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이야~반 받아시냐~~?" "삼춘~여기 반하나 더 줍써~~"
제주에는 제주만의 문화라 할 수 있는 '반'(몫)이라는 풍습이 있었다. 지금도 완전하게 그 흔적이 없어지진 않았지만 나의 어린 시절만큼 '반'(몫)이라고 크게 강조하지는 않는다.
지금처럼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았던 나의 어린 시절, 제사나 설ㆍ추석명절은 손가락 세며 기다렸던 연중행사중 하나다. 특히 제삿날이면 밤12시 파제까지 잠들지 않을려고 졸린 눈 비벼가며 기다렸다. 그것은 바로 맨입에 몇 그릇을 먹어도 먹을 수 있었던 달짝지근한 곤밥과 나의 '반'(몫)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즘도 제주의 장례식장가면 돼지고기와 순대ㆍ두부가 나온다. 이런 것들이 '반'이었다. 어린 시절 잔치나 장례 치르는 집에 가면 무조건하고 각자에게 돗괴기(돼지고기)'반'(몫)은 기본으로 온전한 자기'반'(몫)이 있었다.
나의 고향은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버렸지만 어린 시절의 고향은 바람 불면 꼼짝달싹 못하는 가파도이다. 지금처럼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가파도는 보리농사만 지은 데다 섬이다보니 쌀이 더 귀했다. 하지만 제사나 경조사 때만큼은 비싼 쌀밥을 지어서 제사를 지내고 손님들에게 대접을 했다. 쌀이 거의 안 나는 제주에서는 그만큼 쌀이 귀했기 때문에 보리쌀에 비해 하얀 쌀밥은 더 달고 맛있게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쌀밥을 '곤밥'이라 불렸는지도... 얼마나 맛있었던지 설ㆍ추석명절에는 곤밥 먹으려고 차례지내는 집마다 빼놓지 않고 가서 밥을 먹었었다.
또 제사나 설 명절에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 '반'(몫)이있었다.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우리집안은 제사를 다 지내고나면 집사(제사를 진행하는 분)였던 분들이 제사 지냈던 모든 음식을 손바닥만 양은접시에 '반'을 담아 어른에서 아이까지 한명도 빠짐없이 자기'반'(몫)을 줬다. 지금 생각하면 떡은 넉넉해서 종류별로 하나씩 넣었어도 귀했던 사과나 배는 그 많은 인원 다 나누다보면 두께 0.5cm도 안되게 작은 반달 모양으로 잘라서 나눠야 할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그 기분은 뷔페 한 접시 받은 기분이었다. 지금은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이런 것이 콩 한쪽도 나눠먹는다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 제주의 제사나 설ㆍ추석명절은 나눔이기도 했다.
제사 지낸 다음날은 동네 어르신들 집집마다 제사음식을 나눠드렸다. 이것 또한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의 '반'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먹을 것이 풍족해서 그런 가 먹을것에 욕심도 없고 나누는 것조차도 많이 인색해 진거 같아 씁쓸한 마음도 든다. 이번 설 명절에는 순수한 인심ㆍ정 많은 제주 인답게 주변에 소외된 분은 없는지 혼밥 드시며 외로운 분은 없는지 둘러보고 맛있는 나눔을 하며 더 풍성하고 따뜻한 설 명절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눈 앞에 그려지네요
그 시절 훈훈한 이야기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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