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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122) 서비스의 온도
[자청비](122) 서비스의 온도
  • 박미윤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11.23 0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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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윤 소설가
박미윤 소설가
▲ 박미윤 소설가 ⓒ뉴스라인제주

올해 8월, 베트남에 다녀온 후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여행 후기도 정리해두지 못하고 지낼 때였다. 남편이 켜둔 텔레비전 방송에 베트남이 나왔고 내가 갔던 하롱베이의 여행 일정과 똑 같은 곳을 비췄다. 유명 연예인들이 스피드 보트도 타고 나룻배로 항루언(원숭이섬) 투어도 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원숭이들이 보이지 않아서 준비해간 바나나를 던져줄 기회가 없었지만 많은 장면을 보면서 뭐가 다르다는 기분이었다.

항루언에 들어가려면 유일한 통로인 천연동굴을 지나야 한다. 우리 나룻배는 베트남 여인이 노를 저었고 노 젓기에 단련이 된 듯 숙련된 솜씨로 나룻배를 몰았다. 다른 나룻배를 탄 관광객들 중에 한국인이 다수였던 것도 방송과 같았다. 항루언 안으로 들어오면 섬이 원형으로 물을 감싼 형태라 큰 소리를 내면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고 했다. 그래서 여행 가이드의 요청으로 주변의 관광객들과 같이 ‘야호’하고 크게 소리질렀던 것도 방송과 같았다. 내가 느꼈던 감정을 생각해보다가 다른 점을 기억해냈다. 그건 음악이었다. 우리 측 여행가이드는 천연동굴을 지나 나룻배가 항루언으로 들어설 때 음악을 틀었다.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도깨비’라는 드라마 시리즈의 주제 테마였다. 내가 ‘도깨비’의 팬이었고 그 노래를 좋아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내 감정은 훨훨 날아다녔다. 내가 한국을 떠나 베트남으로 왔지만 한국에 남아있던 내 일부분이 온전히 여기에서 같이 즐기는 듯한 기분이었다. 과거와 미래, 현재가 한데 뭉뚱그려져서 내가 베트남 여행을 기억할 때는 항루언으로 들어서던 그 순간의 감정을 오래 기억할 듯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룻배 중에서 음악을 들려준 가이드는 우리 가이드뿐이었다. 경치를 감상하는데 웬 노래인가 하고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나의 경우는 가이드의 배려가 내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준 셈이다.

우리는 같은 곳을 가더라도 한 가지 서비스를 더 받을 때 인상에 남는다. 나는 미용실에 잘 가지 않는 편인데 반나절을 다 머리에 투자하는 것도 부담이고 원치 않는 대화에 참여하는 것도 싫기 때문이다. 요즘은 한 미용실에 자주 가는데 거기 미용사 언니가 과묵하기도 하지만 긴 시간을 기다리면서 발 마사지를 받을 수 있게 기계를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손님을 생각하는 배려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글쓰기에서 독자를 위한 서비스는 어떤 것일까. 독서는 ‘나를 바꾼 한 권의 책’처럼 독자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고 다양한 지식과 생각을 경험하게 해준다. 거기에 더해 서비스라면 밀란 쿤데라의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존재의 부분을 찾아내려 하지 않는 소설은 부도덕한 소설이다’라는 말처럼 기존의 것을 깨부수는 냉철하고 ‘차가운 서비스’여야 하지 않을까. 내가 차가운 서비스라 명한 건 독자가 믿고 있던 걸 옳다고 지지해주지 않고 독자가 알고 있는 틀을 깨게 하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 작가인 올가 토카르추크는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카이로스는 기벽의 신, 즉 괴상함의 신이다. 여기서 ‘괴상함’이란 ‘중심적’ 관점을 과감히 포기하는 탈중심주의, 익숙한 사고방식이나 뻔한 행동 반경을 벗어나려는 경향, 고질적인 의식이나 사고방식, 안정적인 세계관에 부합하는 공동체적 관습으로부터의 탈피를 의미한다.’

현실에서는 따뜻한 서비스에 감동하고 글에서는 ‘순응적 태도와 위선에 대한 과감한 도전’을 보여주는 차가운 서비스에 감동하게 된다.

한 해가 저물어간다. 차가운 서비스에 전율하게 하는 문학작품을 찾아 깊은 시간을 가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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