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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란의 그림책 여행](11) 몽생아, 그림책 여행 가자!
[김란의 그림책 여행](11) 몽생아, 그림책 여행 가자!
  • 김란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12.15 1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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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생각하느라 그랬어요』

요즘 어린아이들의 대부분은 어른처럼 아주 바쁘다. 여린 새싹 같은 아이들이 거친 줄기 같은 부모들처럼 분주한 시간을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할 틈이 없다. 부모들이 짜놓은 성공 스케쥴에 맞추어 따라가다 보면 자기만이 생각이나 상상 같은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어른들의 생각 틀에 맞춰져서 커가는 것이다.

이 책은 어른들이 어린아이의 생각에 대해 알아야 할 것, 즉 아이들이 진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일깨워주는 그림책이다. 작가는 독자들의 판단을 강요하지 않는다. 어른들은 사랑스러운 어린이의 마음을 조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평화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열한 번째로 소개할 그림책은 샌돌 스토다드 워버그의 글과 이반 체르마예프가 그린 『생각하느라 그랬어요』이다. 샌들스토다드는 1927년 미국 앨라배마 주 버밍햄에서 태어났고, 시와 소설, 논픽션에서부터 역사 문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쓰고 있다. 몇몇 작품들은 영화화되기도 했다. 그림책 작품으로는『나는 네가 좋아I Like You』,『거북의 시간Turtle Time』,『잠자리에 든 생쥐Bedtime Mouse』를 썼다. 그림을 그린 이반 체르마예프는 193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교, 시카고 디자인 인스티튜드, 일리노이 공과대학교와 예일 대학교 디자인 스쿨에서 공부했다. 그동안 작업해온 상표와 포스터, 출판물 및 설치 미술들은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2014년에는 내셔널 디자인 어워드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생각하느라 그랬어요』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샌돌 스토다드 워버그의 책이다.

『생각하느라 그랬어요』

『생각하느라 그랬어요』, 책과 콩나무.
▲ 『생각하느라 그랬어요』, 책과 콩나무. ⓒ뉴스라인제주

어른들의 눈에는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린아이는 눈을 감고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고 어른처럼 성숙하게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바란다. 어른들은 아무리 바쁘고 지쳐도 아이들의 생각을 기다려주고 들어주고 이해해주어야 한다.『생각하느라 그랬어요』를 읽으며 잠시 아이들의 진짜 속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생각하느라 그랬어요』, 책과 콩나무.
▲ 『생각하느라 그랬어요』, 책과 콩나무. ⓒ뉴스라인제주

-어느 날 아침.
-엄마가 나를 깨우며 말했어요.
-“잘 잤니?”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생각하는 중이었거든요.

아이의 엄마는 시간에 맞춰 출근하려고 몹시 바쁘게 서두른다. 그런데 아이를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다. 엄마는 시계를 보며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생각하느라 그랬어요』, 책과 콩나무.
▲ 『생각하느라 그랬어요』, 책과 콩나무. ⓒ뉴스라인제주

- “일어날 시간이야!”
-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생각하는 중이었으니까요.

엄마의 목소리가 커지고 힘이 들어간다. 아이는 무언가 생각하느라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혹시 들었다 하더라도 상상을 멈추고 싶지 않다. 아이는 노란 셔츠를 입을까, 생각 중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멈출 수 없다.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햇살에 반짝이는 먼지들을 생각하고 레몬과 라임과 오렌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노란 바나나도. 바나나를 생각하다 보니 빨간 수박이 떠오른다. 그리고 빨간 꽃도.

『생각하느라 그랬어요』, 책과 콩나무.
▲ 『생각하느라 그랬어요』, 책과 콩나무. ⓒ뉴스라인제주

-“늦겠다, 어서 씻으렴. 깨끗하게 싹싹!”
-나는 생각해요.
-세숫대야에 가득한 물과 졸졸 흐르는 개울물을 생각해요. 반질반질한 조약들과 여러 모양의 조개껍데기와 딸랑거리는 방울처럼 근사한 것들을 생각해요.
-나는 파도를 생각하고 파란색을 생각하고 노란색을 생각하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빨간 꼬마 물고기를 생각해요.
-나는 생각해요.

아이는 어디에도 없는 멋진 생각의 나라를 세우는 중이다. 그런데 바쁜 엄마는 아이의 생각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엄마라는 권력의 힘으로 아이의 생각을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한다. 엄마는 아이에게 멜빵바지를 입으라고 강요한다. 그런데 아이는 하늘 높이 나는 연을 생각하고 자기가 하늘을 나는 상상한다. 그리고 연줄 끝에 대롱대롱 매달리기도 하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기도 한다.

엄마는 스웨터를 입으라고 하고, 양말이랑 신발도 신으라고 한다. 그래도 아이는 아직 생각 중이다.

『생각하느라 그랬어요』, 책과 콩나무.
▲ 『생각하느라 그랬어요』, 책과 콩나무. ⓒ뉴스라인제주

- 나는 여러 가지 얼굴을 생각해요.
-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과 찡그린 얼굴과 무서운 얼굴을 생까해요.
- 서로 다른 곳에 있는, 서로 다른 얼굴들을 생각해요.
- 나는 여행을 생각해요.
- 배를 타고 멀리멀리 떠나는 여행을 생각해요.
- 또 무엇을 생각할까요?

아이는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생각이 끝없이 이어진다. 엄마는 계속 아이의 생각을 방해한다. 양말과 신발을 신으라고 한다. 아이는 달님과 풍선을 생각하고 동그란 바퀴를 생각하고 풍선과 바퀴를 가지고 노는 물개를 생각한다. 그리고 공작과 펠리칸과 백조를 생각하고 커다란 코끼리에 올라타는 상상을 한다. 얼룩말과 기림과 살쾡이와 곰을 생각하고 사자와 호랑이를 생각한다. 그리고 서커스단을 생각한다. 아이의 생각은 마을 벗어나서 이 세상으로, 우주까지, 상상의 나라까지 자유자재로 드나든다.

『생각하느라 그랬어요』, 책과 콩나무.
▲ 『생각하느라 그랬어요』, 책과 콩나무. ⓒ뉴스라인제주

- “이제 제발 양말이랑 신발 좀 신자!”
- 나는 엄마를 생각해요.
- 백만 번, 천만 번, 억만 번 엄미를 생각해요.
- 나는 고릴라만큼, 코뿔소만큼, 코끼리만큼 엄마를 사랑해요.
- 나는 생각해요.

아이는 고릴라, 코뿔소, 그리고 코끼리를 엄마만큼 사랑한다. 그러면서도 하늘만큼, 땅만큼, 초콜릿케이크를 몽땅 합친 것만큼, 이 세상 모든 것보다 더 엄마를 사랑한다.

『생각하느라 그랬어요』, 책과 콩나무.
▲ 『생각하느라 그랬어요』, 책과 콩나무. ⓒ뉴스라인제주

-내가 양말을 신지 못한 건 바로 그 때문이었어요.
-내가 신발을 신지 못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어요.
-생각하느라 그랬어요.
-내가 엄마를 얼마큼 사랑하는지.

아이는 이 세상보다 엄마를 더 사랑하고, 그만큼 이 세상을 사랑하고 상상의 나라를 사랑한다.

부모들이 아무리 바쁘고 시간이 없더라도 아이의 사랑스러운 마음을 들여다보고, 소중한 아이의 말에 귀 기울여 준다면…… 아이의 생각을 꺾어서 얻는 편리함보다, 느리지만 갑을 헤아릴 수 없는 큰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김란 (그림책, 동화 작가)
▲ 김란 (그림책, 동화 작가) ⓒ뉴스라인제주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지만』 당선.

단편 동화집 『마녀 미용실』, 그림책 『외계인 해녀』, 『몽생이 엉뚱한 사건』, 『파랑별에 간 제주 해녀』, 『돌고래 복순이』, 어린이 제주 신화 『신이 된 사람들』, 그림동화 『차롱밥 소풍』 , 『오늘, 우리의 카레라이스』 . 하남시 스타필드 작은 미술관 등 여러 곳에서 그림책 원화 전시.

논문 『그림책 작가 다시마 세이조의 삶과 작품 연구』.

현재 제주에 살면서 그림책과 동화책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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