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9 11:17 (월)
“제주4·3은 남로당 중앙당과 전남도당 지령에 의해서 제주도당이 일으킨 사건”
“제주4·3은 남로당 중앙당과 전남도당 지령에 의해서 제주도당이 일으킨 사건”
  • 양대영 기자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12.05 10:1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기획] [김영중과 제주4.3](7)
“남로당 제주도당 단독 결행인가? 아니면 남로당 중앙당과 전남도당 지령에 의한 것인가?

제주의 중심 인터넷신문 <뉴스라인제주>와 <데일리제주>는 한국 근현대사의 제주4.3사건을 재조명 하므로써 도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더 나아가 4·3해결에 기여해야 하는 제주지역 언론의 사명을 다하고자 이 기획물을 취재, 보도합니다. 취재에 응해주신 김영중 서장님께 감사드립니다. 도민 여러분의 많은 응원과 함께 열독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註)

# 남로당 제주도당 단독 결행인가? 아니면 남로당 중앙당과 전남도당 지령에 의한 것인가?

(양대영 기자)제주 4·3에 남로당 중앙당과 전남도당의 지령은 없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영중 서장)제주 4·3사건이 남로당 제주도당 단독 결행이 아니면 남로당 중앙당과 전남도당 지령에 의한 것이냐. 이러한 논쟁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결론은 남로당 중앙당과 전남도당 지령에 의해서 제주도당이 4·3 사건을 일으켰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좌파에서는 남로당 제주도당 단독 결행이라고 주장을 하느냐 하면, 그 이면에는 민중항쟁을 뒷받침하기 위한 의도가 아닌가,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31일에 있던 심포지엄에서도 양조훈 전 4·3평화재단 이사장은 '그 어디에도 4·3을 지령이 있다는 근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렇게 답변도 하던데 저는 그것에 대해서 반론을 한번 펴 보겠습니다.

첫째, 공산당은 철의규율 철의규칙이라는게 있습니다. 상급 지시없이 독단적으로 어떤 일을 할 수가 절대 없는 그런 체제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4·3 목표는 5·10총선 저지, 대한민국 건국 반대입니다.

이 목표는 남로당이 계속적으로 주장했고 4·3 이전에 2·7 투쟁 그들이 말하는 2·7 구국 투쟁 지령은 분명히 제주도당에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일부 제주도의 2·7 폭동이 시행되기도 했습니다.

중앙당 및 전남도당 올구, 올구는 조직 지도책을 말하는데 영어로는 오거나이저 또 이걸 약해 가지고 org고 해서 오르구라고 합니다만은 저는 주로 올구라고 하는데, 이 중앙당과 전남 도당에서 제주도당에 파견한 올구가 상주하다시피 했습니다.

뭐, 잠깐 왔다 가는게 아니고 여기 계속 있었지, 뭐 상황에 따라서 사람이 바뀌기도 했습니다만, 그러면 그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 파견이 됐는데, 그 사람이 관광 온 것도 아니고 구경온 것도 아니고 놀러온 것도 아닙니다.

그 올구가 여기에 파견됐다. 자체가 그 지령이 있었다고 저는 해석을 하는 겁니다. 직접 지시죠 그러니까.

상급당이 파견한 올구의 임무는 뭐냐, 지령 하달, 회의 주제, 지휘 감독지도, 확인, 조정, 평가 보고 하는 임무를 띄었다, 이거죠,

그 다음에 48년 2월 25일 그러니까, 4·3을 일으키기 직전이었죠. 조천에서 김달삼 등 14명이 모여 남로당 제주도당을 투쟁위원회로 구국 이걸로 개편 했죠. 남로당 제주도당을 이걸로 개편했는데,

그때 올구가 누구냐면, 도표가 있는데 도표에 보면 제일 상단에 중앙당 파견 올구 이두옥, 그 밑에 전남도당 파견 올구 조창규, 그 밑에 강규찬 이라든지, 여기 남로당 도당 간부들이 위치했다. 이거죠.

그 도당 간부 밑에 김달삼이가 군사부 부장이 되고 그랬어요. 다음에 10.19 여수 순천 반란 사건이 발생한 그 뒷날 48년 10월 20일 강규찬 등이 구국투쟁위원회를 혁명 투쟁 위원회로, 또 개편합니다.

거기 도표에 보면 중앙당 파견 올구가 김서욕, 전남도당 파견 올구가 이창욱 제주도당 위에 있었다. 이 사람이 진두지휘를 했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중앙에서 파견된 그 사람이 바로 도당에 지령하는 거예요. 다음에 미군정 기록을 우리가 봐야 됩니다. 이 미군정 기록은 48년 1월 22일 조천에서 열린 남로당의 비밀 모임을 급습했다.

거기서 압수된 여러 문서 가운데 특별 문서의 내용 일부는 다음과 같다. 이렇게 돼 있어요.

첫 번째로 1948년 2월 중순부터 3월 5일 사이에 제주도 전역에서 폭동을 시작하라, 두 번째 경찰간부와 고위 관리들을 암살하고 경찰 무기를 노획하라, 세 번째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 총선거 그리고 군정을 반대하라, 인민공화국을 수립하라, 이러한 비밀문건을 압수했다.

다음 두 번째로, 48년 2월 12일, 그때는 제주도에서 경찰과 방첩대가 남로당 본부를 급습해서 많은 유인물과 이런 것을 압수했는데 그 문서중에 1948년 2월 15부터 3월 5일까지 계속해 소요를 일을킬 것을 명령했다. 이것이 지령이다. 이런 뜻이죠.

남로당 제주도당은 이 지령대로 폭동을 실시하려고 했는데 48년 1월 22일 경찰이 남로당 핵심부 안세훈 이덕구 등 122명을 검거했다, 말이죠.

그러니까 핵심 주동자들이 전부 검거되고 그 조직이 노출되고 하니까 중앙에서 내려보낸 2월 15일부터 3월 5일 사이에 폭동을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죠. 조직과 전열을 재정비하기 위해서 연기하게 됐다 그렇게 됐단 말이죠.

다음에 '제주도 남로당 조사보고서'라는 미군정보고서가 있습니다. 이것은 48년 6월 21일자 미군 제 24군단 정보 참모부 헝거 상사가 작성한 것인데 '제주도 남로당 활동은 전라남도 도당의 지시를 받고 있다. 남로당 제주도 위원회는 전남도당 본부로부터 모든 지령을 받는다.'

그런데 조그만한 것도 지령을 받는데 4·3과 같은 큰 미군정과 직접 대결하는 그런 것을 허락없이 단독 결행을 할 수 없다. 절대 없다. 이렇게 보는 겁니다.

그 다음에 김달삼이가 직접 쓴 제주도 인민 유격대 투쟁 보고서에도 보면 48년 3월 15일경 전남도 파견 올구를 중심으로 회합을 개최하여, 첫째 조직의 수와 방어의 수단으로, 둘째 단선단정반대 구국 투쟁의 방법으로서 무장 반격전을 기획 결정했다. 이게 지령이 아니고 뭐예요?

전남도당 올구가 야! 하지 마! 상황이 불리해, 그러면 제 아무리 여기 강규찬이나 김달삼 이덕구가 하려고 해도 못하는 겁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말하자면 바로 지령을 했다는 것이죠.

3월 15일 전남 도당이 파견한 올구를 중심으로 회합을 개최하여 단선단정 반대 무장 반전을 기획 결정했다. 전남도당 올구 입회하에 그랬다 말이죠.

다음에 4·3 직전에 내도한 전남도당 올구 이동문은 재차 3월 중순에 내도함과 동시에 무장 반격전에 관한 지시와 아울러 이렇게 됐죠. 지시를 했다는거, 그것이 지령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다음 4·3 관련 일본 도피자들의 기록이 있습니다.

김봉현이가 1947년 3·1 투쟁 당시에 민전문화 부장으로서 진두지휘도 했습니다마는 일본 문예지 민도(民濤) 1988년 여름 특집호 2에 중앙당 파견 올구 천검산에 대해 결정은 중앙에서 파견 온 조직책입니다. 천검산이가 결정을 한다, 이거죠.

아무튼 '남로당 제주도위원회의 지도를 했던 사람입니다.' 지도하는 사람이야 지시도 하고, '군사 이론에도 탁월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 남로당 중앙당 기관지 노력인민이 있습니다. 여기에도 지령 관계가 있습니다. 1948년 11월 7일 '중앙 메세지에 답함'이라는, 그 노력 인민 기사에 보면 제주도당이 중앙당에서 격려 메시지가 오니까

여기에 대해서 답장을 냈다 말이죠. 그 답신에 '우리들이 불굴의 투지는 상급 당부의 옳은 지도 밑에서' 했다는 것은 그 지령을 받았다는 거죠. 그게 아니겠습니까.

다음에 5.10 총선 반대 2·7 폭동 지령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제주 도당에 내려왔다는 것은 좌파들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남로당은 48년 2월 7일을 기해서 전국적으로 5.10 총선 반대 무장 폭력 투쟁을 자행했습니다.

이것은 48년 1월 21일 스티코프가 레베데프에게 종전의 투쟁 전술을 전환하라, 그래 가지고 한국 임시 위원단을 보이코트하고 선거를 반대할 것을 지령했습니다.

이에 따라서 2월7일 제주 도내에서 폭동이 발생했는데 그 경찰이 통계를 보면 시위 95건 불법 집회 72건 선동 포스타 첨부 및 삐라살포 375건 협박 공갈 27건 이것이 발생했다. 이거죠.

그외로 2월 7일 무슨 일이 있었느냐, 안덕면 동광리 이장 집에 무장 폭도 20명, 비무장 폭도 100명, 120명이 습격을 해가지고 단정 반대 반동 숙청 이런 구호를 외치면서 그 가옥을 전부 파괴하고 전부 약탈하고 갔다, 이 말이죠.

또 2월 7일 날 안덕지서 경찰관 2명을 생매장 하려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건이 있었고 2월 8일 날은 성산면 고성리 시위 사건이 있어 이때 경찰관이 총을 빼앗으려고 하니까,

경찰관이 공포를 발사해서 해산한 사건이 있었고, 동일 그 성산면 신양리 오조리 시위 사건이 있었고, 2월 8일 조천면 함덕리 도로차단 사건이 있었고, 2월 9일날은 조천면 북촌리 경찰관 권총을 피탈 당한 사건이 있었고, 2월 10일은 저지지서 습격 기도 사건이 있었고,

같은 날 고산 지서 습격 기도 사건이 있었는데, 이 고산지서 습격 기도 사건은 경찰이 발포해서 그때 시위하던 한 사람이 중상을 입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미군정 보고서에서 2월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17건의 폭동과 시위가 발생했는데 6개의 경찰 지서를 습격했다. 이게 습격한게 아냐고 습격을 시도했다 이렇게 보이고, 삐라 살포와 칼과 곤봉으로 무장한 폭도들이 시위가 있었고, 많은 폭도들이 소련 국가를 불렀다.

요거는(소련국가 부른 것은) 좀 특이한 겁니다. 이 미군정 보고서에는 '보고된 사망자는 없으나 경찰관 2명이 심하게 구타당했다' 이것이 안덕 지서 경찰관 2명 생매장 기도 사건을 얘기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미군정 보고서도 있다. 이 말이죠.

그래서 2·7 지령이 있었습니다 남로당이 전략과 목표는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여 이제 적화 통일을 이룩하는데 있었습니다 이는 동일 목적을 가진 동일 조직과 세력에 의해서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투쟁하였고

그 일환이 4·3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4월 3일날 폭동을 일으키라는 지령이 없다 하더라도 2·7 폭동 지령이 연장 선상에서 4·3은 일어났다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다만 그 2·7 폭동 지령과 4·3 사건은 날짜만 다를 뿐입니다. 이제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상부의 지령은 있었고, 결론은 뭐냐, 제주 4·3은 남로당 중앙당과 전남도당 지령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다.

지령 근거가 없다는 것은 내가 지금까지 설명한 여러 가지 그 근거들을 부인하거나 모른척 하는 겁니다.

확증편향이라고 있는데 내가 선택하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말하고 이러는 것이 이것이 아닌가, 이제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해방후 신탁 통치를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그 때부터 심한 대립과 갈등을 시작으로 해서,

6.25 남침 전날까지 그러니까 50년 6월 24일까지 남로당이 적화통일 투쟁으로 군인이 7492명, 경찰이 1332명이 전사했다.

남로당은 같은 기간에 대구 폭동, 제주 4·3 사건을 한 건으로 계산해도 모두 977건 폭동과 테러를 자행했습니다.

이러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은 건국되었고 번영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반면에 남로당이 추구한 공산주의와 김일성 정권은 지금 최악이 빈곤과 인권이 무시되는 지역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25 때 동족 300만명을 죽인 것도 모자라 핵과 미사일로 우리를 위협하는 3대 세습 독재자 김정은 고모부를 고사총으로 살해하고 이복형을 독살하는 김정은을 아무런 조건 없이 환영하는 서울 남북정상회담 한라산 방문 환영 위원회를 조직한 제주 4·3 희생자 유족회 등 40개 단체는 각성하고 당장 환영 위원회를 해체 해야 된다고 저는 주장합니다. 감사합니다.

(양대영 기자) 지금까지 김영중 전 제주경찰사장님을 모시고 제주 4·3에 남로당 중앙당과 전남도당 지령은 없었는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눠봤습니다. 오늘 대단히 감사합니다.

김영중 전 제주경찰서장
▲ 김영중 전 제주경찰서장 ⓒ뉴스라인제주

□ 김영중(金英仲)

· 1941년 제주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출생
· 애월상업고등학교(현, 애월고등학교) 졸업
· 해병대 자원입대 병장 만기 제대(제126기)
· 서귀포경찰서장
· 제주경찰서장
· 도로교통공단제주도지부장
· 광주고등법원 제주부 민사조정위원
· 제주특별자치도 치안행정위원회 위원장· 제주도재향경우회장 등 역임

저서

· 『그때 거기서 나는』 상·하
· 『창꼼으로 본 세계』 상·하('창꼼'은 창구멍이라는 제주어)
· 『제주4.3사건 문과 답』
· 『내가 보는 제주 4·3사건』
『남로당제주도당 지령서 분석』
· 『레베데프 비망록』(편저)

# 해당 기사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반발할 내용이 있으시면 뉴스라인제주( news@newslinejeju.com)로 문의바랍니다. 뉴스라인제주에서는 적극적인 반론을 적극 수용하며, 기사로 인한 어떠한 피해 발생도 원치 않음을 밝힙니다. 단, 공정한 사회를 위한 정론직필(正論直筆)을 훼손하려는 어떠한 억압에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적극 대응해 나갈 것임을 밝힙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정의 2023-12-06 21:50:36
남로당중앙당 지령에 의해 4•3이 생긴 것이 아니라고 보고서는 밀하는데 김영중 서장님 말씀이 맞다면 보고서도 허위고 희생자도 가짜가 된다 4•3은 거대한 사기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신대로5길 16, 수연빌딩 103호(지층)
  • 대표전화 : 064-745-5670
  • 팩스 : 064-748-5670
  • 긴급 : 010-3698-088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보기
  • 사업자등록번호 : 616-28-27429
  • 등록번호 : 제주 아 01031
  • 등록일 : 2011-09-16
  • 창간일 : 2011-09-22
  • 법인명 : 뉴스라인제주
  • 제호 : 뉴스라인제주
  • 발행인 : 양대영
  • 편집인 : 양대영
  • 뉴스라인제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라인제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newslinejeju.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