입자의 목 메인 맛.

훤하고 착한 얼굴, 작지만 약하지 않은, 꼭 너를 닮았구나. 그래도 지나치게 힘이 들거들랑 너무 밟혀 온몸이 아프거들랑, 힘들다고 마구 꽃대를 흔들어라.

노랗고 섬세한, 하늘처럼 넓은 마음을 보여줘서, 참 고마워!

길가에 너 닮은 꽃 민들레를 만났다.

천지연 폭포 상류, 우거진 나무숲 사이로 공터 같은 잔디밭에, 햇살이 따뜻하였고, 노란 민들레들이 군락을 이루었다.

군락(群落)에 갇혀, 가느다란 풀줄기를 타고 곡예를 하듯 ,거꾸로 매달려 굽어보기도 하는 조그만 세상, 그러나 그 슬픈 운명을 눈치 챌 이 아무도 없었다.

그 무언가에 갇힌다는 것은, 그만큼 갈구하는 것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얼마나 자유(自由)를 꿈꾸었을까, 그 자유의 행복을 꿈꾸었을까.

민들레들은 화들짝 꽃 피우더니, 살며시 흰 홀씨를 온 몸으로 내보내기 시작하였다, 동그란 솜사탕 같은, 홀씨들은 살랑살랑 바람이 불 때마다 속삭였다.

‘후 하고 불어주세요, 마음껏 저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어요, 푸르른 들판으로 날아가서, 또 뿌리 내리고 싶어요’

본능일까, 그게 자유일까, 행복일까, 소망을 이루는 것일까. 떨리는 손으로 흰 민들레 그 보송보송한 홀씨를 큰 숨결로 ‘후후’ 불어주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민들레 홀씨들은 하나둘 바람을 타고 내 얼굴 위로 머리 위로 그리고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것을 ‘뿌리내림의 여정’이라고 나는 이름 지었다. 먼나무 그 푸르고 붉은 잎에 걸려 버둥거리는 홀씨도 있었고 천지연 상류를 타고 멀리멀리 물가로 내려앉는 홀씨도 있었다.

그 작고 미미한 홀씨가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조금도 걱정이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어디에 흘러가 깃들든 악착같이 뿌리내리고 또 뿌리내려 또다시 군락을 이루는 그 질긴 목숨의 속성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민들레처럼 나도 푸르른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싶은 날이면, 민들레 어린 순이 돋아나는 날이면, 한 줌 두 줌 뜯어다 쌈을 싸 먹곤 하였다. 한 입 가득 쌈을 싸서 집 된장을 올리고, 오물오물 씹을 때마다 움찔움찔 혀 위로 쏟아지던 쌉사름한 맛과 흰 진액들.

바로 민들레의 그 질긴 목숨의 비밀은 진액 같은 고름 같은 끈적끈적한 흰 피가 아닐까, 중얼거리며, 민들레에 대한 시를 두서 편 썼다. [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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