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4-29 15:38 (월)
[문상금의 시방목지](75) 서귀포 부두
[문상금의 시방목지](75) 서귀포 부두
  • 문상금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2.06.08 22: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수평선 너머엔, 절벽이 있을까, 깎아지른, 흰 물결 폭포수가 있을까, 폭포수 아래로 작은 동굴 하나 활소라 껍질처럼 떨리고 있을까, 가도 가도 수평선, 기어이 넘지 말아야 할 실선 하나’

서귀포 부두
 

문상금
 

늘 막막한 수평선만
어른거린다
섬 두어 개
안개 사이로 슬며시
나타났다 사라진다

뭍이 그리운 사람은 또 어느 바람으로
떠날 수 있을는지
타는
바람 끝

부산한 설레임으로
기웃거리다
등불 수 천 개
다 못 헤이고
나는

절벽 위
갈매기 한 마리
 

-제1시집 「겨울나무」에 수록
 

언제부턴가 생 비린내 바다를 잊고 살았다, 그만큼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이 벌어졌고 사회 분위기들이 밝았다가 어두워졌다가 하였으며 감정의 분별력이나 굴곡들이 마치 롤러코스트를 타고 오르내리는 것처럼 아찔하고 온 몸에 소름 돋는 일들이 밤하늘의 별들처럼 우후죽순 생겨났다는 의미다.

놀이동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롤러코스터를 나는 너무나 무서워해서,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거대한 얼음 미끄럼 타기에서 유래하였다는 그것을 타고 오르내리고 공중 회전하는 것을 즐기는 이들은 대체 어떤 강심장을 가졌을까.

솔직히 초등학교 시절, 미끄럼틀도 제대로 타지 못했던 소심한 겁쟁이였던 것이다. 빗길이든 눈길이든 미끄러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였던 것이다.

마음에도 롤러코스트가 있어 늘 아찔하였다.

오랜만에 서귀포 동부두를 가보았다, 몇 년 전에 다시 지은 여객선 터미널은

빈 채로 희미한 불빛 아래 을씨년스러웠다, 흰 괭이 갈매기 몇 마리 겨우겨우 날고 있고, 낚시꾼 한 둘, 빈 낚싯대를 드리운 두꺼운 어깨 너머로 등대가 빛나고 있었다.

아아, 모래더미, 산처럼 높이 쌓였다, 이 곳 저 곳으로 흩어져 집이 되고 길이 되고 탑이 되기도 하는 그 작은 성긴 모래알들.

끊임없이 바닷물이 출렁이고 갈매기가 날아오르고 배의 불빛들로 붐비고 화려해 보였지만 동부두는 마치 도체비꽃 같은 푸르스름한 빛으로 꽃잎처럼 진 목숨들이 타닥타닥 재를 날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서귀포 동부두 너머 푸른 바다는 간혹 막다른 목숨들이 떨어지는 무덤일 때도 있었다, 뭍으로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붙박이 산수국 꽃이 되어 나도 타는 바람 끝, 회색 재처럼 이리저리 불리곤 하였다.

늘 막막한 수평선이 어른거리고, 섬 두어 개, 안개 사이로 슬며시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였다. 산다는 것은 늘 그러하였다, 벗도 인연도 그러하였다, 두서넛은 떠나고 한 둘은 다시 오곤 하였다.

이젠 가는가, 오는가, 분노하지도 말고, 오롯이, 내 안을 챙겨야 할 시간이다.

마음이 싸할 때 언제나 가볼 수 있는, 바닷길 따라 힘껏 줄달음쳐볼 수 있는 서귀포 그 동부두처럼, 나도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더 이상 지켜내야 할 것,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지만, 바락바락 검은 게처럼 흰 거품 내뿜으며, 시를 쓰고 또 쓰곤 하였다.

뭍이 그립다, 늘 타는 바람 끝, 등불 수 천 개, 하늘에도 가 닿아 흔들리고 바다에도 가 흔들린다.

절벽 위, 흰 갈매기 한 마리. [글 문상금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신대로5길 16, 수연빌딩 103호(지층)
  • 대표전화 : 064-745-5670
  • 팩스 : 064-748-5670
  • 긴급 : 010-3698-088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보기
  • 사업자등록번호 : 616-28-27429
  • 등록번호 : 제주 아 01031
  • 등록일 : 2011-09-16
  • 창간일 : 2011-09-22
  • 법인명 : 뉴스라인제주
  • 제호 : 뉴스라인제주
  • 발행인 : 양대영
  • 편집인 : 양대영
  • 뉴스라인제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라인제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newslinejeju.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