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9 15:38 (월)
건국대통령에 대하여 '내란죄 수괴'라고 하는 진보당 강성희 의원
건국대통령에 대하여 '내란죄 수괴'라고 하는 진보당 강성희 의원
  • 류승남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05.31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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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남 목사(한정연대표, 나정연복음신문발행인)
"좋은 점은 본받고 과오에 대해서는 교훈 삼아 살아가면 돼"

자유 대한민국은 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에 따라서 마음대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이 따른다는 것은 "사실과 다를 경우,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진보당 강성희 의원은 지난 22일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하여 "내란 죄의 수괴"라고 하였다. 이는 무식의 소치요, 뿌리 없는 죽은 나무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발언이다.

류승남(한정연 대표, 나정연복음신문 발행인)
▲ 류승남(한정연 대표, 나정연복음신문 발행인) ⓒ뉴스라인제주

들어가는 말

지난 5월 22일 통진당 강성희 의원은 지난 22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설립을 반대하면서 이 전 대통령을 “내란죄의 수괴”라고 지칭했다. 1960년 4·19 혁명 당시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비상계엄 선포로, 시민 100여 명이 경찰 발포로 숨졌으니 이 전 대통령이 ‘내란죄’를 지은 것이라는 논리였다.

사람을 평가할 때, 통합적으로 평가를 해야 올바른 평가가 된다. 단편적인 부분을 가지고 마침 전체인양 해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평가이며, 이러한 지식은 국가와 사회에 해악을 끼치고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는 지식이다.

반대로 좋은 점이 있다고 하여 과를 보지 못하고 무조건 맹종하는 것도 위험하다. 이 세상 사는 동안 완전한 사람은 찾아 보기 어렵다. 보다 더 완전해지기를 노력하지만 지난 날을 돌아보면 허물과 죄가 많은 인생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평가할 때,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하고 분석을 하면서 대한민국과 겨레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하였으며 과는 무엇인가?"를 살펴 보아야 한다. 지난 날 과오가 있더라도 과를 인정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면 이는 상계가 된다.

좋은 점은 본받고 과오에 대해서는 역으로 교훈 삼아 살아가면 된다.

나 역시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우리의 자녀 손들에게 행복한 대한민국을 물려 주기 위함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의 현실은 강성희 의원 같은 편견된 지식과 이념을 가진 자들에 의하여 '인권', '평등', '평화', '대화' ,'나눔'이라는 미사려구(美辭麗句)로 포장하여 대한민국을 중심이 없는 혼돈스러운 나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승만 건국대통령을 “내란 죄의 수괴”라고 지칭한 주장에 대하여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하나님의 주권적인 관점에서 얼마나 얼마나 편견된 주장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한국교회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교회와 교인들만을 보호할 것이 아니라 인본주의로 포장된 이념이나 주장에 대하여 옳게 분별하여 교회와 성도와 나라를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다.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이승만 전 대통령을
▲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이승만 전 대통령을 "내란 죄의 수괴를 민주공화국에서 기념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하였고 이에 박민식 후보자는 "전혀 받아 들이기 어려운 주장"이라고 했다. ⓒ뉴스라인제주

一. 진보당 강성희 의원의 주장은 건국대통령의 공(功)은 보지 못하고 과(過)만 보기 때문에 이 주장은 나라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발언이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아니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조선인민공화국이 되었으며 북한 김씨 왕가의 노예로 비참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을 것이다. 오늘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하느님)께서 대한민국을 온인류를 위한 제사장 나라(출19:5-6)로 선택하여 주셨고, 이승만을 대한민국의 건국대통령"으로 세워 주셨기 때문이다.

1. 배재학당과 한성감옥에서의 이승만

이승만은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1885년에 세운 배재학당에서 복음주의 선교사들과 스승 서재필을 만나 자유ㆍ평등ㆍ민권 등 근대적 정치 사상을 배우면서 미국과 같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꿈꾸게 된다.

그리고 '절대 봉건 왕조' 밑에서 고통받고 억압받는 동포들을 위해 민주주의를 도입하고자 굳게 다짐한다(박원철, 선지자 이승만 대통령, 101쪽) .

이승만은 『매일신문』과 『제국신문』등 자신이 직접창간하거나 투고한 신문들을 통해 고종(高宗)황제의 보수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함과 동시에 독립협회 산하 만민공동회의 총대위원으로서 과격한 반정부 데모를 여러 번 조직하고 선동한다. 이러한 이유로 1899년 1월 9일 대한제국의 군졸에게 체포된 이후 5년 7개월 동안 한성감옥에서 죽음의 고비를 넘나 들면서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게 된다. 이승만은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영적인 눈을 갖게 되며 완전히 거듭난 새 사람이 된다. 세차례에 걸쳐 감형을 받아 1904년 8월에 석방이 된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김일성이 1946년부터 북한에서 실시된 토지개혁의 포스터
▲ 김일성이 1946년부터 북한에서 실시된 토지개혁의 포스터 ⓒ뉴스라인제주

2. 고종의 특사로 미국에 파송 받아 세계적인 석학이 되는 이승만

석방 된지 3개월만인 1904년 11월 4일 대한제국의 독립을 보장할 것을 요청하기 위하여 이승만은 고종의 특사로 파송을 받고 하와이에서 윤병구 목사와 함께 하와의 교민들의 뜻을 함께 담아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 "언제든 기회가 닿는 대로 한미조약을 돌아보아 불쌍한 나라를 위태함에서 전져주기 바립니다." 하고 요청하였다. 긍정적인 답변을 받게 된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당시 미일관계의 중요한 때이므로 "탄원서를 정식외교 통로를 통해 보내주면 자신이 강화회의 탁상에 올려놓겠다"고 답변하였다. 기쁜마음으로 한국공사관의 대리공사 김윤정을 찾아가 전달하였으나 결국 거절 당하였다. (유영익,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비전」, pp 31-37)

당시 미국과 일본이 밀월관계에 있었기에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1905년 7월 29일, 미국의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특사인 미국전쟁부(United States Department of War)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와 일본 제국의 총리 가쓰라 다로가 도쿄에서 은밀하게 협정을 맺는다. 밀약의 내용은 "일본제국의 한국 식민 지배와 미국의 필리핀 식민지배" 라는 양국의 이해 관계에 대한 상호 확인이었다. 이는 약소국가인 대한민국이 당하는 억울한 일이었다.

그 이후 1905년부터 1910년까지 5년 반동안 조지 워싱턴대학에서 학사, 하버드 프린스턴대학에서 석박사까지 마치게 된다. 이는 대한민국의 건국대통령으로서 하나님께서 준비시킨 것이다. 그리고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상해임시정부의 수반이 되기도 한다.

1950년 4월부터 시작된 이승만의 농지개혁
▲ 1950년 4월부터 시작된 이승만의 농지개혁 ⓒ뉴스라인제주

3. 해방이후 국민 75%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원하는 가운데 기독교입국론에 근거한 자유대한민국을 건국한 국부 이승만

해방 이후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 중 하나였다. 세가지의 선택의 결과는 조선인민공화국으로 가는 길과 자유대한민국으로 가는 두 가지 길이다.

첫째는 백범 김구가 꿈꾸었던 "이념을 초월한 통일된 대한민국"이다. 이러한 선택은 통일된 조국이라는 꿈 속에 공산주의의 세상이 얼마나 참담한 나라인지를 알지 못하였다. 국공합작이 된 나라는 모두가 공산국가가 되었고 그 결과는 국민은 공산당의 노예로 전락하였다. 결국 백범김구가 가려는 노선으로 선택하였다면 이 나라는 국공합작에 의한 나라가 되고 결국 조선인민공화국이 된다.

둘째는 공산혁명을 통하여 인민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공산주의로 가는 '공산당 김일성' , '남로당 박헌영'을 따르는 길이다. 이 길을 선택하였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김씨 왕가의 노예로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

셋째는 하나님의 주권을 존중하는 기독교입국론에 근거한 이승만을 따르는 길이다. 이승만은 배재학당에서 백성이 자유롭게 사는 나라를 꿈꾸었고, 한성감옥에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과정에서 시작하여 미국에서의 교육과정과 오랜 삶의 여정 속에서 기독교입국론, 교육입국론, 반공주의 국가, 상공업국가를 꿈꾸게 되었다.

이승만 건국비전과 외교를 통하여 나라를 세우는 것은 일반 사람이 보지 못하는 하나님의 시선이 있었고 이러한 건국정신을 근본으로 하여 75% 이상이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환경에서 1948년 5월 31일 첫 제헌국회의 임시의장으로서 기도로 국회를 시작하였고 1948년 8월 15일 자유대한민국을 건국하였다.

4. 북한 공산당 김일성의 침략으로 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낸 대통령

그리고 김일성 공산주의 침략으로 일어나 6ㆍ25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1950년 4월 부터 시작한 농지개혁이다. 해방 직후 토지의 80%가 지주의 과소유를 하고 있고 자작농의 비율을 극히 작았다. 소작료는 50%가 넘었다.

1) 1950년 4월에 시작된 농지개혁

북한의 토지개혁과는 다르게 진행하였다. 북한은 1946년 3월 5일 무상몰수 무상분배방식으로 토지개혁이 전격적으로 시행되었다. 여기에는함정이 숨어 있다. 공산국가에는 사유재산이라는 것이 없다.

이승만은 농지개혁이 적용되는 지주들에게 일괄적으로 국가가 유상으로 몰수하는 대신 국가경제 발전사업 우선 참여 혜택을 내걸어서 농업과 토지에 묶인 돈을 산업발전으로 흘러가게 유도 하였다.

1950년 4월부터 시작된 이승만의 농지개혁 1950년 4월부터 농민들에게 토지분배가 시작 되었고, 5월부터는 토지장부 열람이 개시되었다. 드디어 농민들은 자신의 토지를 소유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토지의 소유 조건은 소작료 30% 5년 상환이었다. 5년동안 소작료 30%을 내면 자신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이 때 농지개혁이 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쉽게 공산화가 되었을 것이다. (이승만과 토지개혁(농지개혁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tistory.com))

이승만의 농지개혁은 성공적으로 진행 되었으며 이는 대한민국의 발전의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2) 미군철수 와 북한 공산당의 남침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이승만 대통령

1949년 6월 27일, 주한미군 철수 이틀 전인 이날 우리 정부는 주미대사 장면을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내 '미군 철수는 시기상조다. 정 철수를 할거면 그에 앞서서 한국에 대한 충분한 무기, 장비 지원이 필요하다' 라며 간청했다. 설령 그게 무리라면 태평양 지역에 별도의 방위동맹이라도 신설해 줄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트루먼과 미 정부는 예정대로 주한미군 철수는 강행되었다. 보다 못한 우리 정부는 조병옥을 특사로 보내 한창 철수가 이뤄지던 7월 7일에 미 육군성의 앨버트 웨드마이어 중장 등과 대담을 나눈다. "1. 한반도는 국제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소련이 북한을 남침시킬 가능성은 없다. 2. 중공군이 남한을 공격할 가능성도 없다. 3. 북한의 군사력은 남한에 비해 열세이기 때문에 제대로 남침을 시도하지도 못할 것이다. 4. 한국군은 수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북한군에 비해 우세하다. 5. 미군은 철수시에 많은 장비를 남겨놓고 갈 것이므로 한국군이 쓸 총탄 정도는 문제없을 것이다. 6. 로버츠 준장 등의 미 군사고문단이 한국군을 잘 이끌어 줄 것이고, 추가적인 군사원조도 있을 테니 안심하라."고 하였다.​

결국 이 판단은 잘못된 판단이었고 6ㆍ25남침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 되었다. 이 때 미군철수가 없었다면 6ㆍ25남침은 없었을 것이다.

6ㆍ25의 남침전쟁은 100%가 지는 전쟁이었다. 북한의 위장평화공세로 전군인이 휴가를 나갔고 완전히 무방비 상태에 소련제 무기로 무장한 공산군의 침략을 막아낼 수 없었다.

우크라이나가 소련의 공격에 쉽게 무너질 것이라는 예측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애국심이 NATO 동맹국들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지켜내는 것 처럼 대한민국에는 건국대통령 이승만은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목회자들에게 기도 요청을 하였고 백방으로 외교적 노력을 통하여 미국을 비롯한 UN의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해방된 지 불과 5년만인 1950년 6월 25일 시작되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으로 휴전하게 되기까지 3년 1개월 동안 계속된 전쟁은 우리나라의 위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 같은 일들이 우리를 지켜주었다.

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에서 쌓아온 이승만 대통령과 미 정계와 인맥이 있었기 때문이다. 1) 미국의 신속한 참전, 2) 유엔 상임이사국의 참전 결정, 3)인천상륙작전,

4) 흥남 탈출은 기적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기적들이 있었다.

전쟁 이후 분단 된 조국이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구어 낸 것은 한미방위조약체결로 안정된 가운데서 미국의 선진기술과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므로 자랑스러운 오늘의 대한민국이 된 것이다. 결국 미국을 모델로 한 이승만의 건국비전은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에 대하여 분단세력으로 규정하여 비판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임을 스스로 알아야 할 것이다. 이승만이 없었다면, 미군정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이승만 대통령에 대하여 "내란의 괴수"라고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5. 1960년 3ㆍ15부정선거와 4ㆍ19혁명으로 하와이로 망명한 이승만

1) 이기붕을 당선시키려는 3ㆍ15부정선거와 4ㆍ19혁명

1960년 이기붕 부통령을 당선시키려는 3ㆍ15부정선거가 있었다. 이에 항의하는 자들에 대하여 공산주의자 간첩배후설을 주장하면서 이를 무력으로 탄압하였고 결국 4ㆍ19혁명에 따라 이승만은 하야를 결정하게 되었다. 비록 이승만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선택을 하였지만 이승만은 4ㆍ19의거 부상자들이 수용된 병원을 찾아 부상자들을 위문하였다. 그는 학생들의 궐기를 높이 평가하며 "불의를 보고 일어나지 못하는 민족은 죽은 민족이다. 우리 선열들의 독립투쟁과 3.1운동을 이어받은 것이다."라고 하였다.(위키백과)

2) 1960년 5월 29일 하와의 망명과 1965년 7월 19일 서거와 유언기도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과는 3ㆍ15부정선거이며 4ㆍ19민주혁명을 무력으로 진압하려고 한 것이었으나 이승만은 이에 대한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물러 났고 1960년 5월 29일 하와이로 망명의 길을 선택하여 하와이로 망명의 길로 떠난다.

고국을 뒤로한채 망명의 길을 떠난 삶이 얼마나 비참한 삶인가? 그는 망명생활 중 향수병에 걸렸다. 고국에 돌아가고 싶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실어증이 걸려서 그의 아내 프란체스카 도너의 간호를 받으며 약간의 한글과 한문으로 대화 할 수 있었다.

결국 이승만은 망명생활중 병세가 악화되면서 망명지 하와이에서 살다가, 1965년 7월 19일 하와이 현지 시간 0시 35분 (한국 시간 19시 35분) 하와이 마우날라니 요양원에서 심장병으로 서거하였다. 향년 90세였다. 이승만이 남긴 마지막 기도와 유언은 다음과 같다.

"이제 저의 천명이 다하여 감에 아버지가 주셨던 사명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몸과 마음이 너무 늙어 버겁습니다. 바라옵건데, 우리 민족의 앞날에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하시옵소서. 우리 민족을 오직 주님께 맡기고 가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굳세게 서서 국방에서나 경제에서나 다시는 노예의 멍에를 메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잃었던 나라의 독립을 다시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 우리 국민은 알아야 하며 불행했던 과거사를 거울삼아 다시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노예의 멍에를 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유언이다."(위키백과)

二. 진보당 강성희 의원의 주장의 근본의 뿌리는 왜곡된 휴머니즘에서 비롯된 것이다.

바로 강성희 의원은 건국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왜곡된 시각은 "1960년 4·19 혁명 당시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비상계엄 선포로, 시민 100여 명이 경찰 발포로 숨졌으니 이 전 대통령이 ‘내란죄’를 지은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간 일부 좌파 인사들은 이 전 대통령이 12년간 집권한 점을 근거로 ‘독재자’라고 비판했는데, 강 의원은 한 발 더 나가 독립운동가이자 건국 대통령을 ‘내란죄 수괴’라고 하는 주장을 한 근본의 뿌리는 왜곡된 휴머니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자들의 공통점은

1) 미군정과, 이승만 건국정부를 분단 세력으로 규정한다.

북한 김씨일가의 만행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보안법철폐, 미군철수, 종전선언, 평화선언, 남북대화를 통한 이념을 초원한 민족통일을 꿈꾼다. 이는 결국 과거 백범 김구가 꿈꾸었던 길이며, 공산당과 남로당이 꿈을 이루는 것이며 그 꿈을 가진 자들에 의하여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무너지고 있다.

2) 친중노선을 지지한다.

외교는 상호호혜주의 입장에서 인류의 평화와 번영의 증진을 위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중국과의 관계는 한국전쟁으로 수교가 단절되었다가 1992년 8월 24일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국이 부강하면서 패권국가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고 한중관계가 일방통행이 될 때가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큰 산 우리는 작은 산"이라고 하면서 친중노선을 보이는 자들이 있다.

3) 일본에 대해서는 사과와 배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하여 무조건 원수처럼 대한다. 때로는 죽창가를 부르면서 혐일하게 하고, 정적에 대해서는 친일 프레임을 이용하여 국민들과는 멀어지게 만든다.

4) 북한 3대 세습정권에 대해서는 긍정하고 김일성의 과오에 대하여 발언하면 벌 때 처럼 일어나 싸운다. 태영호 의원의 발언은 제주도민과 유가족들의 명예를 훼손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제주도민들에게 "김일성의 지시로 4ㆍ3사건이 일어났고 그로 말미암아 피해를 당한 유가족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많은 정치인들과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이 얼마나 봉기 하였는가?

5) 윤석열 정부를 무너뜨리려고 한다.

윤석열 정부가 세워진 것은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으로 문재인정부가 탄생하도록 문재인 정부의 검찰로서 전 정부를 적폐로 규정하여 탄압하는데 1등 공신이었고 이러한 공로가 인정이 되어 검찰총장이 되었다. 검찰총장이 된 윤석열은 검찰의 본연의 자세를 가지고 충성을 다하고자 하였고 이러한 충성은 문재인 정부의 불의와 맞서 싸우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이에 맞서 조국, 추미애, 박범계 법무무 장관을 임명하여 검찰총장의 손과 발을 짜르고 무력화하도록 하였으나 국민적 저항에 부딪쳐 결국 국민들로 하여금 윤석열 정부를 만들도록 하였다.

문재인 정부가 탄생할 때는 보수정당은 완전히 궤멸된 상태였고 보수정당이 회복되는 길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결국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면서 남북대화를 통하여 통일된 조국을 꿈꾸던 문재인 정부의 5년은 사람사는 세상 즉 휴머니즘으로 포장하여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송두리채 무너 뜨렸다. 학생인권조례제정을 통하여, 퀴어축제를 통하여, 포괄적차별금지법을 통과하기 위하여, 양성평등에서 성평등한 세상으로, 평등교육의 이념으로 대한민국의 교육도 무너지고 사회와 문화가 급속도로 변질되어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대한민국을 사랑하사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회복하시려고 윤석열 정부를 만들어 주었다. 그동안 나라를 사랑하는 이들의 헌신과 수고가 있었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자들이 있다. 거짓된 선동과 주장으로 국민으로 부터 멀어지게 하면서 광우병 파동으로 득을 본 자들이 다시금 국민적 저항을 하도록 시도를 하고 있다.

애국 시민들은 분별해야 한다. 인권, 평등, 평화, 나눔은 당연한 것이며 존중해야 하지만 동시에 국가의 정체성, 가정의 정체성과 올바른 사회의 미풍양속과 윤리와 도덕이 무너진 세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인권존중과 동시에 책임이 따라야 한다.

절대권력에 의하여 인권이 유린이 되고 불평등한 사회 구조속에 약자들이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왔다. 휴머니즘 운동은 이러한 잘못된 제도를 고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사람사는 세상을 만든다고 하여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질서를 무너 뜨리는 편견된 휴머니즘은 경계해야 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편견된 휴머니즘에 의하여 강도만난 사람처럼 대만민국의 정체성은 무너지고 있다. 바로 진보당 강성희 의원과 같은 이념을 가지고 있는 자들로 공격을 당하고 있다.

맺는 말

진보당 강성희 의원은 지난 22일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하여 "내란 죄의 수괴"라고 하였다. 이는 무식의 소치요, 뿌리 없는 죽은 나무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발언이며, 편견된 휴머니즘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유 대한민국은 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에 따라서 마음대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이 따른다는 것은 사실과 다를 경우,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

대한민국은 하나님께로부터 제사장 나라로 선택받았고 이승만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체험한 것 처럼, 배재학당에서, 한성감옥에서 하나님을 체험하게 되었고 건국비전을 품게 된다. 그리고 고종황제의 특사로 미국에가게 되고 조지워싱턴, 하버드, 프린스턴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마치고 미국의 유명한 지식인으로서 이러한 학연을 통한 인맥이 이루어진다. 이는 대한민국의 건국대통령으로 하나님께서 준비하도록 하신 것이다. 해방 이후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동경하는 배경하에서 자유 대한민국을 건국하여 토지개혁을 비롯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이 기초를 놓았다.북한공산당의 남침의 위기에서도 대한민국을 지켜 냈고 한미방위조약체결로 안정된 나라 자유의 나라로 산업화, 세계화를 이룩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되는데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옥에 티가 있듯이 3ㆍ15부정선거로 결국 하와이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망명길에서도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도 대한민국을 위하여 유언기도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러므로 진보당 강성희 의원의 주장은 건국대통령의 공(功)은 보지 못하고 과(過)만 보기 때문에 이 주장은 나라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발언을 한 것이며 이는 무식의 소치이다.

강성희 의원과 같은 생각을 갖은 자들에게 부탁한다.

1) 대상을 볼 때 한 부분만 보지 말고 통합적으로 보도록 하라

2) 역사를 볼 때,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나라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국회의원이 되지 말고 나라를 살리는 국회의원이 되라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은 “이 세상에는 크게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요, 둘째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며, 셋째는 꼭 있어야 할 사람이라”고 했다.

"이 말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 타당한 삶의 원리이다. 이념이나 주장에 있어서도 1)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이념이나 주장이 있고 2) 있으나 마나 한 이념이나 주장이 있으며 3) 나라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이념이나 주장이 있다.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부정하는 강성희 의원의 주장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무너 뜨리는 주장이며 애국시민들은 이를 분별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 회복을 위하여 건국대통령 이승만 기념관은 필요하다. 오늘의 위기는 정체성이 위기이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나라는 희망이 없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존중하는 자유, 평등. 평화가 깃드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다.

류승남 목사는 무너져가는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을 위하여 2년의 목회 임기를 단축하여 2022년 12월 31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제주노회 신촌교회 위임목사를 은퇴하여 현재는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의 정체성 회복을 위하여 『나라와제주를위한기도모임』 공동대표로, 『한국교회정체성회복과교회수호연대』 대표회장으로, 『나정연복음신문』발행인으로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미력하지만 나라와 교회의 정체성 회복을 위한 한정연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 해당 기사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반발할 내용이 있으시면 한정연 대표 류승남 목사(010-7190-0691 또는 rsn77@hanmail.net)으로 보내주시면 성실하게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공정한 나라와 사회를 위한 정론직필(正論直筆)을 훼손하려는 어떠한 억압에도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정체성 회복이 교회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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