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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112) 매듭을 엮는 일
[자청비](112) 매듭을 엮는 일
  • 김순신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09.1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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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수필가
김순신 수필가
▲ 김순신 수필가 ⓒ뉴스라인제주

매듭은 넓은 의미로 말하면 실, 끈 등을 풀어지지 않게 묶는 것이다. 전통매듭은 좁은 의미로 실용적이거나 장식적인 끈목을 다양하게 엮고 묶어 만드는 기법을 말한다. 여러 가닥의 실을 합해서 3가닥 이상의 끈을 짜는 것을 끈목이라고 하고, 여러 가닥의 실을 합하는 것을 합사라고 한다. 끈목은 명주실이나 무명실을 모아 짜거나 꼬아서 만든다. 특히 전통매듭은 여러 단계를 거치고 수작업을 해야 하기에 쉽지 않은 일이다. 매듭 기술을 가진 장인을 매듭장이라고 하는데, 매듭장이 되는 일은 쉽지 않다. 서예나 미술에서 초대작가가 되려면 거처야 하는 과정들처럼 전통매듭을 이수했다 하더라도 전시회를 열어야 하는 등 과정들을 거쳐야 한다.

고등학교 선배님 딸(이지연, 서울 특별시무형문화재 제13호 매듭이수자)이 첫 전통매듭전시회를 고향 제주에서 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시회장을 찾았다.

역사적으로 매듭이 사용된 것은 삼국시대 이전 신석기 시대에 돌칼이나 돌도끼의 구멍에 끈을 꿰어서 사용하였던 흔적에서 그 역사를 엿볼 수 있다. 그 후 고려 시대를 거치고 조선 시대에 와서는 매듭이 각종 제례나 의례 때 또는 장식용이나 소품으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돌 복의 돌 띠, 노리개, 사주단지를 묶은 동심결, 상여를 장식한 유소(가마에 딸린 술) 등이 그 예이다.

전시장에는 처음 보는 도구가 있었는데 끈목을 엮는 도구였다. 여러 갈래의 가는 실이 실패에 매달려 있어서 돌려가면서 엮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가닥의 수에 따라 4수~8수~16수-24수 등으로 엮어지고 굵기도 달라진다. 매듭은 엮은 모양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다. 매듭을 하나씩 엮어서 작은 나무판에 붙여 일일이 이름을 붙여주니 매듭에 대한 공부가 되었다. 전시된 작품들은 노리개와 소지품을 담는 주머니 등이 많았다. 주재료는 명주실, 은사, 금사, 면사 등이며 옥이나 비취, 가죽도 있다. 만들 돌 띠, 필낭, 담배쌈지, 은장도 삼봉술 노리개 등을 보면서 비슷한 것 같으나 술의 색깔이나 사용한 구슬, 실의 굵기가 다름을 알 수 있었다. 호패 주머니도 있었다. 노리개는 지위에 따라 모양이나 술의 수가 달랐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되었다.

고인이 되신 아버지와 할머니와의 인연을 소중하게 매듭으로 다시 소환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아버지가 투병 중 해외여행에서 사 온 펜던트 선물을 다시 매듭으로 재구성하여 목걸이로 탄생시켰다. 할머니의 손길에 손녀의 손길이 더해진 조각보도 있었다. 할머니께서 조각 상보를 만들어 주셨는데, 너무 아까워서 사용은 못 하고 부적처럼 간직하고 있다가 상보 네 귀퉁이에 고운 매듭을 붙여서 전시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할머니의 내리사랑을 고이 간직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 뭉클하였다.

이지연 씨는 한복을 입고 개막식에 참석했는데, 한복과 앞깃에 달린 노리개가 잘 어울렸다. 그녀는 인사말에서 처음 매듭을 배우게 된 동기는 매듭 소품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매듭을 하는 동안은 모든 잡념이 사라져서 그 과정 하나하나에 몰입하는 시간이 참 좋았다고도 했다. 무형문화재 매듭 전수생이 된 것도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게 된 덕분이라고 하면서 먼저 고향에 계신 분들에게 작품을 보여드리고 싶어 제주에서 첫 전시회를 열게 되었단다. 서울에서도 전시회 축하를 위해 매듭장님 몇 분이 자리를 함께 해 주셨고, 제주에서도 많은 분이 개막식에 참여해서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인생의 마디마다 만나는 인연이 그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서 매듭 전수생이 된 것도 잘 엮어진 좋은 인연이라 여겨졌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나 직업을 가지는 일, 가족을 이루는 일, 한평생 사는 일들이 모두 매듭을 엮는 것과 같다. 전통매듭을 하기 위해서는 명주실이나 면실을 염색하고, 실을 합사해서 끈을 짜고, 매듭을 맺고, 술을 만들어 장식하는 과정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매듭을 엮을 때는 어느 것 하나 허술하게 대강 대강하는 법이 용납되지 않는다. 실을 염색하는 일부터, 합사하고 끈목을 만들어 매듭을 엮는 일 과정 과정마다 온 정성을 다한다.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염색에 공을 들이고, 굵기에 맞게 합사를 하고 비틀어지지 않게, 균형이 맞게,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내기까지 수십 번의 손길과 함께 성심을 다했을 때 제대로 된 매듭작품이 탄생하는 것이다. 인생도 그렇게 매듭 엮듯이 차근차근 반듯하게 엮어가면 고귀하고 멋진 인생이 될 것이고, 반면 그렇지 못하면 매듭을 풀어서 다시 엮어야 할 때도 있다. 사람 사는 일이 생각과 뜻대로 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본의 아니게 잘못 얽혀버리기도 한다. 멀리 내다 보지 못하고 코앞의 일만 생각하면서 설렁설렁, 되는대로 살다 보면 어긋나고 잘못 꼬여가는 매듭이 되기도 한다..

잘못 꼬인 매듭은 풀기가 어렵다. 어린 시절 뜨개질하던 어머니 옆에서 실타래를 가지고 놀다가 실타래가 엉켜서 그걸 푸느라 애를 쓴 적이 있다. 잘 풀리던 실이 한순간의 실수로 얽히게 되면 난감하다. 특히 인간관계에서는 엉킨 매듭 때문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매듭을 풀어달라고 하는 기도문이 있다.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1,2’가 있다. 이 기도문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독일 유학 중에 지은 것이다. 어느 화가가 그린 성모님께서 엉킨 실타래를 푸시는 모습의 그림을 보고 기도문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나도 매듭장만큼의 정성은 아닐지라도 나름 나의 삶에 최선을 다했지만, 본의 아니게 잘못 얽힌 매듭이 가슴에 옹이처럼 남아 있어서 수시로 통증이 온다. 그럴 때마다 성모님께 의탁하면서 ‘제발 얽혀버린 관계의 매듭을 풀어주십시오.’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앞으로 엮어질 나의 인생 매듭들이 더 단단하고 반듯하게, 아름답게, 엮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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