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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청비](120) 어머니의 접짝뼈 국
[저청비](120) 어머니의 접짝뼈 국
  • 김순신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11.0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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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수필가
김순신 수필가
▲ 김순신 수필가 ⓒ뉴스라인제주

어머니의 손맛에 길들여진 입맛은 세월과 함께 변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잊지 못하는 맛이 누구에게나 있다. 필자는 농촌에서 나고 자랐기에 어머니께서는 해산물 요리보다 돼지고기 요리를 많이 하셨다. 통시에서 돼지를 키우다 때가 되면 돗추렴을 했다. 돼지고기를 수육으로 삶기도 하고 찜을 하기도 했지만, 접짝뼈 국은 나의 어머니 표 음식 중 하나다. 접짝뼈국을 검색하면 접짝뼈는 돼지머리와 갈비뼈 사이의 뼈를 의미한다. 접짝뼈라는 말은 표준어가 아니라 제주어이기 때문에 표기도 접착뼈, 접작뼈, 적짝뼈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된다고 한다. (나무위키 참조)

한때 마음이 휘청거릴 때가 있었다. 대한 진학에 관한 결정도 못 하고 가슴에 잔뜩 쌓인 것들을 꾹꾹 누르며 흐르는 시간 위에서 초조해할 때였다. 대학을 서울로 가고 싶은데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으셨고, 어머니는 농사일에 빠져 딸의 마음을 살필 겨를도 없을 때다. 막연하게 서러워지고 외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먹는 즐거움도 사라지고 그저 그렇게 겨울밤처럼 시리게 시리게 지내던 때가 있었다. 이래저래 마음을 곧추세우려 겉으로는 태연한 척 며칠을 지새웠다.

그날 저녁도 어머니는 밭일하고 오셔서 바삐 솥뚜껑을 여닫는다. 솥에서 뭔가를 끓이는 것 같아서 몸국인가 했다. 그날 저녁 밥상 위에는 몸국도 된장국도 아닌 정말 맛있는 국이 나왔다. 별표가 다섯 개라 할 수 있는 국이었다. 국물은 걸쭉하니 묽은 수프 같았지만 개운하고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느낌이었다. 국물에 고기를 품은 뼈도 있었다. 얼마나 푹 고았는지 젓가락으로 헤집으면 살코기와 뼈가 깨끗이 분리되었다. 속을 달래주는 담백 시원한 국물에 돼지고기까지 있으니 최고의 국이었다. 그날 국을 두 그릇이나 비우고 나니 세상이 조금 달리 보였다. 어머니가 나에게 관심도 없는 줄 알았는데, 어머니는 딸의 마음 상태를 눈치채셨던 것 같다. 입맛 없는 딸을 위해 며칠 전에 돗추렴을 한 집에서 접짝뼈를 구해다 놓았다가 피를 빼고 푹 고았다. 무쇠솥에서 뼈와 고기가 익어가면서 어머니의 사랑만큼이나 국물맛은 더 깊어졌으리라. 그 후부터는 마음 한구석이 서늘하거나 텅 빈듯할 때면 접짝뼈 국의 먹고 싶어졌다.

결혼한 후에 어머니께

“ 어머니, 접짝뼈 국 맛있게 끓이는 비법 고라줍서” 했더니

“ 비법은 무슨 비법, 뼈 하영 놩 푹 끓이면 되주.” 하셨다.

재료를 아끼지 말고 시간을 들여야 깊은 맛이 난다는 뜻이다. 접짝뼈국 실습에 들어갔다. 접짝뼈를 사다가 물에 담가서 핏물을 뺏다. 접작뼈를 넣고 한소끔 끓으면 그 물을 버리고 다시 새 물을 받아 고기의 잡내를 없애기 위해 생강, 소주, 마늘 등을 넣은 다음 두어 시간 푹 끓인다. 무를 얇게 썰어 넣고 간을 한다. 맨 나중에 메밀가루 반죽을 묽게 하여 풀어놓고 한번 부르륵 끓으면 불을 끈다. 옛날의 어머니 맛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옛 추억을 소환하며 먹으니 속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접짝뼈국은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다. 한 번은 집과 비교적 가까운 외도동 식당을 찾았는데, 하필 쉬는 날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수 친구와 함께 삼양동에 접짝뼈국 잘한다는 식당을 찾았다. 뽀얗고 적당히 걸쭉한 국물맛이 깔끔하면서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고기는 잘게 토막 내서 한입에 먹기 좋을 크기였다. 국물에 풀어 넣은 재료를 주인장께 여쭈었더니 찹쌀가루와 플러스알파라고 하셨다. 구체적 재료는 영업비밀이란다. 또 하나 그 집의 영업방침이 맘에 들었다. 1인 한 그릇씩 내어온 다음에 서비스로 큰 대접에 다시 한 그릇을 더 내어 왔다. 더 먹으라는 것이다. 맛있어서 그것까지 다 먹고 왔다. 다시 가고 싶은 이유는 맛도 좋았지만, 주인의 그 넉넉한 인정이 마음을 끌었다.

요즘은 접짝뼈 국도 점점 다양하게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메밀가루 대신 찹쌀가루를 쓰기도 하고 찹쌀가루 외에 다른 재료를 넣어 식당마다 조금씩 차별화를 하고 있다. 국물맛의 차별화뿐만 아니라 뼈의 크기도 식당마다 조금씩 다르다. 어떤 곳은 뼈를 큼직하게 통째로 그릇에 내기도 하고, 어떤 곳은 뼈를 토막으로 잘라서 내어놓는 식당도 있다.

음식에 맛과 영양은 기본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성이다. 음식을 만들 때 화를 내면서 만들면 음식에 화가 스며들어 독이 되고, 대신 즐거운 마음으로 정성 들여 만들면 약이 된다고 하는 말이 있다. 정성으로 만든 음식이 곧 보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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