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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102)태백산맥 문학관을 다녀와서
[자청비](102)태백산맥 문학관을 다녀와서
  • 박미윤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06.01 0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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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윤 소설가
박미윤 소설가
▲ 박미윤 소설가 ⓒ뉴스라인제주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잘 믿지 않는다. 지금까지 간절히 원했던 일들은 대부분 이루어지지 않았고 우주의 기운을 끌어다 쓰겠다는 착상은 소설보다 더 소설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어떤 내 초라한 믿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소망하고 있던 것들을 우연한 방법으로 해결해주곤 한다. 이번의 태백산맥 문학관 방문이 그렇다. 우리 소설동인에서는 문학관 탐방을 계획했지만 한 번도 계획을 실천하지 못했고 문인협회에서 가는 문학관 탐방에도 일을 뺄 수가 없어 가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광령학군 부녀회장과 이장들과 이박 삼일로 견학을 갔다가 태백산맥 문학관을 다녀오게 됐다. 가기 전에는 이곳이 일정에 없었다. 여행 가이드를 데리지 않고 다녀서 현지 사정에 맞게 일정이 조정되곤 했다. 총무가 시간 때우기 위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자는 의견을 내서 그 길에 태백산맥 문학관도 다녀오자는 얘기가 나왔다. 일행 중에 문학에 관심이 많은 분이 나 말고 또 한 분 있어서 그분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다. 나는 그쪽의 지리를 잘 몰라서 우리가 있는 데서 가까운 곳에 태백산맥 문학관이 있는 줄 몰랐던 터였다.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존경하는 작가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문학관에 다녀오면 자꾸 꺼져가는 작가 의식을 재충전할 수 있다는 묘한 착각으로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문학관 탐방 하나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조정래 작가의 취재 수첩과 집필 메모들을 보면서 내가 하는 방식과 비슷해서 공감의 미소가 나왔다. 나도 어떤 상황들을 그림으로 그릴 때 사람을 졸라맨처럼 동그란 머리 하나에 몸통 작대기 하나, 팔과 다리 작대기 넷인데 조정래 작가도 그렇게 그렸다. 대여섯 명이 은신할 수 있는 바위 이용 비트(비밀아지트)를 설명하는 그림이었는데 고정 넓적 바위 두 개 사이에 출입구 은폐 바위가 있고 지하에 여섯 명의 사람이 졸라맨으로 그려져 있었다. 맨 오른쪽의 인물은 똑같이 서 있는 모양이 아니라 앉아있는 모양으로 그렸다. 가장자리라 장소가 협소하여 서 있지 못하거나 다친 사람일 수 있었다. 전자일 가능성이 많은데 그것을 메모 그림에 표현해놓은 것에서 작가의 세심함이 엿보였다.

‘보도연맹’에 대한 취재 내용 메모는 내가 메모했던 것과 비슷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육필 원고를 쌓아놓은 사진이 있었다. 작가의 키를 훌쩍 넘겼다. 저 원고를 다 쓰기까지 치렀을 글의 감옥을 생각하니 숙연해졌다.

‘태백산맥’ 마지막 장이 남겨져 있었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어둠 속에 적막은 깊고, 무수한 별들의 반짝거리는 소리인 듯 바람소리가 멀리 스쳐흐르고 있었다. 그림자들은 무덤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광막한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끝> ’

긴 장정을 끝내고 마지막 장에 ‘끝’이라고 쓸 때, 쓰고나서 조정래 작가의 심정을 상상해봤다. 내가 4.3 장편소설 ‘연인’을 다 쓰고 ‘끝’이라고 자판을 칠 때가 기억났다. 언젠가부터 작중인물들이 막 달려가기 시작했고 나는 알 수 없는 ‘끝’에 불안해하며 작중인물들과 줄다리기를 했다. 그러다 이제 끝을 향하고 있구나 느꼈고 어느 순간 치닫는 문장들을 쓰다가 이게 끝 문장이구나 떨림이 왔다. ‘끝’이라고 쓴 순간 허탈감이 밀려왔다. 무수히 퇴고했지만 끝 문장은 그대로 남았다.

이번 태백산맥 문학관 방문을 계기로 오래전에 읽었던 ‘태백산맥’을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간절히 원하면 언젠가는 우연한 시간에 우연한 곳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는 걸 믿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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