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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69) 속마음
[문상금의 시방목지](69) 속마음
  • 문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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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4.26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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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내를 숨기지 말라, 마음이 열리는 날, 가장 곱게 핀 꽃을 너에게 보낸다 ’


속마음
 

문상금
 

비가 많이 내리네요
꽃이 참 예쁘게 피었어요

이 말은
생각이 났다는 말
보고 싶다는 말

비가 와서
꽃이 피어서

마음이 열리는 날
마음을 슬쩍 내보일 수 있는 날

사시사철 비가 내리고
하얀 눈도 내리고
꽃들이 피어나는 내 마음

오늘도
가장 곱게 핀 꽃을
너에게 보낸다
 

-제5시집 「첫사랑」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삶이란, 꽃 진 자리, 꼬물 꼬물거리는, 흉터 위에 새 살 돋듯, 커가는 열매 같은 것이다.

툭, 꽃은 가장 절정에서 떨어진다, 꽃은 꽃을 버리고 나뭇가지라는 벼랑에서 떨어져 내린다, 그 아찔한 높이에서 뛰어내릴 때마다 새것이 태어난다.

탯줄이 붙어있던 그 흔적은, 새로움의 출발이다, 결국 꽃이 진다라는 것은 새것으로 가기 위해 나를 잊는 것이며 떼어내는 것이며 허공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리곤 다시 어디론가 힘껏 뛰어내리는 것이다. 꼬물거린다는 것은 처절히 살아있는 흔적이다.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수줍은 얼굴로 남풍이 건 듯 불 때,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바둑이 뛰어놀고 방앗간 돌아가는 소리, 어릴 적 검정고무신 따라, 복사꽃이 피었다고 일러라.

말을 잃고 소리가 나오지 않고 웅얼거리는 소리를 내 본 적이 많이 있다.

빈 소라껍질의 속울음, 밑동이 잘린 나무처럼 매일 쓰러지던 나날들, 잃어버린 것, 놓아버린 것, 어느 곳에 두고 온 것들은 캄캄한 씨앗 속 어둠을 품고 반짝 햇살을 기다린다.

진짜 소리를 찾기 위하여 숨 고르던 여러 날, 아아, 새벽 들판에 무꽃이거나 배추꽃, 냉이꽃이거나 상추꽃, 부추꽃이거나 갓꽃을 보아라.

오래 기다려야 볼 수 있는 꽃들을, 검은 어둠을 딛고 붉은 숨결같이 피어나는 꽃들을.

살아남기 위해서 무가 배추가 제 몸을 줄이고 단단히 옭죄어 몸부림치는 끝에 피어나는 저 눈부신 상처들을.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은, 시창작의 소재로 선택하는 대상은, 크고 넓고 강렬한 것 같으면서도 한 편으론 아주 작은 것, 미미한 것, 보잘 것 없는 것, 때로 먼지 같은 것들에 눈이 가기도 한다.

오히려 아주 눈에 잘 띄지도 않는 것들에게서 진가를 찾기도 하고 위안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 스승 아닌 것이 있겠는가, 가치 없는 것이 어느 것 하나 있겠는가.

커다란 느티나무의 묵직한 연륜과 오랜 세월의 침묵 그리고 민들레의 그 강인한 생명력과 비상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경이로운 세계를 엿보는가.

이 세상은 스스로 보고자 하는 것대로 보이기도 한다. 그 보이는 것들을 남다른 시선과 섬세한 언어로 표현해내는 것이 바로 시(詩)인 것이다.

강물이 흘러가듯, 속마음도 흘러가는 것이다. [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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