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5-01 11:49 (수)
[자청비](110)백두산 천지를 담다
[자청비](110)백두산 천지를 담다
  • 박미윤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3.08.31 09: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미윤 소설가
박미윤 소설가
▲ 박미윤 소설가 ⓒ뉴스라인제주

천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가슴이 울렁거렸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지는 구름을 주변에 살짝 거느린 채 그 푸른 수면을 드러냈다. 읍부녀회 단체여행 첫날, 백두산 서파 등정에서 보는 천지였다. 서파에서는 천지를 오래 감상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1442개의 계단을 오르느라 파김치가 됐고 인파 때문에 이리저리 밀렸다. 거의 몸싸움을 해야 천지를 눈에 담고 인증샷 한 장이라도 찍을 수 있었다. 한국관광객들도 많았지만 중국 사람들이 많았다. 가이드 말로는 요즘 중국에서 백두산 홍보에 중점을 두어 중국인 관광객이 더 늘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부르고 있고 원래 장백산은 만주족이 영산으로 숭상했다. 소수민족 말살 정책으로 만주어는 거의 사어가 됐는데 장백산을 홍보하는 건 동북공정과도 관계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다음 날, 백두산 북파 등정이 예정돼 있었는데 비바람이 불어 등정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고 가이드가 얘기했다. 그래서 전날 단체로 산 우비와 신발 위에 신는 덧신을 준비하라고 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져서 등산이 허락됐다.

봉고차는 꾸불꾸불한 산길을 달렸다. 산의 허리를 빙빙 돌아 천지로 갈 수 있게 산에 도로를 만들어놨다. 편안하게 차를 타고 가면서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이 무슨 자연파괴인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만약 한라산 옆구리를 돌아가면서 길을 내고 그 길로 봉고차가 등산객과 관광객을 실어나른다는 상상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자연은 말 그대로 자연적으로 놔둘 때 가장 아름다운 게 아닐까.

봉고차에서 내려서 계단을 올라갔다. 위를 바라보니 능선에 사람이 개미처럼 올라서 있었고, 아래는 우리를 태우고 온 봉고차 수십 대가 주차장에 나열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구름이 밀려왔다가 다시 밀려가면서 천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날 서파에서도 그랬지만 사진을 찍기 좋은 곳은 사람들이 많이 밀집해있어서 편안하게 감상하는 것이 수월하지 않았다. 천지라고 쓰인 표석 오른쪽에 전망대가 있었는데 거기에서는 사람들이 돈을 내고 사진 찍기 위해서 줄을 섰다. 가장 좋은 자리를 선점한 전망대는 아무나 올라가는 게 아니라 돈을 받고 사진을 찍어주는 게 오천 원이니 입장료가 오천 원인 셈이다.

관광객들은 구름이 걷히고 천지가 드러날 때마다 탄성을 질렀다. 그 사이에도 주차장에 봉고차는 더 늘어났고 천지로 올라오는 계단에는 사람들이 꽉 찼다. 신비의 영산이 관광객들의 소음과 발자국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영산이라 일컬어지며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중국과 한반도 국경에 위치해 있지만, 분단상황에 의해 우리가 백두산을 보려면 중국으로 가야만 한다. 이런 상황을 실감하게 해준 세 가지 일이 있었다.

중국으로 향할 때 동방항공 비행기는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창을 모두 내리라 하고 실내 등을 모두 껐다. 깜깜한 채 한 시간 정도를 비행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갑갑함을 느꼈다. 안내방송은 군사기지 시설 상공이라 그렇다고 하는데 요즘 인공위성으로 모든 시설이 파악되는 시대에 무슨 과잉조치인지 의아했다. 또 한가지는 우리가 북파 등정 전 휴게소 앞에서 당한 일이었다. 우리 여행사 가이드가 한글로 쓰인 여행사 깃발을 올리고 있었는데 공안이 그 깃발을 내리라고 한 일이었다. 가이드는 한글 깃발을 내리고 대신 노란 손수건을 깃대에 달았다.

마지막은 연길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심사를 할 때 한국관광객 몇 명이 저지당하는 걸 보았다. 남자 일행이 빨리빨리 하라고 말하자 공안이 그 남자의 여권을 압수했고 남자와 남자의 일행들이 거듭 죄송하다고 말하는데도 심사원들이 모두 나가버릴 때까지도 들여 보내주지 않았다.

이생진 시인은 몇 번을 오고도 한 번도 천지를 보지 못해서 ‘그럴 줄 알았다’라는 시를 지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
나라고 네 얼굴 보고 가랴 하겠냐만
네 얼굴 보고픈 그리움
장백송 가지에 새소리로 두고 간다.

요다음에 또다시 네 앞에 선들 네 얼굴 보여주겠느냐?
아니다, 아니다, 그게 아니다.
북경, 장춘, 연길로 돌아온 것이 네 비위에 거슬렸다면
요다음엔 개성, 청진, 원산으로 돌아가마

그때 가서 네 고운 얼굴, 고운 몸매,
얼싸안고 저 언덕을 뛰어 넘으리라.
아니면, 네 혼자 외로운 날
고운 새 한 마리 네 몸매 스치거든
그대 님이라고 반겨,
그대 님이라고 꽃처럼 반겨주어라 >

이생진님의 시의 어구처럼 다음에는 북경, 장춘, 연길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개성, 청진, 원산으로 돌아 백두산 천지를 볼 수 있을까.

구름을 걷어 웅장하면서도 신비한 자태를 보여준 천지의 기상처럼 희망을 가져볼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신대로5길 16, 수연빌딩 103호(지층)
  • 대표전화 : 064-745-5670
  • 팩스 : 064-748-5670
  • 긴급 : 010-3698-088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보기
  • 사업자등록번호 : 616-28-27429
  • 등록번호 : 제주 아 01031
  • 등록일 : 2011-09-16
  • 창간일 : 2011-09-22
  • 법인명 : 뉴스라인제주
  • 제호 : 뉴스라인제주
  • 발행인 : 양대영
  • 편집인 : 양대영
  • 뉴스라인제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라인제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newslinejeju.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