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9 22:11 (월)
[김도경의 놀멍 걸으멍](16) 눈 속에서 맞는 동지(작은설) 풍경 스케치
[김도경의 놀멍 걸으멍](16) 눈 속에서 맞는 동지(작은설) 풍경 스케치
  • 김도경 기자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2.12.26 23:40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래왓 절에 가는 길”
“선래왓 절에 가는 길”
▲ “선래왓 절에 가는 길” ⓒ뉴스라인제주

제주시에서 번영로로 가다보면 선진안길이 나온다. 시내와 다른 체감온도를 느끼며 눈 내리는 결빙된 삼거리에서 망설였다. 좌회전으로 내리막길을 가기에는 무모하다는 생각, 직진해서 유턴하다보니 차 세울 공간이 보였다. 이곳부터 선래왓 절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미끄러워 조심하는 발자국 소리를 개가 용하게 들었나 보다. 길가 주택 안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싸락눈이 바람에 실려 얼굴을 따갑게 때렸다. 24절기 중에 22번째 절기인 동지, 새해 가족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절로 나선 길이었다. 나는 신심 있는 불자는 아닌 것 같다. 사시 기도시간이 되었는데도 놀멍 쉬멍 눈 맞는 재미에 푹 빠져서 걸었다.

“선래왓 절에 가는 길”
▲ “선래왓 절에 가는 길” ⓒ뉴스라인제주

선흘2리(양잠단지)버스정류소 유리벽에 ‘제주시 조천읍 람사르습지도시’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청정 생태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른쪽으로 굽어 돌면 ‘선흘2리회관’, 옆에는 ‘함덕초등학교 선인분교장’이 있었다.

대문 없는 선인분교장 정문 양옆으로 돌하르방이 지키고, 그 안쪽에는 동백나무가 한 그루씩 돌하르방을 호위하듯 서있었다. 어린이들의 안전과 건강한 학교생활을 위해 외부인 및 반려견 동반한 학교 내 출입을 통제한다는 함덕초등학교 선인분교장 안내문이 있었지만, 몇 발자국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학교 운동장 위로 먹구름이 몰려오며 눈이 내리고 바람도 심하게 불었다.

“선래왓 절에 가는 길”
▲ “선래왓 절에 가는 길” ⓒ뉴스라인제주

동쪽을 향해 선흘2리 중앙동길을 걸었다. 아무도 오가지 않는 길 양쪽으로 눈이 소담하게 쌓였다. 그때 소형차 한 대가 내 옆으로 섰다. 걷기 힘드시면 타라는 아주머니 말에 고맙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며 걷는 것을 자처했다. 내친김에 눈을 마음껏 맞고 싶었다.

몇 년 전 절에 올 때만 해도 허허벌판이던 이곳에 타운하우스가 들어서있었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들과 도시형 건물이 공존하는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 제주 외곽지역, 산간지역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은 개발현장이 아쉽고 안타까울 때가 많다. 타운하우스 진입로 억새밭에도 눈이 펑펑 내렸다.

“선래왓 절에 가는 길”
▲ “선래왓 절에 가는 길” ⓒ뉴스라인제주

하얀색 편지함이 안내하는 절 입구, 동지기도에 참여하신 신도들 차에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있었다. 절 마당 한켠 모셔진 반가유상 부처님께서도 눈을 맞고 계셨다. 눈보라 속에서 열반에 드신 부처님 사진을 찍으며. 짧은 생각으로 실수의 연속인 자신을 들여다봤다.

차밭 너머의 야산과 어우러진 풍경을 눈에 넣으며 절 안으로 들어섰다. 네모난 연못을 둘러 ㄷ자 형으로 지어진 법당, 연못으로 눈발이 휘몰아쳤다. 그 속에서도 유유자적 헤엄치는 금붕어들을 보며 혹한의 날씨에도 보이는 곳, 보이지 않은 곳에서 각자의 생을 살아내고 있을 생물들에게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선래왓 절에 가는 길”
▲ “선래왓 절에 가는 길” ⓒ뉴스라인제주

자파리하다가 뒤늦게 도착한 법당에 스님과 신도들은 기도를 하고 계셨다. 죄송한 마음으로 동참하면서도 마음이 바깥으로 향했다. 법당 밖에는 눈이 계속 내리고 있었다.

스님은 법문에서 동짓날 추우면 일 년 농사가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다며, 어려운 현실에서도 희망을 품고 사는 것이 중요함을 말씀하셨다. 초기 불교경전에서 유래했다는 한국의 구토설화인 ‘토끼전’의 토끼를 예로 들며 사람이 실수를 안 하고 살면 좋겠지만, 만약 실수를 했더라도 한 번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지혜가 필요함을 강조하셨다.

“선래왓 절에 가는 길”
▲ “선래왓 절에 가는 길” ⓒ뉴스라인제주

동지기도 후에는 팥죽 먹는 것이 별미이자 동지의 의미를 더해준다. 팥죽과 팥떡을 맛있게 공양하고 이웃과 나누라며 보살님이 손에 들려주는 팥죽과 떡, 과일을 들고 다시 차 있는 곳까지 걸었다.

세계자연유산마을 ‘선흘2리마을 산책로’ 주변에는 우진제비오름, 탐라신화공원, 도깨비공원, 선녀와 나무꾼 테마공원 등 일정에 맞춰 돌아볼만한 곳이 많다.

눈 쌓인 하얀 세상에서 하얀 눈을 맞으며 2023년에도 하얀 마음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랐다. 하얀 마음, 그 기준이 모호하지만 양심을 우선에 두고 성실하게 사는 삶이 아닐까 내 기준을 세워봤다. 눈 속에서 맞는 동짓날 새해 다짐 같은.

“선래왓 절에 가는 길”
▲ “선래왓 절에 가는 길” ⓒ뉴스라인제주
“선래왓 절에 가는 길”
▲ “선래왓 절에 가는 길” ⓒ뉴스라인제주
“선래왓 절에 가는 길”
▲ “선래왓 절에 가는 길” ⓒ뉴스라인제주
“선래왓 절에 가는 길”
▲ “선래왓 절에 가는 길” ⓒ뉴스라인제주
“선래왓 절에 가는 길”
▲ “선래왓 절에 가는 길” ⓒ뉴스라인제주
“선래왓 절에 가는 길”
▲ “선래왓 절에 가는 길” ⓒ뉴스라인제주
“선래왓 절에 가는 길”
▲ “선래왓 절에 가는 길” ⓒ뉴스라인제주
“선래왓 절에 가는 길”
▲ “선래왓 절에 가는 길” ⓒ뉴스라인제주
“선래왓 절에 가는 길”
▲ “선래왓 절에 가는 길” ⓒ뉴스라인제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광양 2022-12-30 21:41:43
제주의 눈쌓인 풍경과 작가님의 걷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네요. 겨울 제주에 가보고 싶네요.

생각숲 2022-12-29 18:42:04
와우 하얀세상...덕분에 동짓날의 추억으로 들어갑니다.

이도화 2022-12-27 11:25:03
하얀 마음,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새해를 다시 시작해 봅시다.
김도경 작가님 덕분에 숫눈 같은 마음으로 돌아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신대로5길 16, 수연빌딩 103호(지층)
  • 대표전화 : 064-745-5670
  • 팩스 : 064-748-5670
  • 긴급 : 010-3698-088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보기
  • 사업자등록번호 : 616-28-27429
  • 등록번호 : 제주 아 01031
  • 등록일 : 2011-09-16
  • 창간일 : 2011-09-22
  • 법인명 : 뉴스라인제주
  • 제호 : 뉴스라인제주
  • 발행인 : 양대영
  • 편집인 : 양대영
  • 뉴스라인제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라인제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newslinejeju.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