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5-01 11:49 (수)
[자청비](114) 스마트폰을 잠깐 잃어버렸을 뿐인데
[자청비](114) 스마트폰을 잠깐 잃어버렸을 뿐인데
  • 박미윤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09.2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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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윤 소설가
박미윤 소설가
▲ 박미윤 소설가 ⓒ뉴스라인제주

행사에 갔다가 스마트폰을 식당에 흘리고 왔다. 식당까지 가서 스마트폰을 가져와야 하는데 수업이 시작돼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남편에게 부탁해서 갖고 오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그 두 시간 남짓 동안 나는 많은 부분에서 제약을 받았다. 지갑형 케이스라 스마트폰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현금과 카드가 스마트폰과 같이 있어서 만약 어디에 흘렸는지 몰랐을 경우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니 아찔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스마트폰에만 저장되어있는 전화번호를 수기로 수첩에 잘 정리했고 꼭 필요한 카드만 갖고 다니기로 했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를 본 적이 있다. 스마트폰을 버스에 떨어뜨린 여자주인공은 스마트폰을 돌려받았지만 돌려받은 스마트폰에는 여자주인공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카메라앱이 내장돼 있었고 개인정보를 장악한 범인은 여자주인공의 삶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여자주인공을 가족들과 사회로부터 고립시켜 아무도 모르게 살해한다는 계획이었다. 지금까지 범인에 의해 희생된 피해자들은 그렇게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외톨이가 돼 그들이 죽어도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어서 범인은 완전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다.

여자주인공이 가장 친한 친구를 의심하게 만드는 과정과 회사 직원들로부터 반목을 사게 만드는 과정은 무서웠다. 스마트폰을 장악했기 때문에 범인은 여자주인공이 직접 쓴 것처럼 여자주인공의 말투로 회사를 욕했고 이런 쓰레기 같은 회사를 당장 때려치우겠다는 글을 SNS에 쓸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꼭 이렇게 스마트폰을 장악해야만 개인의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요즘은 SNS에 자신의 사생활을 시시콜콜 업데이트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올리는 사진과 글을 보면 대충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지내는지 유추할 수 있다. SNS에 올리는 사진이나 글들은 개인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긴 하지만 개인의 취향이나 취미 등이 여실히 드러난다. 나 또한 어떤 사람의 근황이 궁금하면 카톡의 프로필 사진들을 보기만 해도 대부분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눈치챌 수가 있다.

내 옆에 찰싹 붙어있는 이 조그만 기계는 이미 내 삶을 장악했다. 길 찾기를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에 의존하면서 길치인 나는 모르는 곳을 찾아갈 때 내비게이션을 켜게 된다. 또한 속도감시 카메라를 의식하여 아는 길도 내비게이션를 켜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전화번호는 단축 번호와 이름을 폰에 저장해놓기 때문에 외울 수 있는 전화번호가 거의 없게 되었다. 남편의 핸드폰 번호를 말하려 했을 때 갑자기 생각 안 나서 당황했던 적도 있다. 이 조그만 기계에 내가 많은 걸 의존하면서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이제 스마트폰은 개인과 떨어질 수 없는 애착 필수품이 됐다. 커피숍에서 보면 서로 대화를 하는 중에도 스마트폰이 손에 들려 있고 스마트폰으로 검색이나 다른 일을 계속한다. 같이 앉아있는 자리에서도 카톡을 주고받는 모습도 본 적 있다. 서로 대화하는 중에 폰을 만지작거리는 건 예전에는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여겨지기도 했는데 항상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요즘은 그렇지도 않은 거 같다.

내가 스마트폰을 영원히 잃어버렸다면 찍어놓은 사진들과 지금껏 착상이나 단상 등 메모해놓은 것들을 모두 분실하는 것이다. 시간이 날 때 꼭 필요한 사진과 메모를 다른 곳에 파일로 정리하고 복사해놓자고 생각하지만, 아직 실행하지 못했다. 이번에 스마트폰을 잠깐 잃어버린 후에 이런 작업들을 꼭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스마트폰을 잠깐 잃어버렸을 뿐인데 내가 잃어버릴 것들이 더 많았다. 스마트폰과 작별할 수는 없겠지만 내 부주의로 잠시 헤어질 때를 대비해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기록을 해둬야 하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이 내 삶을 장악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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