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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롬이야기](8) 성불천 흐르는 불교성지 성불오롬
[오롬이야기](8) 성불천 흐르는 불교성지 성불오롬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20.04.19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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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주 오롬연구가. JDC오름메니저
새롭게 밝히는 제주오롬이야기
북동쪽 번영로에서 본 성불오롬
▲ 북동쪽 번영로에서 본 성불오롬 @뉴스라인제주

고구려는 372년(소수림왕2년) 전진前秦왕 부견符堅이 순도順道에게 불상, 불경을 보내자 맞이하여 왕자를 가르치게 하였다. 2년 뒤 374년 진나라 승려 아도阿道가 고구려로 오자 소수림왕은 다음 해 봄 성문사와 이불란사를 세웠다 전한다.

백제는 고구려보다 12년 뒤 384(침류왕 1년) 인도의 고승 마라난타摩羅難陀가 동진으로부터 광주廣州 남한산으로 들어오자 왕은 궁내에 머물게 하고 그 이듬해 10명의 백제인을 출가시켜 승려가 되게 하였다고 전한다.

신라는 눌지마립간 때 고구려 묵호자墨胡子가 선산善山 모례毛禮의 집에 기숙하며 불법佛法을 전하자 최초의 신도가 되나 인정을 못 받다가 법흥왕 527년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로 배불파排佛派를 제압하고 공인받게 된다.(인터넷 다움사전)

탐라불교의 역사는 아주 오래다. ‘탐모라주 존자도량조'에 고구려보다 앞서 인도아유타국 허황후가 전한 가락국 보다 500년 전에 전파되었다(동국여지승람. 제주풍토기. 탐라지). 고구려보다 무려 900년 앞서 석가의 16제자 중 6번째 발타리 존자가 불교를 전하며 머물렀다 한다.

제주불교와 성불암 역사: 영실 불래오롬 존자암, 삼양 원당오롬 불탑사, 송당 성불오롬 성불암이 그것이다. 18세기 승유억불정책 강화 시 제주목사 이형상은 절 500, 당 500을 폐쇄 하였다한다. 이 때 제주시 삼양동 불탑사 5층석탑(보물1187)와 서귀포 영실 불래오롬 존자암 사리탑(유형문화제17호)만이 지금도 유적으로 남아 있다.

탐라불교는 삼국과 달리 남방불교에서 전래 되였다. ‘탐라耽羅’, ‘한라漢拏’도 불교의 나한羅漢들 이름에서 전래 한 것이다. 제주시 아라동我羅洞, 오라동吾羅洞, 사라봉沙羅峯,紗羅峯도 그렇다. 발타리는 송당리 성불오롬으로 와서 ‘성불암’을 창건하였다고 전하지만 연대적으로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성불암은 고려 때(12세기) 창건되어 1702년(18세기)경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성불오롬은 성불암이 있다하여 다른 말로는 ‘성보람’이라고도 한다. 성불오롬 남동쪽에는 자연석 바위가 있는데 불상과 같아서 절을 세웠다는데 이형상목사 때 폐쇄하며 불상도 사라졌다고 한다.

성불오름의 철쭉꽃
▲ 성불오름의 철쭉꽃 @뉴스라인제주

성불오롬의 위치: 성불오롬은 송당리 산226(제주시산림조합은 266)번지에 소재한다. 오롬의 모양은 보는 위치에 따라 다양하다. 서쪽에서 보면 끝이 뭉툭한 피라미드 형이나 남쪽에서 보면 오렌지를 길게 잘라놓은 모양이다. 동쪽으로는 열린 말굽형으로 동남쪽은 조금 높고 북쪽으로는 조금 긴 이등변 삼각형이다.

멀리 동쪽의 오름들에서 보면 열린 말굽형 굼부리 끝이 마치 여성의 옥문형체로 보인다. 그 위에 철쭉꽃이 피어서 더욱 신기하다. 도를 닦아야할 성聖스운 암자에 성性스런 모습이라니, 그래서일까? 북쪽에서 오롬을 보라! 날개를 펼친 새의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성불암 스님은 새처럼 날아가 버렸을까?

오름 입구에서 오른쪽 탐방로를 따라 북쪽 등성이를 오르면 편백나무, 삼나무들이 울창한데 낙엽수는 거의 없다. 정상에 올라서 남서쪽으로 보면 표선면 가시리의 대록산, 소록산, 영주산과 성산읍 모구리오름이 보인다. 남동쪽으로 나가면 사스레피 나무들이 줄지어 있고 조금 더 동쪽으로 나가면 붉은 철쭉꽃이 한창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철쭉을 보고 진달래라고 말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지난겨울 오름에 올랐을 때 진달래꽃인가 싶었는데 확인하기 위하여 꽃 피는 4월에 다시 오롬을 올라 보았다. 푸른 잎이 피면서 핑크 빛나는 철쭉꽃이 찬란하다.

철쭉꽃 너머로는 표선면의 개오롬, 좌보미, 백약이오롬과 구좌읍 비치미오롬과 동거문이오롬의 깔대기 같은 모습도 보인다. 여기서 경사진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면 좌측으로 이어진 탐방로가 보인다. 성불샘으로 나가는 길이다.

샘솟아 흐르는 성불천: 20~30미터쯤 길 따라 나가면 우측에 작은 나무다리가 보이고 왼쪽으로 졸졸 흐르는 샘이 보인다. 전설에는 “이 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물을 떠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이 물은 음용수로 적합하지 않다“는 푯말을 세운 것 같다.

성불샘 좌우로는 키 큰 고목들이 짧은 계곡을 마주하여 서있다. 구좌읍에는 없는 것으로 알았던 때죽나무鐘木 몇 그루를 찾았다. 계곡의 나무 위로는 으름넝쿨, 다래넝쿨들이 엉켜졌다. 탐방로 좌우에는 때를 맞추어 산딸기 꽃들이 피어 하얗다.

성불오롬에 솟는 성불샘
▲ 성불오롬에 솟는 성불샘 @뉴스라인제주

조금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직경 5cm나 됨직한 굵은 호수가 꽂혀 있다. 비온 뒤 풀쩍거리는 길을 따라왔는데도 성불천은 졸졸 거리다 땅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계곡 위 언덕에는 편백나무와 삼나무들이 울창한데 쓰러진 큰 나무들이 으슥함을 더하게 한다.

조선조 때만 해도 정의군 성읍리에서 식수로 마셨다는데. 4.3사건 때에는 무장대들이 이 물을 식수로 사용하려고 나타날 때 순경들과 총격전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수량이 보잘 것 없다. 성불오롬은 이 모든 역사를 보며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잊어버린 역사처럼.

성보람 곁 감은이: 성불오롬은 스님이 염불하는 모습과 같다하여서 ‘성보람’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성불암이 세워진 이후에 불려졌을 듯하다. 그러나 감은이오름은 절의 소유도, 정부의 소유도 아니라서 진입이 불가하다.

성불오롬은 구좌읍 송당리에 소재하나 세화리 소유이다. ‘세화리지’에 의하면 1961년 10월 1일, 법률 707호에 의해 북제주군에 예속되었다가 세화리에서 소유권을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말목장은 세화리에서 임대하여 사용 중이라고 한다. 오롬 남쪽에는 외국인들이 공연하는 워터쇼 공연장이 있고 주위에는 고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와 분재 전시장도 있다.

성불오롬에서 남서쪽으로 내려다보면 눈앞에 나지막한 오름이 있다. 해발317.2m, 표고37m 의 원형 분화구를 가진 언덕 닮은 작은 오름이다. 그러나 이름은 여러 가지다. 오름을 오르려고 빙빙 돌아봐도 철조망이 사방으로 가로막았다. 철조망을 넘어서 오롬으로 나가려니 사람 키보다 더 큰 억새가 빡빡하여 좀처럼 앞으로 나가기가 어렵다.

성불암 향하여 경을 읊는가 가문악加文岳이여"
아름다운 성불암 문 들어가려는가 가문악佳門岳이여
솜사탕 같은 꽃구름이 산 위에 피었구나 감은봉甘雲峰이여!

성불암은 닫힌 지 이미 오래고 스님들은 새처럼 날아가 버렸고 샘물은 말라 마실자 없는데 감은이오롬인들 고요히 누워 버틸 수 있을까? 내 작은 누이 같이 서글픈 오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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