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9 22:11 (월)
[연륙교(14) 비양도
[연륙교(14) 비양도
  • 오성세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4.04.02 10:59
  • 댓글 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성세 수필가
오성세 수필가
▲ 오성세 수필가 ⓒ뉴스라인제주

제주도 어디에서나 한라산과 바다를 볼 수 있다. 고내리에서는 등 뒤의 고내봉에 가로막혀 한라산을 볼 수 없고 저지리에서는 코 앞의 저지오름 때문에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조금만 자리를 옮기면 볼 수 없었던 한라산이나 바다를 볼 수 있다. 사방 어디에서나 완만하게 솟아오른 한라산 꼭대기는 구름에 덮혀 늘 볼 수는 없지만 누구나 구름 속의 한라산 정상을 마음에 새기고 있다. 제주시에서 보는 한라산의 모습과 서귀포에서 보는 모습은 다르고 고산에서 보는 것과 성산에서 보는 모양이 조금 다르기는 하다. 하지만 한라산의 웅장하고 의젓한 모습은 어디에서나 변함이 없다. 포근한 어머니 품과 같은 바다도 그렇다. 산지등대에서 보는 바다나 수월봉, 또 박수기정에 서서 보거나 광치기 해변에서 찰랑거리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바라보는 바다 모두 다 같은 바다다. 때로는 호수처럼 잔잔하거나 아니면 폭풍우로 거친 바다가 되기도 하지만 제주를 감싸안은 아름답고 풍요로운 바다다. 가까이 또 멀리 서로 다른 모습의 섬들이 그 바다를 지키고 있다.

나의 하루는 바다를 보며 시작하고 바다를 보며 끝난다. 해발 190m의 중산간에 있는 집에서 직선거리 4km 쯤 떨어진 바다는 끝없이 펼쳐있다. 집에서 바다에 이르는 내리막에는 밭과 비닐하우스와 도로 그리고 나즈막한 구릉이 이어진다. 왼쪽에는 고내봉, 가운데는 물뫼오름 그리고 오른쪽 멀리 자그마한 도두봉이 수문장인양 솟아 있다. 그 사이 사이로 듬성듬성, 옹기종기 크고 작은 집들이 자리잡았다. 중산간과 일주도로를 지나다니는 차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장난감 자동차처럼 앙증맞다. 그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변함 없는 바다이지만 바다를 바다답게 하는 자연과 수시로 더해지는 인위적인 요소로 잠시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햇빛과 바람, 구름과 비와 안개 그리고 떠다니는 배와 그 불빛은 다채로운 바다를 만든다. 수평선과 맞닿은 하늘 아래 펼쳐진 나의 바다 풍경 속으로 들어가보자.

여명이 밝아오면 고요한 바다 저멀리 추자도가 나뭇잎처럼 떠있다. 맑은 날에는 그 뒤로 아스라이 보길도와 여서도(麗瑞島) 또 거문도와 진도 인근의 섬들이 보일 때도 있다. 아침 햇살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섬들은 흐릿해지고 멀지않은 곳에 작은 삼각형으로 보이는 소관탈도와 대관탈도만 바다를 지키고 있다. 때론 해무(海霧)가 짙어져 수평선도 사라지고 하늘과 바다가 하나로 되어 더 이상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맑은 날 바다는 다양한 색깔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조류의 흐름 탓인지 바다 여기저기가 옥빛으로 물들기도 하고 바람에 이는 파도는 흰 갈매기가 춤추는듯이 보이기도 한다. 크루즈선이나 큰 화물선이 간혹 보이지만 손가락만해 보이는 어선들이 오가는 바다는 안식과 평화의 터전이다. 하얀 구름이 흐르는 하늘과 크고 작은 배들이 오가는 바다는 언제 보아도 싫증이 나지않는다. 기쁘고 즐거울 때는 마당 끝에서 멀리 수평선 너머를 상상하고 슬프거나 우울할 때는 거실 소파 깊숙히 몸을 묻고 멍하니 눈길만 주기도 한다.

한낮이 지나고 노을이 스미는 바다를 고깃배의 작은 불빛이 하나 둘 수를 놓는다. 하늘의 별들도 화답하듯이 반짝이며 밤은 깊어 간다. 애월 앞바다에서 이어지는 어선의 불빛은 멀리 제주항에 이르는데 헤아릴 수가 없다. 온바다를 밝힌다. 바다만 밝히는게 아니라 밤하늘의 구름도 엷게 물들인다. 제주항에서 성산포를 지나 서귀포, 모슬포를 돌아 다시 애월 앞바다에 이르기까지 제주도를 감싸며 이어진다. 하늘의 별들도 그 휘황한 불빛에 빛이 바래 슬그머니 꼬리를 감춘다. 그 밝은 빛 아래 물속에 모여드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고기떼를 그려본다. 그 고기떼와 맞서 흐르는 땀방울도 잊고 소리지르며 함께 힘을 모으는 어부의 억센 팔뚝을 생각한다. 먼동이 트고 어둠이 서서히 수평선 너머로 잦아들면 그 밝은 빛들도 흐릿해진다. 그 많았던 배들도 어느 덧 자취를 감추었는데 가물가물한 불빛 몇 개가 회색 바다 위에 늦도록 남아있는 모습은 애잔하다. 아직 만선의 꿈을 버리지 못했는가 아니면 예기치 않은 문제라도 있단 말인가? 떠들썩하지만 안전한 포구로 어서 돌아가기를 기도한다.

거실은 정북향이다. 하지(夏至) 무렵에는 비껴드는 햇빛을 볼 수 있으나 일년 중 열 달은 문 앞에 그림자를 두고 있다. 한밤 중 거실을 나와 잔디밭에 서서 고개를 들어 머리 위의 하늘을 본다. 북극성을 가운데 두고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가 맴돌이를 한다. 낮이나 밤이나 그 자리를 지키는 저 북극성처럼 나도 이 자리에서 저 바다를 지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5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리오 2024-04-04 12:20:34
작가 님 일상을 그려봅니다.

뿌뿌네 2024-04-04 11:53:30
그림같은 집에 사는 작가는 행복합니다!!
먼바다의 시선과 배경으로 음악이 깔리는
거실을 상상합니다ㅋ

강남제비 2024-04-03 19:50:28
바다가 보이는집 ,
멀리 추자도까지 보이는 집~
그림같은 집에 사시는 군요!
하루에 일상이 수필 한편 일거 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jhisjh 2024-04-03 09:25:00
어둡고 폭풍이 몰아칠 때는 무섭고 두려운 바다이지만 우리의 바다는 항상 평화롭고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열어주며 따뜻하게 포용해주면서 우리의 삶을 지켜주는 바다임을 새삼 느끼며 같이 바다의 품 안에 안겨보았습니다. 불빛을 수놓은 검은 바다를 바라보며 북극성의 지킴을 받고 있는 님의 확고한 모습이 떠오릅니다.

새 빛 2024-04-02 15:54:07
안식과 평화의 터전으로 여기는 바다를 언제고 바라볼 수 있는 작가님의 행복한 삶을 엿보게 되네요.
해무에 가려진 바다에 수평선이 사라진 광경을 바라볼 때는 어떤 그리움도 있을 듯 ~~~
오늘같이 굿은 비가 종일 내리는 날엔 시야가 가려진 애월 앞바다가
어떤 얼굴일까요 ?
중산간에 위치한 집, 마당에서 언제고 바다를 볼 수 있음이 부럽습니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신대로5길 16, 수연빌딩 103호(지층)
  • 대표전화 : 064-745-5670
  • 팩스 : 064-748-5670
  • 긴급 : 010-3698-088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보기
  • 사업자등록번호 : 616-28-27429
  • 등록번호 : 제주 아 01031
  • 등록일 : 2011-09-16
  • 창간일 : 2011-09-22
  • 법인명 : 뉴스라인제주
  • 제호 : 뉴스라인제주
  • 발행인 : 양대영
  • 편집인 : 양대영
  • 뉴스라인제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라인제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newslinejeju.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