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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129)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고
[자청비](129)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고
  • 송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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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1.18 09: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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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실 봉아름문학회 회장
송은실 봉아름문학회 회장
▲ 송은실 봉아름문학회 회장 ⓒ뉴스라인제주

내 그림자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을까? 혹시 그림자가 나이고 나는 허상인가? 내 실체는 어느 먼 우주에 따로 있는 걸까?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게 한다. 이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무려 40년에 걸쳐 완성한 조금은 겁나게 두꺼운(후기포함767페이지)소설이다.

1980년 「문학계」에 발표를 하고 그 후 2020∼2022년에 걸쳐 다시 고쳐 쓴 소설이라고 하는 작품 소개 글을 읽으며 어떤 내용일까 궁금증이 일었다.

소설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무척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것 같으면서도 현실적 삶을 담고 있는 독특한 구조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는, 즉 나는 누구인가? 지금 보이는 ‘나’가 진정한 ‘나’인가? 시간은 흐르는가? 변하는가? 가만히 있는가? 등등. 심지어 ‘꿈’속에서 나누는 대화를 빌려 ‘영혼’의 영역까지 다루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구절이다. ‘통증이 남은 건 내 의식의 안쪽뿐이다. 그리고 그 통증은, 그 또렷한 잔존 기억은 이제 그 자리에서 사라지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그건 뚜렷한 열을 품은 각인과도 같다. 한 세계와 또 다른 세계의 경계를 초월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고통을 수반하는 각인, 나는 아마도 그것을 내 존재의 일부로 간직한 채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의식’ ‘무의식’ ‘현실’ ‘비현실’ 이런 단어는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로서는 별로 생각해 볼 기회가 없는 주제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런 단어가 떠올랐다. 크리스마스를 낀 연휴 3일은 이 책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벽’에 대해 생각했다. 작가는 왜 ‘불확실한 벽‘이라고 했을까? 보통 벽은 확실한 실체를 가지고 경계를 나누는 구조물로 존재한다. 하지만 나와 타인을 나누는 벽,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나누는 벽, 생각과 생각을 나누는 벽, 몸과 영혼을 나누는 벽, 이념과 이념을 나누는 벽. 이렇듯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을 나누는 수많은 벽들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초등학교 다니던 어느 날 같은 학년 아이들이 나를 따돌리며 놀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장애가 있어 걸음이 느린 나는 급우들과 보조를 맞춰 걸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등하교를 했기에 친구들과 보조를 맞추어 걸을 수 없을뿐더러 각종 놀이에도 함께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등하교 길은 언제나 혼자였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던 어느 날 먼저 학교를 나선 아이들 무리가 우리 집 대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기를 기다린 듯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빙글빙글 돌며 **라고 놀리고 가방을 뺏으려 했다. 큰 소리로 부모님을 부르고 싶었지만 그 시간엔 일하러 가신 부모님이 귀가하기 훨씬 전이었으니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인생 최초 경험한 그 쓰라렸던 감정이 번개처럼 스치며 얼굴에 화끈 열이 올랐다. 그들이 벽을 치고 나 또한 그 후로는 그들과는 아예 벽을 치게 되었던 쓰라린 기억. 그 당시 파란색이었던 우리 집 대문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를 둘러서 빙글빙글 돌던 아이들의 실루엣과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놀려대던 소리들.

지금 나는 육십을 바라보는 지극히 평범한, 조금은 심심한 삶을 살고 있는 직장인이다. 그런 나이기에 유난히 마음에 들어오는 한 인물이 있다. 내가 조금만 더 젊었으면 뭔가 모험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꿈을 읽는 이’라는 일을 하고 싶은 소년 ‘옐로서브마린’이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그림자와 헤어져야하고 다시는 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용기 있게 꿈을 향해 떠난 ‘옐로서브마린‘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치 내가 떠난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카프카는 “책은 우리 내면에 얼어있는 바다를 내려치는 도끼 같은 것이어야 한다”라고 말했다는데 책장을 덮고 가만히 생각해 본다. 어린 시절 타인을 향해 굳게 걸어 잠근 나의 벽. 허물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지금까지 내 삶은 타인이 규정한 나를 생각 없이 수용하며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부터는 내가 ‘나’를 규정하고 작지만 모험적인 일들도 도전하며 생각과 행동의 범위를 확장하는 나, 지레 겁을 먹고 미리 쳐놓은 벽들을 허물어가는 나로 살아야겠다. 그 얼음을 깨는 나에게 나는 ‘나’를 응원 한다. 먼 길 떠나던 ‘옐로서브마린’이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뒤돌아서서 나를 향해 천천히 손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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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온누리 2024-01-20 22:12:49
타인이 규정한 나를 수용하며 살았다는 말에 저역시 그랬구나 깊은 공감을 하게 되네요 남이 세운 벽이건 내가 세운 벽이건 깨 부수는 용기를 내 보려 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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