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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칼럼](150)의회 정상화의 길로
[현태식칼럼](150)의회 정상화의 길로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6.11.2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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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의장에 당선되고 수락인사를 했다. 나는 대중연설을 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당선되리라 생각해서 인사말을 준비한 것도 없다. 반신반의 했던 의장에 당선되니 얼떨떨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용기를 내고 몇 마디 하긴 해야 한다. 즉흥 수락인사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저를 의장에 당선시켜준 의원님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30년만에 부활한 지방자치 시대의 서막을 여는 중차대한 시기에 의장직을 맡고, 우리 의회가 제주시민의 복리증진과 기본권 확보 그리고 행정을 견제하고 협력하며 조례의 제정과 예산심의권을 잘 활용하여 제주시를 발전시키는 막중함 임무가 제 어깨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저는 경륜과 학식이 모자랍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낌없는 협력을 약속하고 있음을 여러분의 시선에서 확인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협력을 받고, 또 여러분의 뜻을 존중하여 우리 의회가 빛나는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습니다.

제주시민 여러분, 시장님과 시 공직자 여러분! 경험해보지 못한 지방화 시대를 열어 명실공히 지방의 일을 지방민 스스로 해결하고 발전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시민, 자치단체, 지방의회가 협력해 나가주시기를 바랍니다.

사회 각계각층에 계신 분들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일어나 주권재민을 부르짖고 독재에 항거하여 쟁취한 이 풀부리 민주주의를 우리 시의회가 앞장서 빛나게 발전시켜 나갈 것을 약속드리며 여러분의 건강과 행운을 빌며 인사에 갈음합니다”라는 내용의 수락연설을 마치고 한 시간 후 그 역사적인 제주시의회 개원식을 가졌다.

그런데 개원식이 끝난 후부터 바로 문제가 튀어나왔다. 의회를 구성하려면 부의장과 3개 상임위원장, 상임위에 간사를 정해놓아야 한다. 나를 지지한 쪽은 모든 자리를 차지하자고 하고 반대편에 섰던 쪽은 모든 의사진행을 원천적으로 방해하려 들었다.

정말 풀뿌리민주주의를 정착시켜 지방자치를 제대로 시행하여 시민의 복리를 증진하고 희망을 주는 것이 의원의 책무라는 신성하고 엄숙한 과제는 팽개쳐 버리는 것이 아닌가. 무슨 타협안을 내놔서 합의가 이루어지려는데 강성(强性)의원이 자리를 잠깐 떴다 돌아오면 태도나 말이 완전히 달라졌다.

의장직을 차지하지 못한 것에 대한 극한투쟁이요, 그러면 스스로 의장이 백기를 들고 사퇴할 것으로 믿는 모양이었다. 어떤 때는 노골적으로 의장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파행 의회에 대하여 비난하는 기사가 실렸다. 아무리 합리적이고 적법하고 정도를 말해도 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오직 의논의 장을 깨는 것이 그들이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회의를 하는 중간에 한두 명 의원이 들락거리는데 그 정보와 진행상황을 누구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고 오는 것 아닌가 생각되었다. 고성과 생트집으로 회의를 하지 못할 만큼 소란을 피웠다.

어쩔 수 없어서 나는 내 편을 모아놓고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11명 대 12명으로는 승산없는 이전투구처럼 되어 실리도 명분도 얻을 수 없다. 우리가 의장을 만들려고 할 때 자리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기로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끝없고 승산없는 싸움보다 타협과 양보로 원 구성을 하고 시민을 위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지 않겠는가?”하고 부탁했다. 내 말에 그리 탐탁한 반응이 없었다. 이렇게 하기를 몇 주간 계속되었다.

나는 집으로 오는 길, 의회로 가는 길에서 숨막힐 듯한 생각에 머리가 아프고 걱정이 커갔다. 그때마다 나는 마음 속으로 다짐했다. “참자, 참고 있으면 저들이 시민의 원성에 굴복하고 나는 언제나 불편부당한 입장에 서서 정당하고 합리적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면 여론이 나의 편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나는 굶는 것도 극복하고 죽을 병에도 굴하지 않고 지겟짐을 지고 가파른 산으로 올라가고, 밤 12시 넘은 시간에 북악산으로 땔감하러 다닌 사람이다. 이만한 일에 동요하거나 말에 책 잡히거나 해서는 안된다. 나는 반드시 의회를 정상화시키고 역사에 남는 일을 한 의회로 기록되게 해야 하겠다. “현태식, 너 자신감과 확신을 갖고 바위처럼 버티고 기다리고 순한 양처럼 온화한 얼굴로 경우에 맞는 말을 조리있게 하여라. 그러면 승리는 온다”고 다짐하였다.

결국 우리쪽이 자리를 양보하였다. 부의장·상임위원장 한 자리, 간사 두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니 그렇게 사납던 사람도 수그러들고 의회 운영에 동참하게 되었다. 나는 우유부단한 사람이거나 정신에 이상이 있다는 등 참기 어려운 말을 들었다. 왜냐하면 감투자리 양보하자고 거듭 주장한 것에 대한 우리 편의 서운함과 억울함에 대한 표현인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이 우유부단하다고 하여 얻은 별명이 물태우고, 자리를 독식하는데 과단성 있게 결단을 하지 않고 상대방을 완전 제압하지 않는다고 얻은 별명이 물태식이다. 그런 것은 아무 상관없다. 의회가 시민과 제주시와 국가를 위하여 바르게 작동한다면 그만한 수모쯤은 치를 가치가 충분하다. 시민으로부터 일 잘하는 의회로 평가받을 때 그 맨 정점에는 내가 서게 되고 명예는 찬란하게 된다. 기록의 첫 페이지에 내가 등장하게 된다. 이쯤의 수모와 역경과 고난은 나에게는 대수롭지 않다.

나는 참고 견디고 마지막 승자가 된다는 신념을 굳혔다. 아무리 나를 파멸로 몰려고 발버둥쳐도 나는 파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파멸할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약점을 보여야 공격이 되는데 약점을 안보인다. 술을 먹어 말 실수를 하거나 사리사욕에 눈이 멀거나, 감투를 싹쓸이 하거나 금전에 손을 대거나 하는 따위는 나와는 거리가 멀다. 오직 의회를 화합시켜 단합된 힘으로 행정을 견제·협력·비판하여 제주시민을 위한 일에 몰두하게 하는 것만이 나의 목표이며 이것을 위하여 혼신의 힘을 경주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서 우리 의회는 성과를 올리며 앞으로 나갔기 때문에 지방의회의 표번으로 언론도 평가해주었다. 그만큼 해서 의회를 정상화시킨 반대편 의원님, 그리고 자기가 차지할 수 있는 자리를 양보한 내편의 의원님에게도 매우 고마운 마음이다. 특히 내편에 섰던 의원님들이 악조건을 극복하고 차지한 유리한 기회를 양보한 아름다운 미덕에 특별히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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