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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정초의 시련과 선행
[특별기고] 정초의 시련과 선행
  • 현임종
  • hyunpink@hanmail.net
  • 승인 2023.01.29 15: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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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임종 (재)김유비 장학회 이사
현임종 (재)김유비 장학회 이사
▲ 현임종 (재)김유비 장학회 이사 ⓒ뉴스라인제주

2023년이 밝았다. 나도 어느새 우리 나이로 90세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정부 방침에 따라 올해부터 만 나이로만 계산하기로 결정되면서 덩달아 나도 한 살 젊어진 셈이라 기분이 나쁘지 않다.

새해에도 근심 걱정 없는 한 해가 되어 주십사 하고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2023년 새해를 맞이했다. 그러나 웬 날벼락? 1월 2일부터 큰 걱정거리가 생기고 말았다. 밤중에 집사람이 침대에서 떨어져 고통을 호소했고, 119구조대가 와서 병원으로 옮겨 진단하니 고관절 골절이었다. 뼈에 철심을 박아넣는 어려운 수술을 했고, 워낙 고령이라 재활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몇 년 전 성당 체육대회에서 줄다리기에 참여한 마누라가 넘어지며 크게 다친 적이 있다. 끌려가며 질 것 같으면 줄을 놓아 버릴 것이지, 80넘은 늙은 할망구가 호곤(어떻게든) 이겨 보려고 끝까지 줄을 잡고 쓰러진 채 끌려간 것이다. 그 결과 허리뼈 골절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고 나는 주방장 보조(주방장은 내 딸) 자리를 얻게 되었다. 6.25때 군대 갔을 적에, 하도 배가 고파 식사 당번 한 번만이라고 해 봤으면 하고 그리 바래도 안되던 일이, 다 늙은 이 나이에 주방장 보조라니...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딸이 주방장을 맡았지만, 그 아이도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하반신을 못 써, 목발을 짚고 있다. 싱크대에 서서 씻고, 다듬고, 썰고, 조리할 수는 있으나, 냉장고의 물건을 자유로이 꺼낼 수 없으니, 내가 마치 수술실 의사 곁에 대기하고 서 있는 간호사처럼 딸의 지시에 따라 식재료를 꺼내 주어야만 했다.

그로부터 이삼 년의 세월이 흘러 마누라의 건강도 회복되고, 성당에도 스스로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어 나도 자연스레 주방 보조에서 해방되어 정말 마음이 홀가분했는데, 올해 또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아내는 아내대로 병원에 누워있고, 나는 나대로 이제 다시 집안 살림을 맡게 되고, 딸은 딸대로 몸도 성치 않은데 바쁜 공무원 생활 속에서도 우리 두 늙은이의 온갖 수발을 들게 생겼다.

마음도 착잡하고 정신도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며칠을 보냈다. 정초 모임이 있어 외출했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데, 우리 아파트 1층 현관의 엘리베이터 앞에 무엇인지 떨어져 있었다. 누가 이런 곳에 쓰레기를 흘리고 다니는가 하는 언짢은 마음에,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집어 들었는데 깜짝 놀랐다. 봉투 속에 거금 50만원이 들어 있었다. 이 돈을 흘리고 간 사람은 얼마나 당황하고 걱정하고 있을까 생각하니 빨리 주인을 찾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에 신고할까, 아파트 관리 사무소나 경비실에 가져갈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바로 우리 라인 엘리베이터 앞이니, 분명 이 곳에 사는 분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집에 들어온 즉시 백지에 이렇게 썼다.

“엘리베이터 앞에 흘려두고 간 물건을 제가 주워서 보관중이니, 걱정하지 마시고 연락주시면 곧 돌려드리겠습니다.”

내가 사는 동 호수와 연락처까지 같이 적은 이 종이를 엘리베이터안에 테이프로 붙여놓았다.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다음 날 오후 늦게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 아파트에 같이 사는 분이 아닌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서로 가져가야 되는지 고민하던 오후 늦게야 전화가 걸려왔다. 엘리베이터의 글을 읽고 연락한다는 젊은 여인의 목소리였다.

“저의 남편이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무엇을 잃어버렸습니까?”

나는 짐짓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돈봉투」라는 표현보다 「물건」이라고 써 놓은 이유도, 진짜 주인이 나타나서 잃어버린 돈 50만원을 정확하게 특정할 수 있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돈 봉투예요”

“얼마가 들어 있었나요?”

“50만원입니다.”

정답이 나왔다. 이쯤되면 돈 봉투의 임자임에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디에 사는지 물었더니, 우리 아파트 4층에 사는 분이었다. 내가 사는 7층으로 올라오도록 요청하고 전화를 끊었다. 잠시 후에 우리집 벨이 울렸고, 젊은 부부가 찾아왔기에 돈 봉투를 돌려드렸다. 남편이 병원 수술을 받았는데, 직장 동료들이 모아준 부조금이었는데 정작 흘린 줄도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뒤늦게 없어진 줄 알았고, 어디서 흘렸는지도 모르는지라 포기하고 있었다고 했다. 외부인의 손에 들어갔으면 영영 되찾지 못할 뻔한 돈을 찾아 주셔서 감사하다며 견과류 선물세트를 내밀었다.

이 일을 겪으며 생각해 보았다. 만약 CCTV도 없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이런 정도의 현금을 줍게 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몇 천만 원 , 몇 백만 원의 거금이라면 지나치게 큰 돈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찰서에 신고할 것이다. 그러나 불과 몇 만 원, 혹은 50만 원 정도의 현금이라면, 웬 떡이냐 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가져도 무방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나에게도 마찬가지다. 한 번 상상해 보았다. 만일 내가 그 돈에 순간 욕심이 생겨, 그냥 내 주머니에 넣었다고 한다면 어찌 되었을까? 90나이의 백발 영감이 주책스럽게 욕심부린 셈이고, 평생 천주교인으로서 아들까지 신부로 보낸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다. CCTV가 아니더라도 하느님이 내려다보고 계신데, 감히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이 소행이 세상에 알려지는 날,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나의 명예와 인격은 한순간에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치욕을 겪게 되는 것은 물론,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훗날 하느님 앞에 가 서는 순간의 그 두려움을 감당할 수가 없다.

우리는 항상 선택을 한다. 매 순간 순간마다 결정했던 선택의 결과물이 오늘날 나 자신을 이룩한 것이다. 한 평생을 항상 옳은 선택만 했노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옳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한 것만은 분명하다.

새해를 맞이하며 평안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 나에게 시련도 생겼고, 나를 시험하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당연한 선행으로 이 모든 것을 극복해 나갈 수 있으리라 여긴다.

◆현임종(玄林鍾) 약력

*생년월일 : 1934년 2월 22일
*출생지 : 제주시 노형동 1231
*현주소 : 제주시 수덕로78, 106동 704호(e편한세상, 노형동) (우 63104)
*연락전화:집전화 064-722-3189, 핸드폰: 010-4690-3189
이메일:hyunpink@hanmail.net

★학력 약력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졸업
*기업은행 지점장
*신용보증기금 지점장 감사실장
*오현고등학교 총동창회장 역임

★등단이력

* 2012. 10월 『수필과비평』신인상 수상
*수상작 : 수필과비평 통권(132호) 「죽음에서의 탈출」
*재단법인 김유비 장학회 이사 (현)
*저서 『보고 듣고 느낀대로』, 『(속) 보고 듣고 느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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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로 2023-07-16 17:07:29
현 스테파노 회장님 특별기고 시련과 선행 잘 읽었습니다.
얼른 회복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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