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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순진의 시의 정원](21) 라일락이 앞뜰에 피었을 때
[양순진의 시의 정원](21) 라일락이 앞뜰에 피었을 때
  • 양순진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20.07.0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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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휘트먼
▲ 시인 휘트먼 @뉴스라인제주

라일락이 앞뜰에 피었을 때

휘트먼

라일락이 앞뜰에 피었을 때
서쪽 하늘에 커다란 별이 때아니게
떨어졌을 때
나는 슬퍼했다
돌아오는 봄마다 또한 나는 슬퍼하리라

해마다 돌아오는 봄은
나에게 세 가지 것을 일깨워준다
꽃피는 라일락과
서쪽 하늘로 떨어지는 별과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그 사람의 추억을
 

양순진 시인
▲ 양순진 시인 @뉴스라인제주

30년 전, 국문학도로 갓 대학 입학했을 때 처음으로 만났던 시집이 휘트먼의 <풀잎>이었다. 아직도 너덜너덜해진 그 시집이 내게 있다. 물론 김수영의 '풀'이라는 시도 우리의 곁에 있었다. 나는 국문학도이면서도 외국시에 심취해 있었다.

특히 친구와 서로 '라일락이 앞뜰에 피었을 때'를 노트에 필사하곤 캠퍼스를 거닐며 암송했었다. 그 시를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음미해 보게 되다니, 감개무량하다. 5월의 라일락은 이미 흔적도 없이 져버렸지만 라일락을 노래한 詩는 아직도 살아 있다.

이 시는 노예해방의 링컨 대통령을 추모한 시다. 그저 라일락과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노래한 낭만적인 시라 여겨도 좋지만 의미를 되짚어 깊이 해석하면 시의 의도와 감동이 확산된다. 물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외치던 '오 캡틴! 마이 캡틴(Oh captain! My captain!)'도 1865년 4월에 암살당한 민주주의의 아버지 링컨 대통령을 애도하기 위해 쓴 시다. 이 시 구절 때문에 영화의 맛이 더 고급적으로 변했다.

비로소 '서쪽 하늘로 때 아니게 진 커다란 별', '그 사람과의 추억'의 대상이 확실해진다. 링컨 대통령이 암살 당했을 때 마악 라일락이 피기 시작했고, 라일락은 그 순간 '슬픔'의 이미지로 각인된다. 그리고 해마다 라일락이 피는 계절이 오면 그 분을 생각하고, 추모하고, 슬픔을 껴안는다. 존경하는 사람의 죽음은 평생을 두고도 잊지 못하는 아픔이므로. 라일락 짙은 향기는 그 분의 업적과 삶을 기리는 촉매제가 된다.

무엇인가 새로움을 창조한다는 것은 고비가 있다. 노예해방과 남북전쟁 후 통일시킨 링컨, 미국의 민주주의를 노래하고 자유시를 개척한 휘트먼, 1930년대 파격적인 형식의 詩를 추구했던 시인 李箱,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 강한 나라'를 추구했던 노무현 대통령, 그리고 코로나 19와 위기의 남북관계를 수습하는 문재인 대통령! 모두 시대의 등불 같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D.H 로렌스가 '가장 위대한 현대 시인'이라고 극찬했던 휘트먼은 시인 제임스 조이스에서 앨런 긴즈버그까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킬 유어 달링'까지, 가수 밥 딜런에서 라나 델 레이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예술가와 청춘에 가장 강한 영향을 끼친 시인으로 평가 받는다. 모더니스트 에즈라 파운드는 '미국의 시인이고, 그는 미국이다!'라고 할 만큼 그는 미국의 대명사라 할 만하다.

휘트먼이 늘 즐겨 쓰던 말이 "대중 속에서(en mass)"였으며 그는 "미국인은 미국의 것을 찾아야 하고 그 중심을 보통사람들(common people)이어야 하며 그 중간에서의 역할이 곧 시인"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시인의 역할이 크다는 말 같다.

'열린 길의 노래'라는 시에서 '더 이상 난 행운을 찾지 않으리./ 나 자신이 행운이므로//'라는 대목과 총 52장 으로 되어 있는 그 유명한 '나 자신의 노래'라는 시에서 '나는 스스로를 찬미하며 노래 부른다/ 내가 취하는 것은 당신도 취하리라/ 왜냐 하면 내게 속한 모든 원자는 당신에게도 속하기 때문에//'라는 대목은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경고로 읽힌다.

그러나 가장 더 의미심장한 대목은 <풀잎> 서문에 '인생은 당신이 배우는 대로 형성되는 학교다'라는 시의 부분 부분이다. '대지와 태양과 동물들을 사랑하라...당신 생의 모든 해, 모든 계절, 밖으로 나가 풀잎들을 음미하라...당신의 영혼을 모욕하는 것은 무엇이든 멀리하라//' 이는 자연이 자기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듯이 우리 인간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삶을 누리라는 시인의 선물이다.

물푸레나무과인 라일락 꽃말은 '젊은 그 날의 추억'이다. 라일락은 우리 가슴에 불 지피는 존경하는 인물의 대명사이고 그 길을 따라 행진하는 바로 우리 자신의 자화상이다. 돌아오는 봄을 위하여 오늘 우리 가슴 깊이 라일락 씨앗을 심자. 그것이 詩든 그림이든 풀꽃이든 음악이든, 신화든, 자유든, 여행이든,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든 그 어떤 것이든 가치가 충분하므로! [양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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