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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진의 시의 정원](24) 신도리 올레길
[양순진의 시의 정원](24) 신도리 올레길
  • 양순진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20.08.02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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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선 시인
▲ 이창선 시인 @뉴스라인제주

신도리 올레길

이창선

깻단이 널려 있는
신도리 올레길을
은발의 사내가
느릿느릿 걷고 있다
그 깻단
품앗이하던
어머니 투박한 손

돌담길 골목골목
걸었던 발자국 따라
민들레 하얀 꽃씨
갯바람에 날리고
큼큼한
초가 구들방
따스함이 남아있다


-시조집 <물장구 포물선>, 2018, 다층
 

양순진 시인
▲ 양순진 시인 @뉴스라인제주

제주올레 12코스에 속하는 신도 올레길, 눈에 선하다. 요즘 일 때문에 제주시에서 무릉 해안로를 즐기며 달리고 있는 탓도 있지만 신도 1리는 내 고향이다. 고향집엔 아무도 살지 않지만 타인처럼 올레길 따라 스쳐 지나간다.

이 시조를 쓴 시인도 신도 3리 출신이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이 시조를 음송해 본다.

이 시조의 구성을 보면 '깻단- 어머니- 민들레- 갯바람- 초가 구들방'으로 이어지는 이미지의 연결고리를 볼 수 있다. 한 편의 그림 같다. 가만히 눈 감고 있으면 깻단 터는 어머니의 모습, 민들레 꽃씨가 갯바람에 흩날리는 모습, 초가 구들방에 온 가족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삶은 고구마 먹으며 웃음꽃 피우는 모습, 따뜻한 기억처럼 파도친다.

그런 추억을 품고 사는 은발의 사내가 신도 올레길을 걷고 있다. '은발의 사내'는 화자다. 아직도 깻단 터는 어머니의 투박한 손길을 잊지 못 한다. 돌담길 골목골목 피어나는 민들레 꽃씨들은 어린 날의 꿈이다. 아직도 돌담 틈으로 톡톡 튀어나오는 청춘의 열망이다. 은발이 되어 되돌아보는 어제의 향기는 갯바람이 잠재워 준다.

올레길 지나 정낭 열어젖히고 들어서면 아담한 초가집, 그 바끄레, 안끄레 방 안에서 새어나오는 식구들의 정겨운 제주어, '"어떵 살앗수광?", "무사 마씸?", "살당보민 살아진다"...

옛 지명이 '도원'이었던 신도엔 아직도 마농, 지슬을 심고, 녹남봉엔 어떤 사내가 심기 시작한 백일홍, 작약, 백합, 해바라기, 황화코스모스가 철 따라 피며, 신도2리 바닷가엔 하멜이 머물던 흔적이 살아 있다.

제2공항이 건설될 뻔 했던 신도, 이창선 시인의 시조 '신도리 올레길' 따라 걷다보면 모든 시름 잊고 복숭아꽃 만발한 무릉도원이라는 유토피아에 안긴 듯 하다.

"미래를 창조하기에 꿈만큼 좋은 것은 없다. 오늘의 유토피아가 내일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빅토르 위고의 말처럼 신도라는 자그마한 마을에서 원대한 꿈을 꿨기에 오늘을 꽃처럼 산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찰리 채플린이 말했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멀리서 보면 모든 것이 비극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희극 아닌 것이 없다. 제주를 달려보라. 바닷길, 올레길, 오름, 마을, 휴양림 등등 걷다보면 비극인 것들도 희극으로 변화된다.

한 편의 시를 추억의 순례자로 인식해 보자. 인생 곳곳에 어머니의 따뜻한 기억, 고향의 향긋한 냄새, 순간순간의 사랑과 행복이 늘 하얀 깨꽃처럼 은은하고 제주바다처럼 출렁일 테니까. [양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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