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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진의 시의 정원](22) 자작나무의 입장을 옹호하는 노래
[양순진의 시의 정원](22) 자작나무의 입장을 옹호하는 노래
  • 양순진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20.07.15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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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
▲ 안도현 시인 @뉴스라인제주

자작나무의 입장을 옹호하는 노래

안도현

저 도시를 활보하는 인간들을 뽑아내고
거기에다 자작나무를 걸어가게 한다면
자작나무의 눈을 닮고
자작나무의 귀를 닮은
아이를 낳으리

봄이 오면 이마 위로
새순 새록새록 돋고
가을이면 겨드랑이 아래로
가랑잎 우수수 지리

그런데 만약에
저 숲을 이룬 자작나무를 베어내고
거기에다 인간을 한 그루씩 옮겨 심는다면
지구가, 푸른 지구가 온통
공동묘지가 되고 말겠지
 

양순진 시인
▲ 양순진 시인 @뉴스라인제주


  문득, 자작나무숲이 그리워진다. 새 하얀 기둥에 초록잎들이 물고기처럼 파들거리고, 마치 자작자작 동화를 들려줄 것 같은 환상의 나무, 러시아나 백두산 혹은 강원도 인제로 떠나야 만끽할 수 있는 나무, 안도현 시인이 낳고 싶다는 순수의 나무!

  제주에도 오래전 정실길에 '자작나무 카페'라는 간판이 올려지면서 열 그루 정도의 나무가 심어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나는 그날 이후로 그 카페 앞을 자주 지나쳤다. 커피나 와인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자작나무가 보고 싶어서 습관적으로 지나쳤다. 따뜻한 나라 제주에도 자작나무숲이 생기기를 상상하면서.
  그러나 며칠 전 한참만에 가 보니 좋은 사람들이 다 떠난 것처럼 자작나무도 한두 그루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자작나무도 자신의 고향을 고집한다.

  이 시는 자작나무와 현대인을 대응시키면서 부정부패에 물들은 인간들을 향해 보이지 않는 무서운 경고를 하고 있다. 어쩌면 경고보다는 점점 이기적이고 파괴되어가는 현대인의 참상을 안타까워하면서 애절하게 부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작나무는 자신의 하얀 몸을 하얗게 벗겨 종이로 탄생시켜 사랑의 글귀 새기며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게 한다. 불이 되어주는 희생성과 썩지도 않는 불멸성을 본받자는 시인의 희망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자작나무는 차가운 지대에서 혼자가 아닌 동료들과 함께 존재한다. '당신을 기다립니다'라는 꽃말처럼 무엇이든 믿고 끝까지 기다려주는 후덕한 나무다.
  코로나 19만으로도 힘든 요즘, 안타까운 소식들로 중첩되어 씁쓸하다. 부패와 위선으로 가득한 공동묘지보다는 '자작나무의 눈을 닮고 자작나무의 귀를 닮은 아이'들로 가득찼으면 좋겠다. [양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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