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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101) 뿔소라도 뿔나다!
[자청비](101) 뿔소라도 뿔나다!
  • 이을순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05.2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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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순 소설가
이을순 소설가
▲ 이을순 소설가 ⓒ뉴스라인제주

멀리 짙푸른 바다가 5월의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늘 마주하는 바다가 새삼 보고 싶어 차를 몰고 해안가 쪽으로 달려가 본다. 차창 밖으로 비릿한 바다의 향기가 코끝으로 확 스며오자 잠시 차를 세우고 저기 물결치는 눈부신 은빛 파도를 바라본다. 드문드문 수를 놓은 듯한 주황색 테왁들이 눈에 띈다. 예전에는 그것들이 참으로 아름답게만 보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지역의 해녀분들을 만나 그 삶을 취재하게 되면서부터 내 마음은 저절로 숙연해지고 말았다. 저승과 이승을 잇는 숨비소리의 의미를 알게 되었으니까. 바다가 고향이고 그 바다가 목숨줄이나 다름없던 모질고도 고단한 물질의 삶이 아니던가. 옛 제주의 어머니들의 숱한 눈물과 고통과 삶의 애환들이 그 딸들에게도 이어져 고스란히 저 바다와 함께 테왁에 꾹꾹 짓눌러 담겨 있었다.

2016년 11월 제주의 상징이고 제주의 정신이자 제주의 표상인 물질이 한국의 19번째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문화 예술 측면에선 해녀라는 위대한 이름이 찬란한 별이 되어 제주 섬에 빛을 발하고 있지만, 정작 그녀들의 삶에는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것을 나는 매년 해녀 취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시대 변화에 따라 바다의 오염 상태도 심각해져 물질에도 어려움이 많다고 그녀들은 호소했다. 당최 해산물 수확이 예전 같지 않으니 본업이었던 물질이 오래전부터 부업의 형태로 바뀌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제 해녀가 없는 제주는 상상할 수도 없다. 한데 이토록 소중한 해녀의 수가 해마다 줄고 있으니 이 또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몇 년 전부터 도에서는 어촌계를 통해 해녀들과 소통하면서 신입 해녀 수를 늘리려고 갖가지 노력을 기울고 있다는 것도 내가 해녀 취재를 하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그만큼 도에서도 해녀는 제주의 소중한 문화자원이고 역사의 뿌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 도청 근처에 갔다가 우연히 해녀분들이 시위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그 연유가 궁금해서 가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5월 19일 오후 5시쯤 제주도청 앞에서 월정리 해녀들의 투쟁이 있었다. 월정리 해녀회와 제주동부하수처리장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53개 시민단체가 공동 주최였다. 제주 동부하수처리장 대규모 증설이 강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란다. 월정리 하수처리장은 1997년 착공해 2007년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처음엔 하루 처리량이 6천 톤 규모였는데 2014년에는 주민 동의 절차 없이 1만 2천 통으로 증설하였고, 2017년에는 그 규모가 두 배가 되는 2차 증설 계획이 발표되었다고 한다. 이는 23km 이상 떨어진 제주시권 인구 밀집 지역인 삼양, 도련, 봉개의 오수까지 처리하겠다는 제주도 하수광역화 정책의 일환이었고, 그 때문에 하수량이 계속 늘어나면서 바다는 황폐화되고 말았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물질하는 해산물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어 월정리 주민들은 하수처리장 증설에 대해 끊임없이 반대해 왔다. 결국 해녀들의 생존권이 크게 위협을 받게 되자 이렇게 투쟁을 벌이게 되었다며, 그들은 도지사 직무실이 있는 도청 앞에서 그러한 고충을 호소하고 있었다.

월정리 해녀들은 2021년 10월부터 하수처리시설 증설 공사를 반대하여 공사 차량 출입을 막았다. 또 ‘용천동굴을 지키는 사람들’도 함께 세계자연유산인 용천동굴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벌여왔다. 이들은 모두 오영훈 도지사와의 진정한 소통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월정리 해녀들의 생존권 투쟁과 세계자연유산인 용천동굴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지켜보면서 내 마음은 마냥 무겁기만 했다. 아무튼 서로 간의 대립이 잘 조정되어 원만하게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는 심정으로 그곳에서 빠져나왔지만, 그날의 기억은 쉽사리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우리가 바다다. 우리는 지킨다’, ‘바당은 해녀들의 생명’, ‘오영훈은 해녀들과 대화하라’, ‘뿔소라도 뿔나다!’, ‘동부하수처리장 당장 불법 공사 중단하라’, ‘월정 바다를 지키는 해녀삼춘들 힘내세요!’, 투쟁하는 피켓의 다양한 글귀가 여전히 내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어느새 열린 차창 문으로 5월의 따사로운 햇살이 비껴 들어오고 있다. 다시 차의 시동을 걸고 쭉 뻗은 해안도로를 쌩쌩 달려본다. 그러나 그 피켓의 글귀들은 좀처럼 날 놓아주지 않고 있다. 함께 응원해달라는 것일까? 나는 저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주황색 테왁들을 바라보면서 큰소리로 외쳐본다. 월정리 삼춘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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