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따뜻한 주머니
박소란
길바닥에 떨어진 십 원 짜리
십원으로 무엇을 살 수 있나요
아무 것도 너는 살 수 없어 말하듯
단호한 표정으로 흩어지는 풍경들,
겨울
언젠가
한 닢의 십 원 짜리를 위해 잠시
걸음을 멈출 사람
허름한 전구를 만지작거리는 것처럼
조심스레 눈동자를 밝혀 들고
값싼 화장이 뭉개진 작고 동그란
얼굴을 넌지시 들여다 볼 사람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겠지 나는
곁에 누웠던 누군가 황망히 떠난
새벽 한때의 여관방 같은 보도블록 위
십 원 짜리
십 원 짜리를 주워 살그머니 제 주머니
속으로 들일 사람
주머니는 참 따뜻할 텐데
붉은 담요를 두른 손이 있어
찬 등을 가만가만 쓸어줄 텐데
기다릴 수밖에 없겠지
기다림이 기다림의 잃어버린 모양을
문득 알아볼 때까지
별수 없으니까, 바닥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십 원이 하루의 전부이던 시절이 있었다. 십 원짜리 알사탕! 그것은 양식이었고 우주였고 눈부신 햇살 아래서의 달콤한 꿈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거리를 걷다 우연히 발 아래 구르는 십 원짜리 동전과 마주했을 때 애매모호한 붕괴감이 든다. 향수이면서 연민이면서 추억인 그 동전을 그냥 지나쳤다. 더는 내 주머니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슬픔의 근거.
십 원으로는 더 이상 너를 살 수 없고 알사탕을 살 수 없고 우주를 살 수 없다.
그러나, 내 뒤에 오던 한 사람이 그 동전을 줍고 반짝이는 눈빛을 하며 주머니에 넣었다. 신의 한 손 같았다. 버려지는 나를, 소외 당하는 이웃을, 붕괴되는 나라를 따뜻이 품어주는 마음처럼 느껴졌다.
그렇다. 아직 우리에겐 바닥을 쓸어담는 온기가 남아있다. 어쩌면 십 원짜리 동전은 주머니 속 잃어버린 희망에 대한 우리들의 연민일지도 모른다. [글 양순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