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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칼럼](19)논두렁에 버린 국수
[현태식 칼럼](19)논두렁에 버린 국수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05.1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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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 고교 재학 시절 배곯을 때 밥을 주었던 동창 한국보육원 표춘준 군. 1963년 겨울 필자가 군 복무중 군산 옥구 미군부대에 근무하는 친구를 찾아가 찍었던 사진.
고등학교 친구 중에 3총사라고 별명이 붙은 소문난 친구가 있었다. 한국보육원 출신 표춘준과 나 그리고 K성을 가진 친구다.

친구 K는 집안이 좋았다. 부모님이 경북 영덕까지 진출해서 돈을 벌고, 어머니에겐 외아들이지만 유복하고 공부도 매우 잘 했다.

표군은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점심을 못먹는 줄 알고 고아원에 데리고 가서 그들이 먹어야 할 밥으로 여러 번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다. 고아원에 들어가면 숙식도 해결되고 공부도 시켜주고 참 좋을 것 같았다. 옷도 나보다 훨씬 잘 입고 해서 나도 고아원 가려고 노력했으나 나에게는 부모님이 살아계시고 재산도 있고 농사짓는 밭도 여러 필이 있어서 조건이 전혀 맞지 않아 갈 수가 없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고아원 아이들의 밥을 축낸 것이 부끄럽고 죄책감마저 든다. 얼마 후 춘준이는 자기 힘으로 살아야 한다면서 군산 옥구에 있는 미군부대보이(boy)로 들어갔는데, 내가 군대가서 휴가 올 때 찾아가 하룻밤 자면서 옛날을 회상하며 회포를 풀고 헤어진 후 소식이 두절되어 찾아보았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K라는 친구는 내가 정릉 골짜기에서 친구가 세든 방에 끼어 공부하고 있을 때 찾아왔다. 나의 몰골을 보니 가련해보였던 모양이다. 밖으로 나가더니 국수를 한타래 사들고 들어와서 끓여 먹자는 것이었다. 친구 만나서 기쁜데 이런 대접을 받게 되니 정말 기뻤다.

그러나 이 즐거움도 잠깐 뿐, 국수를 삶는 일이 서툴어서 물을 적게 넣어 끓여서 제대로 국수가 삶아지지 않았다. 거기에 또 찬 물을 더 부어 끓였더니, 이번에는 국수가 불어 전혀 맛이 나지 않았다.

친구는 화를 버럭 내면서 국수를 논두렁에 팽개치고 언짢은 얼굴을 하며 가버렸다. 나는 가버린 친구가 섭섭한게 아니였다. 그 버려진 국수가 아까웠다. 그 무렵에 나는 보리밥에 간장이나 소금으로 끼니를 때울 때였다. 아무리 욕을 하거나 분풀이를 했어도 가만히 듣기만 했을 것이다. 그 국수만 쏟아버리지 않았다면 나는 충분히 두 끼나 세 끼니는 때울 수 있었으리라. 음식을 잘 못했다고 버리다니 아무거나 배만 채우면 되는 나에게는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배고픔이 얼마나 심한 형벌인지 모르고, 그런 형벌을 받는 사람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다는 사실을 가진 자들은 모르는 것 같았다. 그 친구는 자기네 집이 잘 살고, 자신이 공부도 잘 하니 자기 기분 다 내어도 괜찮은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무의식 중에 했을지도 모른다. 있는 자와 없는 자와의 갈등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됨을 알게 된다.

이제 칠십이 넘은 나이에도 그 국수가 선명하게 떠오르고 그 때의 배고픔이 오십년이 가깝게 지난 일이건만 지금도 그 논두렁의 국수는 내 주린 배를 채워줄 수 있었을 터인데 그 국수만 생각하면 배고픔이 솟아난다.

루핑(Roofing : 섬유물에 아스팔트를 칠하여 흔히 지붕을 덮는 깔개)으로 덮은 무허가집 앞에는 논밭두렁이 전개되고 그 건너 개울과 소나무 숲이 있고, 깊은 오솔길, 비만 오면 반죽이 된 황토가 달라붙어 휘청거렸던 비탈길, 그 가난했던 산자락 스잔한 겨울 풍경이 이제도 눈 앞에 삼삼하다. 엎어진 국수에 나뒹구는 냄비, 토라진 친구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던 모습-지금도 그 국수만 생각하면 말할 수 없이 가슴이 쓰리고 피가 거꾸로 흐르는 느낌이다.

‘내 목숨은 그렇게 구차하리만치 고생을 하면서 연명할 만큼 가치가 있을까? 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종종 자문해 보지만 시원스런 해답을 못 찾는다.

내가 해보지 않은 것은 깡통 들고 거렁뱅이 노릇 안한 것, 고관이 되어 거드름 피우며 남 못살게 하고 억압적으로 공짜 챙기지 않은 것일게다. 똥구루마(달구지) 끌고 예사로 도심을 지나고, 밭 갈고, 김매고, 땔감하러 산에 오르고, 밤이나 비오는 날에 새끼꼬는 것, 힘들다는 상일이란 일들은 모두 해봤다. 중학교 때는 돈을 번답시고 4·3사건 전에 살았던 4㎞ 떨어진 옛 집터에서 울타리 돌을 실어다 닭집을 손수 짓고 닭을 쳤다. 고양이, 족제비가 키우던 닭을 잡아 먹어버리고 심지어 쥐까지도 병아리 다리를 갉아먹어버려서 이익은커녕 곡식만 축내었다고 어머님께 실컷 꾸지람만 듣고, 결국 시장 바닥에 닭을 내다 파는 닭장사도 해보고 오일장 장돌뱅이질도 해보았다.

수도가 없을 때라 가물면 산짓물이나 선반물, 한드기, 용숫물을 길러 다녔다. 마차에 드럼통을 싣고 가서 양동이로 물을 퍼 가득 채우고, 그 가파른 동산을 오르내리며 식수를 대었다. 때로는 물지게를 지고 용숫물을 지어나르는데 고갯길이 얼마나 가파른지 중학생으로서는 힘이 부쳤으나 이것도 훈련된 후에는 거뜬히 해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나처럼 일하는 친구는 구경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밤에는 공부를 했다. 초등학교 때는 일학년 마치고 한 학년 건너 뛰었어도 그 해만 우등상을 놓쳤지 매 학년말에 우등상을 놓친 적이 없다. 중학교 졸업때에는 가장 우수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오다 보니 몸 전체가 망가져 재생불능이 되다시피 되었으나 이런 혹독한 단련이 있었기에 정릉 산속에서의 막노동 생활에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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