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5-06 10:56 (월)
[양순진의 시의 정원](10) 봄바다
[양순진의 시의 정원](10) 봄바다
  • 양순진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20.04.29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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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철수 시인
동심철수 시인
▲ 동심철수 시인 @뉴스라인제주

봄바다

동심철수

겨우내 작은 밧줄에 묶여있던 소망이
따뜻한 햇살과 함께 바다로 달리고 있다.

기다림을 재촉하는 동백꽃 빨간 꽃잎
봄날의 설렘 속에 바다로 달리고 있다.

하이얀 물보라로 별빛 달빛 부르는
벚나무 하얀 꽃비 마중하는 봄 바다

 

양순진 시인
▲ 양순진 시인 @뉴스라인제주

이 동시를 읽자마자 가슴이 뛴다. 먼 바다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나를 부르는 것 같고 그 봄바다를 향해 뛰어가는 동심의 아이들이 눈에 환하게 비친다. 눈부신 햇살, 빨간 꽃, 별빛, 달빛, 벚꽃비 마중하는 봄바다는 푸르고 활기차고 희망차다.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는 건 이 동시를 쓰신 시인 동심철수님의 본명이 김철수다. 옛 교과서에 나왔던 '영희야, 철수야!' 수없이 부르던 친근한 이름. 얼마나 '동심'이라는 언어가 좋았으면 시호도 '동심'이며 또 얼마나 문학을 사랑했으면 '동심문학'이라는 문학지를 만들었을까. 묻지 않아도 훤히 보인다. 아동문학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리고 이 동시를 읽다보니 최남선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떠오른다. 총 7연 42행의 이 시는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자 함이었고 바이런의 '대양'이라는 시의 영향이 컸다.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아.
따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을 아나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무너 바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르, 콱.

-'해에게서 소년에게' 1연

언제나
평온할 때나 격동할 때나
미풍 속에서나 강풍 속에서나
또는 폭풍 속에서나 극지방을 얼음으로 둘러쌀 때나
또는 폭염의 기후에서 검게 물기둥을 일으킬 때나
끝없이 끝없이, 그리고 숭고하게
그대는 영원의 이미지
보이지 않는 것의 제왕

- 바이런의 '대양' 中

학창시절 그토록 질리게 외우던 장시가 이 순간 왜 이렇게 가슴에 와 차오르는지 모르겠다. 아동, 소년, 봄, 바다, 파도를 아우르는 동심철수 시인님의 동시 '봄바다'의 영향일 듯싶다.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최고의 시간!
'해에게서 소년에게'는 우리나라 최초의 잡지 '소년(少年)' 창간호에 발표된 작품이며 현대시의 효시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최남선이 '소년'이란 잡지를 창간했듯이 동심철수 시인님도 '동심문학'이라는 아동문학 잡지를 창간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한 것이 신기하다. 동심문학을 향한 열정이 뜨겁다.
그리고 얼마전에 죽은 신해철이 속해 있던 그룹 넥스트의 노래 중에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있었다.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애잔하다.

눈을 감으면 태양의 저편에서
들려오는 멜로디
내게 속삭였지
이제 그만 일어나
어른이 될 시간이야
너 자신을 시험해 봐
길을 떠나야 해
.
.
.
너의 날개는 펴질꺼야
더 높이 더 멀리
너의 별을 찾아 날아라
소년아 저 모든
별들은 너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이 흘린
눈물이란다

-넥스트 노래 '해에게서 소년에게' 中

이 노래 가사는 바다 대신 태양에 대한 내용이지만 다른 노래 '민물장어의 꿈'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깊은 희망의 메시지가 담겨있다.
바다, 태양, 하늘, 별, 달, 파도, 꽃 등은 시를 쓸 때 비유하기 좋은 대표적 대상물이다. 꿈과 희망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어서 언제 사용해도 질리지 않고 어떤 부분에 인용해도 걸맞는 최상의 언어다.
이제 곧 오월이 오고, 어린이날이 있다. 이 나라 어린이들이 늘 봄바다처럼 꿈과 희망이 넘쳐났으면 한다. 월리엄 워즈워드는 '무지개'라는 시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했다. 그리고 중국 속담에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 했고, 우리 생활 속에 '어린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도 녹아 있다. 나도 동감한다. 어린이는 이 지상의 꽃이며 무지개며 보배다. 이 소중한 보석을 닦는 건 어른의 몫이다.
섬에 사는 나는 어릴 때부터 외롭고 슬플 때 바다로 달려갔었다. 바다는 항상 무언의 물보라로 나를 깨우쳐 주었다. 마음에 씨앗을 키워라, 마음에 넓은 바다를 품어라.
어른이 된 지금도 쓸쓸하거나 길을 잃을 때 바다로 간다. 어른이 된 내 안에 아직도 동심이 파도처럼 넘실댄다. 바다가 곁에 있어도 늘 바다가 그립다. 존 메이스 필드의 '그리운 바다'처럼.

나 다시 바다로 가리
쓸쓸한 바다와 하늘을 찾아
큼직한 배 한 척과
지향할 별 한 떨기있으면 그뿐
박차고 가는 바퀴, 바람의 노래,
흔들리는 흰 돛대와 물에 어린 회색 안개
동 트는 새벽이면 그뿐이니
[글 양순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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