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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칼럼](24)무허가 집을 팔고
[현태식 칼럼](24)무허가 집을 팔고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05.2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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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가을이 지나 겨울에 접어 들어 날씨가 차갑고 아침에는 물이 얼기 시작한다. 먹을 것도 떨어지고 입성도 허름하니 추위도 견디기 어려웠다. 내년 봄에 서울대에 시험을 쳐야 하는데 어떻게 해서든 공부를 해야 한다. 전기도 없어 등잔불에 공부하려니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요나 이불도 시원치 않아 밤을 새기가 힘들었다. 설상가상 겨울에 일거리가 없어 돈벌이도 못하니 야단이 난 것이었다. 집을 팔고 시내로 나가서 입시 때까지 하숙하고 학원에 다니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무허가 집을 10만환 가깝게 받고 팔았다. 전에 날 찾아와 국수 잘못 끓였다고 논두렁에 부어 버리고 간 친구가 하숙하고 있는 하왕십리의 같은 하숙집에서 따로 방을 빌었다. 그 친구는 고향 친구와 둘이 한 방을 사용하고 나는 혼자였다.

학원에 가서 강사의 설명을 들을 때는 머리 속에 꼬박꼬박 들어오는 것 같은데 집에 돌아와 보면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것이었다. 강의도 처음 몇 십분은 듣다가 시간이 지나면 졸음이 쏟아져 도저히 졸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젠 내가 정상이 아님을 자각할 수 있었다. 하숙집에서 편히 지내는데도 몸이 붓는 것이다. 기억력이 감퇴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진척이 없었다. 정말 분통이 터졌다. 나는 이렇게 파멸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엄습하여 전율을 느끼게 했다.

하루는 친구가 돈을 꾸어달라고 해서 꾸어줬다. 며칠이 지나 그 친구 집에서 돈을 송금해 온 것 같은데 갚지를 안하기에 달라고 했더니 엉뚱하게도 돈을 갚았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돈이 생명처럼 귀하고 내년 봄까지 견디려고 절약하고 몇 번씩 계산하여 꿰어 맞춘 것이어서 착오가 나면 안 되는 돈이었다. 나는 받은 적이 없었다. 그 돈이 없으면 내년 봄까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절체절명의 재산이었다. 왜 돈을 받고도 안 받았다고 하겠느냐고 말해봤지만 막무가내였다. 앞이 캄캄했다.

공부는 잘 안되고 정신적 혼란으로 집중이 안된다. 그 친구는 날 보고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하였다. 돈 잃고 사람 병신된 것을 생각하니 불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얼마 안 있어 그 친구는 관훈동으로 방을 정해서 떠나버렸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정말로 친하여 교내에서 소문이 날 정도였는데, 환경과 처지가 너무 차이가 나고 보니 친한 친구도 자연히 멀어져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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