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 기억의 공간 (구승회 지음·북하우스 펴냄)
공간은 삶의 모습을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그건 불편함이 된다. 손때가 잘 묻을 수 있는 공간이 좋은 공간이라고 믿는다. 시간이 쌓이고 살림들이 자리잡고 그래도 어색하지 않고 그것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공간, 어지르고 채워지고 또 비워지며 제 할 일을 하는 공간이 우리에게 필요한 공간이다.
좋은 도시와 거리의 조건에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다양한 속도가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의 여건이다. 걷는 사람과 앉아 머물러 있는 사람, 상점 앞을 지나가는 느린 자전거와 물건을 나르는 큰 트럭, 이런 다양한 속도의 흐름이 적절하게 어우러질 수 있는 곳이 좋은 거리의 공간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건축의 의미를 짚어보고 집을 짓는 과정을 다뤄 주목받았다. 주인공 ‘승민’과 ‘서연’이 함께 집을 지어가면서 과거 그들이 함께한 기억의 조각을 맞춰간다. 옛 기억의 아스라함과 현재의 격정을 집짓기와 접목한 것이다.
또 영화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해온 공간을 재발견하게 한다. 정릉과 창신동 골목길, 누하동 한옥, 수유동의 시장 골목, 아파트 옥상 위의 하늘, 제주도 앞바다 서연의 집 등 영화만큼이나 영화 속 공간은 아름다운 기억과 아련한 감성을 불러일으켰다.
‘건축학개론 기억의 공간’은 영화 속 ‘서연의 집’을 직접 건축하며 공간에 담긴 이야기의 힘을 경험한 ‘건축학개론’의 공간 디렉터 구승회 소장의 에세이다. 계단이 왜 위로의 공간이 되는지, 대문 밖 펼쳐지는 또 다른 세계에 어떻게 발 디딜 것인지, 지루하고 강요된 공간에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나타낼 방법 등을 들려준다.
기억 속에 남은 병산 서원, 용산 가족 공원, 놀이동산, 광화문 광장 등 몇몇 장소들에 대한 회상을 통해 자신의 공간을 꿈꾼다는 것의 의미와 우리가 공간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방법을 말한다. 서연의 집 설계 과정의 뒷이야기도 담았다. ‘건축학개론’의 이용주 감독이 영화에 넣으려 한 건축과 공간 이야기도 들어있다.【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