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5-03 23:46 (금)
[연륙교](1) 상예빵
[연륙교](1) 상예빵
  • 왕준자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4.01.03 00:05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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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준자 시인

제주의 중심 인터넷신문 뉴스라인제주가 《연륙교》코너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예리하고 독창적인 작가들의 오감을 통해서 비추어지는 세상의 모습. 제주의 모습은 어떠한지, 일상의 삶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작가들이 생각하는 바가 어떻게 옭아내어지고 있는지를 음미하며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고자 합니다. 촉촉한 단비가 되길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비가 내리는 제주는 더욱 까맸다.
한 입 베어 문 상예빵이 넘어가지 않는 목 메이는 섬
왈칵 서러운 빵,

황톳물 누렇게 베인 비닐 봉지 하나 문 고리에 걸려있다.
막걸리 들이부어 부풀어 오른 밀 반죽이 앙꼬도 없이 하얗게 웃고 있었다.
누가 두고 갔는지 나는 확실히 아네.

섬의 강렬한 볕이 바다에 닿아 부시어 눈을 데었는가,
시야가 좁혀지고 그림자 어른 대는 기척으로 알아 차리는 눈을 가진 고씨 언니는,
그 새벽 길, 십 리도 넘는 길을 걸어 녹말가루 공장을 십 년 다녔다 했다.
밭 일 틈틈이 깊은 물 속 들어가 나올 때, 한 숨이듯 뱉어낸 숨비 소리로 기막힌 젊음을 살았을 거다.
누구의 인생이라서 편하기만 했겠냐만,
제주엔 충분히 사랑 하고도 남을 사람들이 살고 있던 것을,
육지에서 온 사람에게 상예빵 건네주려 눈 먼 몸짓으로 다녀 간 것이다

들꽃 낭자 하게 피어난 곳에 바람이 지나는 것을 말하듯 이파리 흔들린다.
바다를 온 몸으로 막고 있는 섬은 아름답구나.
천천히 고씨 언니와 함께 다가오는 제주는 서럽구나.
오랫동안 곪았던 아릿한 것을 저 쪽에 두었구나.

고씨 언니는
이젠 살 만해 고생 끝이려니 하건만,
연신 밭에 때를 맞추는 어눌한 걸음으로,
덜 자란 양배추랑 이삭 주운 양파, 내다 팔지 못 하는 웃자란 브로콜리들을
내 집 귀퉁이에 육지 사람 몫이라고 놓고 간다.
마트에 가면 좋은 것 간단히 살 수 있는 걸 왜 모르겠는가,
그 것들은 내 가슴에 들어와 두고두고 흔들 것이다.
"여그에선 이십마넌 이믄 헌 달 산다. 들판에 널린 것 주워 먹고 돈 쓰지 마라"

엄마가 생각났다.
돈 한 푼 쓰지 못하고 돌아가신 엄마가,
 

왕준자 시인
▲ 왕준자 시인 ⓒ뉴스라인제주

[작가소개] 왕준자 시인

1959년생
1978년 인천 박문여자고등학교 졸업
020년 3월 제주 전입
2020년 10월 부터 2021년 12월까지 한라산문학동인 활동
2021년 한라산문학동인지 (터널, 그 끝을 보다) 시 5편 실음
2023년 9월 시조 문학 도란도란 활동 중

싼 땅, 작은 땅을 사러 다녔다.
수도 없이 오갔던 하늘에 길이 날 정도로.
판포리 시골 마을에 대지 54평 건평 12평 집을 지어 늘 끄적거림.
누가 물으면,
무작정 제주가 좋아서 바다 건너 왔다고 말했다.
미진한 이 말은 언제나 뒤끝으로 남아 성에 차지 않았지만,
딱히 구구절절 할 말도 없었으니까 맞는 말 이기도 하다.
그러나
충분히 앓던 기억들,
열병을 들고 떠나온 건 침묵하는 제주바다를 짝사랑한 이유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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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진 2024-02-06 15:29:42
한번씩 카톡에 남겨주시는 메시지가 예사롭지 않다 생각했는데 왕여사님이 아니라 왕작가님이셨군요.
참 좋은글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은옥 2024-01-09 01:46:37
제주의 인정에 가슴이 따듯해 집니다. 한편의 시를 읽은듯 여운이 남아요..

2024-01-08 06:44:16
섬이 바다건너 온 시인님을 감싸 안아주셨네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제주네요.

김재희 2024-01-04 16:58:56
상예 빵이란 제주 도민의 훈훈한 인정 이었군요
어린 시절 막걸리를 넣고 발효 시킨 빵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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