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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71) 그대는 그리고
[문상금의 시방목지](71) 그대는 그리고
  • 문상금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2.05.11 2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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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쓰다만 편지 한 구절, 영영 부치지 못 하는, 흰 봉투 속의 편지의 여백이다’ 

 

그대는 그리고
 

문상금
 

그대는
꽃을 사랑하고

장미꽃을 유독 사랑하고
특히 감귤꽃을 사랑하고

흙을 사랑하고
특히 붉은 흙을 사랑하고

그대는 그리고
저기 소년(少年)의
푸른 꿈을 사랑하였다

그러한 그대를 바라보며
향(香) 짙은 감귤꽃과
붉은 기운의 흙과
저기 저 소년(少年)의 푸른 꿈이
내게도 오롯 전해졌다

참말
동화 같은
 

-제5시집 「첫사랑」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소싯적 꿈은 동화작가가 되고 싶었다. 한글을 깨우치는 예닐곱 무렵부터 동화책 읽기를 좋아하였는데, 마을문고에서 빌려온 명작 동화집들은 이상하리만치 슬프고 무겁고 고된 줄거리였다.

아름답고 활기하고 행복한 동화를 쓰는 작가가 되어야지 했었는데, 동화는 아직 쓰지 못하고 시만 주저리 쓰고 있다.

작은 불씨 같은 꿈을 잊지 않고 있다면 아마 이루어 질 날도 있으리라.

꽃의 의미는 다양하다. 각양각색의 피고 지는 꽃들을 바라보며 위안도 받고 시름도 날려 보내곤 한다.

감귤 꽃과 장미꽃은 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돌담너머로 피어나곤 하였는데, 나는 유독 장미꽃을 좋아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장미꽃 몇 그루 심으라고 늘 권하곤 하였다.

감귤꽃 필 때 하논 분화구 구부러진 길을 걷고 있노라면 먼 동화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감귤 새순을 다듬고 있는 농부들도 마치 동화속의 멋진 왕자처럼 다가왔다.

진한 감귤 꽃 향 사이로 윙윙대며 열심히 꿀을 채집하고 있는 꿀벌들의 무리,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흙이, 흑인 것을, 깊은 심장 속에서 툭 터져 나오는 붉은 눈물인 것을, 어릴 때부터 알았다.

쑥이며 냉이며 달래를 큰 언니 따라 캐러 다닌 적이 있었다, 파헤쳐진 붉은 흙의 심장 따라 한라산 물길 같은 혈관들이 부풀어 내렸다. 그 붉은 혈관들을 꽉 누르면 붉은 생 비린내가 진동하곤 하였다, 오래전 화산이 우레처럼 샘솟아 나올 때, 꾸역꾸역 덩어리 피톨들은 무수히 쏟아졌을 것이다.

훗날 내가 다 자라 뭉텅뭉텅 화산 송이 돌 같은 선지 국을 좋아해 자주 먹는 것도 아마도 어릴 적 익숙함 때문일 것이다.

흙은 생명의 시작이며 마무리이다. 모태의 연결고리 태반이며 언젠가 소풍 끝나는 날 돌아갈 귀의처이다. 생명을 불러 일으켜 싹을 틔우고 자라고 열매를 맺게 하는 흙은, 가장 위대한 어머니이다.

나는 흙을, 흑흑흑 붉은 울음 감추고 전사처럼 강인하였던,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 어머니라고 이름 불렀다.

제주의 붉은 흙을 아주 사랑한다, 한 때 ‘대학나무’ ‘푸른 꿈’이었던 감귤나무도 아주 사랑한다, 장미는 꽃 중의 으뜸이며 속성은 붉은 여자이며 식지 않는 정열을 의미한다.

흰 감귤꽃 무더기로 피어날 때, 장미봉오리 팽팽히 부풀어 오르다 일시에 터져 나오는 오월은 그래도 참 살아갈 만하다.[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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