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옥이 할망...
우리 할머니 호칭은 재옥이 할망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모슬포에 있는 슈퍼와 시장등 할머니의 모든 거래처에서 재옥이 할망으로 불렸다. 모슬포에서 물건을 담은 종이상자를 배에 실을려면 물건주인이 바뀔까봐 상자에 이름을 쓰는데 거기에 할머닌 아들인 우리 아버지 성함을 써놓았고 거래처에선 부르기 좋게 재옥이 할망이라 불러 재옥이 어머니가 아닌 재옥이 할망이 되어버렸다. 재옥이 할망으로 불렸던 할머니는 가파도에서 오랫동안 구멍가게를 운영하셨다.
말이 구멍가게지 그때 당시에는 말 그대로 없는게 없는 만물상회였다. 1917년생이셨던 할머니는 딸이라 글을 배울 기회가 없었음에도 어깨너머로 한글을 배우셨고 암산도 젊은사람보단 더 빠른 장사꾼이셨다.
지금은 하루에도 몇번씩 도항선이 다니지만 내가 어릴적 가파도에 어선이나 도항선은 전부 다 나무로 만든 목선이었다. 그래서인지 도항선이 하루에 두번(아침에 모슬포갔다가 오후에 들어올수 있음) 그것도 풍랑주의보가 없을때 다녔다. 그때 당시 환경은 물질하거나 밭일에 매이다보니 지금처럼 삶에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뭍(모슬포)으로 나올 시간이나 생각조차도 엄두를 못냈다. 그런 동네 모든 삼춘들은 모슬포에서 사야하는 필요한 모든것들을 할머니안테 부탁을했다.
최소한 2~3일에 한번 물건하러 섬에서 나왔던 할머니는 부탁받은 모든 물품을 손바닥만한 수첩에 소리나는데로 다 적어서 잊지않고 원하는 물건들을 다 구해다 주곤하셨다. 특히나 여름이면 집집마다 냉장고를 대신할 아이스박스에 채울 커다란 덩어리 얼음을 주문받았고 겨울이면 집집마다 필요한 양만치 연탄을 주문받기도했다. 배가 올 시간이다가오면 동네에 모든 리어카는 약속이나 한듯이 여름은 얼음을 싣기위해 겨울엔 연탄을 실어나르기위해 부둣가에 줄을지어 대기했다.
지금은 발전소가 있어서 덩어리얼음이 필요없어졌고 기름보일러로 바뀌면서 연탄을 제겨놓을 필요또한 없어졌지만 그 당시 할망상점은 동네의 사랑방이자 동네사람들의 많은 필요를 채워주는 정과 인심이 넘치는 상점이었다. 지금은 일에 매임도 없고 삶의 질이 높아지다보니 자유로이 섬(가파도)과 뭍(제주본섬)을 필요할때마다 드나든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우리의 어릴적 이야기를 하면 상상속 옛날이야기로 들을것이다. 그럴수밖에 손가락하나면 내가사고싶은 물건을 고르고 주문하며 빠르게는 오늘밤에 주문하면 내일 새벽에 배송이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아이들이 인심을 어찌알고 정을 어찌알리요. 어른된 우리들 또한 변화가 빠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면서 이기적인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있는건 아닌지...어른으로써 다시금 되돌아 봐야 될듯하다.
좋은글 잘 읽었 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