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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121) 옛 추억을 회상하며
[자청비](121) 옛 추억을 회상하며
  • 이을순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11.1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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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을순 소설가
이을순 소설가
▲ 이을순 소설가 ⓒ뉴스라인제주

며칠 전 인터넷 기사 중에 유독 눈에 띄는 게 있었다. 가정집에서 버리려던 그림이 알고 보니 330억 원 명화라는 기사였다. 4년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 콩피에뉴시에 있는 90대 노파의 집 부엌에 걸려 있던 그림. 노파는 화로 위에 걸려 있어서 때가 많이 낀 이 그림을 버리려다가 ‘감정을 받아보라’는 권유를 듣고 전문가에 평가를 의뢰했다. 노파는 “그림이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성화인 줄로만 알고 부엌에 걸어뒀다는 것이다. 그림은 13세기 명화 ‘조롱당하는 그리스도’로,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치마부에(1940~1302)가 생전 완성한 작품 15점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그림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순간 예술가의 영혼이 깃든 위대한 작품이란 대체 무엇을 보고 평가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번쩍 스치면서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2004년에 서울 시립 미술관에서 색채의 마술사 ‘마르크 샤갈’의 작품전시를 관람한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그림에 조예가 깊어 서울까지 올라가며 그 전시를 관람한 것은 결코 아니다. 소설을 쓰려면 다양한 예술 작품을 보고 느끼고 그 뿌리가 하나의 종합예술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창작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가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붐비는 틈에서 그림의 문외한인 나는 전시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2층 전시관 벽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예술에 대한 사랑은 삶의 본질 그 자체이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림을 보는 안목은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 전율처럼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감동이 느껴졌다. 두 번째 전시관에는 ‘그 어떤 구속도 없이 새처럼 노래하리라.’라는 글도 있었다. 벽에 적혀 있는 글 그대로 자유로운 영혼을 상상하게 만드는 전시 공간이었다. 3층 벽면에는 ‘우리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은 바로 사랑의 빛깔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전시는 모두 제7부로 나눠 있었다. 제1부 ‘연인’에서는 하늘을 나는 정감 있는 연인들의 모습을, 제2부 ‘샤갈의 상상’에서는 초현실주의 풍의 작품들을, 제3부 ‘파리’에서는 샤갈이 제2의 고향마을이라 부르던 파리의 풍경을 담은 그림을, 제4부 ‘서커스’에서는 삶의 희로애락을 그려낸 서커스 풍경과 샤갈 예술의 걸작이라 일컫는 모스크바 유대인 극장 패널화를, 제5부 ‘성서 이야기’에서는 유대인으로서 구원의 희망을 담은 성서 주제 작품들을, 제6부 ‘호메루스의 오디세이’에서는 회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삽화를 다룬 뛰어난 작가의 재능을 담은 그림을, 제7부 ‘지중해의 세계’에서는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작가 말년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은 모스크바 트레티아코프 국립미술관 소장의 유대인 극장 연작 시리즈 작품이었다. 무용, 연극, 음악, 문학 등으로 구성된 패널화는 1920년에 모스크바에 있는 유대인 극장의 벽화로 제작되었으나 스탈린의 집권으로 강제 철거된 이후 40년 동안 창고에 묻혀 있다가 80년대 말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최초로 아시아에서 공개되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샤갈의 예술적, 철학적 영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불후의 명작이었다.

그의 작품들이 친근하게 와 닿는 주된 이유는 그가 유대인 사람이고 어린 시절의 힘든 삶을 그림 곳곳에다 그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고향에 대한 현실을 암울한 색상으로 울퉁불퉁하게 그려놓은 작품도 있었다. 또 그림에서 동물이 자주 나오는 것은 그가 어렸을 때 삼촌이 가축업을 해서 그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전시된 그림의 색상을 살펴보면, 노란색은 유대인 구원의 빛으로 상징되어 있고, 파란색은 유대인의 희망이고, 녹색은 유대인의 기쁨의 상징이고, 빨강은 사랑의 정열이다. 그리고 ‘굿모닝 파리’ 작품 속의 커다란 수탉은 바로 프랑스를 상징한다. ‘도시 위에서’ 작품은 그가 부인 벨라와 함께 하늘을 날고 있는 그림인데, 당시 가격이 우리 돈으로 110억 정도였고, ‘자화상’ 그림은 920불이라고 하였다.

그가 성서 작품을 그리게 된 동기는 1930년 유대인 학살의 참혹한 장면을 본 뒤부터 시작하게 된 것이란다. 인류와 평화와 사랑을 구원받고자 하는 마음을 작품으로나마 나타내고 싶었다고. 그는 주로 구약성서를 다루었는데 유독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에서 만은 신약성서를 다루고 있었다. 전시된 작품을 관람하면서 나는 샤갈도 그리스도처럼 구원받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했다. 전시 관람을 끝내고 깨달은 바가 컸다. 영원한 예술 작품에는 또 다른 창작의 세계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물론 그 시절엔 소설창작에 몹시 목말라 하고 있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때를 돌아보면 참으로 소중한 추억이 아닐 수 없다. 비록 예술의 깊은 맛을 제대로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한때 열정을 갖고 나만의 창작 세계를 꿈꾸어 봤다는 게 무엇보다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문득 어떤 글귀가 보름달처럼 두둥실 떠오른다.

인생은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픈 일이 있기 마련이다. 꼭대기에 올랐다고 너무 기뻐하거나 바닥에 내려왔다고 너무 슬퍼할 필요가 없는 게 우리의 삶이다. 끝까지 오르지 못했다고 안달하거나 끝까지 내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필요도 없다. 인생의 기복에 그저 의연할 따름이다.

도덕경(노자 원전 · 오강남 풀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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