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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칼럼](50)인내하고, 용서하고
[현태식 칼럼](50)인내하고, 용서하고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08.18 1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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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나하고 금융 일 같이 보는 H형은 친하여 수술비도 대어주고 그래서 사실 피붙이보다 훨씬 고맙게 생각하고 지냈다. 그런데 이 양반이 호박씨를 깠다.

금융회사 시초에는 업무량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업무의 주임은 H형이고 나는 말단직이었다. 몇 달을 근무하다 업무량이 많이 늘지 않으니 H형이 하루는 사장 사모님을 찾아가 “업무는 나 혼자로도 충분하니, 태식이는 내보내고 태식이에게 주는 보수를 저에게 주십시오”하고 말하더라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사장 사모님이 몇년 후에 나에게 내막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도 안되는 사람 속은 모른다’ 참 명언이다. 요즘도 학식자, 사회의 명사, 권력가, 재력가, 사회의 책임자들이 식언하기 다반사고 불리하면 오리발 내밀고 모르쇠로 변신한다. 이래서 사회가 불신과 비리가 판을 치는 것도 사람의 표리부동한 이중인격과 사리사욕에 눈 멀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한사람으로 충분한 업무량이면 자기 혼자 처리하겠고 태식이를 내보내 경영비를 줄이라고 했다면 사장 사모님이 왜 당신에게 비밀스럽게 한 말을 나에게 실토해주겠는가? 사모님은 아마도 태식이에게 주는 보수를 나에게 주십시요라고 한 말이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H를 염치없게 보고 기막히게 생각했다가, 한참 시일이 지나서도 참지 못하고 섭섭한 일이 있어 나에게 말해준 것일게다.

나는 그 분에 대하여 일언반구 왜 그랬냐는 말을 지금까지도 말하지 않았다. 인간성을 좀 파악하는 정보를 얻은 것으로 생각해 버렸다. 마음 속으로 참 안된 분이다, 딱하다 하고 용서를 하고 따지지는 않았다. 결국 나도 그와 사이가 벌어져도 별 좋은 수가 없으니 참아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는 사장 사모님이 내가 어떻게 나오나 보기 위하여 한 말인지도 모른다. 아무 일 없이 예전처럼 지내니까 사모님은 나를 어떻게 평가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어느 날 일수돈은 이자가 너무 비싸니 월 이자돈을 부탁하는 사람이 있다고 H형이 나에게 말하기에 누구냐 하였더니 석판인쇄업과 삼천리자전거 대리점을 하는 O사장이라고 했다.

그 분이 회사돈을 많이 쓰는데 너무 이자가 비싸 일수를 찍을 수가 없다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장이 월 이잣돈을 부탁하니 나에게 돈이 있으면 자기가 책임질 것이니 꾸어주라고 하는 것이었다. 동정을 살펴보니 이미 자기는 꽤 많은 액수를 꾸어준 것 같았다. H형의 부탁이어서 나는 내가 갖고 있는 돈 하고 처이모에게 차용하고 해서 10만원을 H형에게 건넸다.

몇 달 후 O사장에게 돈을 더 해주어야 하겠는데, 나보고 돈을 더 빌려주라는 것이 아닌가. 나는 더 빌려주려면 또 차용해와야 한다 잘못하면 망한다. 안 그래도 그 전에 호수장 마담에게 당해본 경험이 있다. 나는 “함부로 돈을 꾸어주지 못합니다. 그 집에 가서 형편을 보아야 합니다. 한번 같이 가 봅시다” 이렇게 말하였다.

그래서 하루는 오후에 인쇄소와 자전거포를 가보았다. 가만히 보니 사장 부인이 말은 많이 하는데 힘이 없고 불안한 기색이다. 사업에 활기가 없다. 물건도 잘 정돈되지 않고 바쁘게 돌아가는 것도 없다. 자전거포에도 상품에 먼지가 쌓여있고 기술자의 손놀림에 성의가 없으며 얼굴에 웃음끼도 없었다. 나는 밖에 나와서 H형 보고 “돈을 더 해드리지 못하니 H형이 알아서 하세요”하고 말했더니 아무 소리 않고 동문로타리에서 제주중학교 정문까지 쫓아오다가 갑자기 화를 내는 것이었다. “믿지 못하는 곳에 돈해주지 않겠다는데 왜 화를 내느냐”고 그랬더니 별말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기가 거액을 꾸어준 것에 대하여 이자를 못받아서 나보고 돈을 더 해주도록 해서 내가 돈을 가져오면 그 돈으로 자기 못받은 이자를 받아내려는 수단을 부렸는데, 그 목적한 바가 수포로 되기 때문에 화를 낸 것을 오래지 않아 알아차렸다. 그래도 나는 아는 척을 안했다.

O사장은 부도가 임박하였다. H형은 처가돈과 고향에서 끌어들인 돈까지 당시로서는 거금을 물렸다. 돈을 수금하러 나는 원정로를 지나가는데 우생당 서점 처마 밑에 H형이 서 있는데 사색이 다 되어 있었다. “형님, 얼굴이 말이 아닌데 무슨 일입니까? 그랬더니 실토를 한다. O사장이 부도가 나게 되었는데 자기가 대부해준것도 꽤 된다고 하면서 부도나면 그 돈을 떼이게 된다. 그러면 고향에 낯들고 가기 힘들다. 처가에도 타격이 심하게 된다고 했다. O사장은 석판인쇄기를 부채 대신 인수하라는데 어찌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나에게 섭섭하게 한 것은 제쳐두고, 나는 지난날 고맙게 해준것만 생각하면서 무슨 지혜를 내서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형님, 석판인쇄기는 완전 쓰레기 아닙니까?” 그 시절은 타이프라이터가 보급되기 시작해서 석판인쇄기는 퇴역의 운명을 맞을 때였다. “그것을 받으면 비용들여 쓰레기 처리한 셈밖에 안되는데 돈을 다 받아 정산한 것으로 되니 이런 계산 방법을 택하면 안됩니다. 최악의 경우 돈을 안받아두면 O사장에게 은혜를 베푼 것이 되고 덕을 쌓은 것이 됩니다. 차후 O사장이 잘되면 빚을 받을 수도 있고,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면대하면 미안하게라도 생각할 것이 아닙니까? 어쨌든 석판인쇄기 받고 부채를 상쇄하지 마십시오”하고 말했다.

H형의 말인즉 O사장은 오늘 돌아오는 당좌 십만원을 결재 못하면 내일은 부도가 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도 H형이 O사장은 매우 어렵게 되었다길래 H형과 같이 오사장을 만났었다. 그리고는 내가 H형을 통하여 대여해준 돈은 내 목숨과 바꾼 돈이다. 나는 그 돈을 포기 못한다. 해결해 주지 않으면 나라는 인간이 몰락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불상사를 저지를지 당신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때문에 내 돈만은 해결하는 것이 신상에 좋다고 경고를 했었다. 그때 O사장은 당신 것만 며칠 내로 해결해 주겠다고 하고선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상태여서 나도 속앓이를 하고 있는 참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내 것 내어놓으라고 할 형편이 못되었다. 내일 부도가 난다는데 아무리 행패를 부린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렇다고 H형도 내 돈을 잘 키워줄려고 O사장에게 대여해서 이자돈을 놓아준 것이 생각하니 H형에게 책임을 지라고 강요도 하지 못했다. 잘못하면 몇 년 고생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모든 것을 운수에 맡길 수 밖에. 억울하지만 참고 주위 사람에 대하여 원망 같은 것을 말고 용서하자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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