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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칼럼](49)야! KAL호텔, 너 재지 마라
[현태식 칼럼](49)야! KAL호텔, 너 재지 마라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08.14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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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우리 집은 국도에 접했고 담벼락 옆에 공동수도가 있었다. 동네 아낙들이 수돗물 길러 물허벅지고 깡통 들고 줄을 서는 곳이다. 이것도 안중에 없었다. 흥정이 끝나고 가버린 후 나는 대로 가운데로 나와 양손을 들고 칼호텔을 향하여 “야! 너 큰 집이라고 재지마라. 나도 궁전같은 집이 있다”하고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이제 생각하면 실소를 금치 못하지만 그때는 십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가는 것 같았다. 내 자신이 대단하게 생각되었으며 능력이 있고 남에게 그렇게 멸시당할 내가 아니라는 우쭐한 생각마저 치솟았다. 부자가 별거냐 하는 항변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집을 사려고 술·담배는 물론 외식은 말할 것도 없고 유행하는 커피도 안마셨다. 극장구경도 안다니고 남의 집 대소사도 일체 가지 않았다. 그런 경조사도 가려면 변변한 입성마저 없어 남이 날 보고 웃음거리로 여기니 눈을 딱 감았다. 사실 내 장모 대·소상을 지냈지만 동네사람 한 사람 찾아와주는 사람 없이 모두 냉담하였다. 희망 없는 사람, 장차 기대감이 없는 곳에는 사람이 모이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거지 죽어나가는데 조문객 많은 것 보았는가? 정승집 개 죽은데 문상객 많다는 옛말 그른데 없다. 예나 지금이나 영악하고 계산 빠르기는 사람을 따를 수 없다.

1967년 여름 내 나이 29살에 집을 샀다. 그 해 그믐에 돈을 억지로 갚으려면 갚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억지가 부작용을 낳는 법. 나는 약속대로 이자를 월 3부로 몇 달 물고 다음 해 봄에 6일치 이자까지 정확하게 계산하여 집값 잔액을 청산하였다.

이제 완벽한 집주인이 되었다. 어떻게 집이 아깝던지 여기로 가보고 저기로 가서 쓰다듬고 나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았다. “너가 죽지 않고 그 실패와 좌절을 넘어 집을 사다니, 너 대단하다”하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그 해 여름 동문시장 막걸리집 주인에게서 중고레코드를 싸게 사서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황포돛대’가 들어있는 레코드판을 한 장 사다가 내 집에서 볼륨을 높여 방방 틀어놓았다. 현태식이 아직 죽지 않았다고 하는 광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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