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멍광 ᄄᆞᆯ
양전형
허운데기도 ᄆᆞᆫ직곡
양지에 분도 치닥치닥 문대기지 말앙
마직이 ᄇᆞᆯ랑 뎅기라
저 가달 내 논 뽄 보라
ᄒᆞᆷ치 ᄆᆞᆫ 벗엉 뎅기주기
주랑주랑 ᄑᆞᆯ에 찬 것덜광
그 홀모개긴 못ᄌᆞᆫ디지 안ᄒᆞ염신가원
내붑서게 어머니
ᄆᆞᆫ 나가 알앙ᄒᆞ는 나 몸 아니우꽈
무사 어멍 꺼우꽈
아고게, 무사 아니라게 기주기
공추세가 아니여, 나가 ᄆᆞᆫ딱
ᄆᆞᆫ들락기 내여 논 것덜 아니가
(어머니와 딸)
머리도 만지고/너무 진한 화장 하지 말고/적당히 하고 다녀라/저 허벅지 내 논 꼴 봐라/아예 싹 벗고 다니지/치렁치렁 팔에 찬 것들하고는/그 손목은 못 견디지 않는가
놔두세요 어머니/내가 다 알아서 하는 내 몸이잖아요/어머니 꺼 아니잖아요
아니 이런, 왜 아니야 맞지/공치사가 아니다. 내가 모두/홀라당 내 놓은 것들이잖아
‘身體髮膚(신체발부) 受之父母(수지부모) 不敢毁傷(불감훼상) 孝之始也(효지시야)’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효경(孝經)’에 실린 공자의 가르침으로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므로, 이것을 손상시키지 않은 것이 효의 시작이다.’라는 뜻이다. 즉, 부모님께서 주신 몸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어멍광 ᄄᆞᆯ’은 같은 여자이면서도, 같은 운명이면서도, 서로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갓 사춘기 티를 벗어나 대학생이 되거나 사회인이 되면 여자는 한껏 멋에 취한다. 뽀글뽀글 파마도 해보고, 짙은 화장도 해보고, 귀걸이에 팔찌도 치렁치렁 장식해본다. 미니스커트에 얇은 블라우스 입고 나비처럼 팔랑팔랑 날아보고 싶어 한다. 어멍은 자신의 옛날을 잊기나 한 듯 ᄄᆞᆯ의 모습이 영 마땅치 않다.
어멍은 검은 해녀복 입고 바다 속을 누비던 해녀였거나, 갈중이 입고 하루 종일 밭에서 검질 매던 제주 여자였을 것이다. 그러니 21세기의 ᄄᆞᆯ 모습이 외계인쯤으로 보였으리라.
하지만 어멍의 마음을 ᄄᆞᆯ이 모르진 않는다. 나문희가 나오는 뮤지컬 ‘친정엄마’나 , 김해숙이 나오는 영화 ‘친정엄마’에서 보면 눈물 없이는 보지 못하는 모정을 볼 수 있다. 나 또한 자식을 낳고나서야, 엄마의 나이가 되고 나서야, 친정엄마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듯이 이 세상에서 가장 끈끈한 것이 ‘어멍광 ᄄᆞᆯ’ 사이인 것 같다.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어를 사용하며 지금껏 살아왔는데, 뒤늦게 제주어의 소중함을 깨닫고 과감히 제주어강사가 되었다. 그리고 전 세계에 전파하려는 마음으로 매일 어멍의 언어인 제주어를 내 안의 우물에서 끌어내고 있다. 제주어는 제주의 살아 숨 쉬는 보물이기에. 그리고 ‘제주어’가 없으면 제주의 정신을 잃는 것이므로.
‘하르방 일룬 땅/ 아방 단도리ᄒᆞ고 지킨 땅/나가 지켜가멍/제주에 살 거라마씀.//할망 손 탄 트멍트멍/어멍 꼿 심은 곱닥ᄒᆞᆫ 울 안/유루제 낙원 뒈 듯/ 난 양, 펭승 제주에 살 거라마씀.//’(양순진 제주어동시 ‘난 제주에 살아마씀’ 中)
예전에 어머님 말씀이 눈물겨운 감동으로 가슴 파고 들겠지요
그래서 합리론도 좋지만 경험철학도 있는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