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5-03 23:46 (금)
[김도경의 놀멍 걸으멍](15)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 물메 마을의 서정에 물들다
[김도경의 놀멍 걸으멍](15)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 물메 마을의 서정에 물들다
  • 김도경 기자
  • news@newslinejeju.com
  • 승인 2022.10.24 23:0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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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좋아 산이 좋아 물메, 시와 밭담과 사람들”
애월읍 수산리 탐방
▲ 애월읍 수산리 탐방 ⓒ뉴스라인제주

햇살 좋은 아침에 하늘을 보며 가을 냄새 맡다가 수산저수지를 떠올렸다. 제주에 입도하던 해 사면이 바다인 섬에서 호수 이미지의 저수지가 신선하게 다가왔었다.

오늘은 계획 없이, 코스 정하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느낌 가는 대로 마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애월읍 수산리 탐방
▲ 애월읍 수산리 탐방 ⓒ뉴스라인제주

수산리사무소 옆 새롭게 건립된 수산물메문화복지회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남쪽 삼거리로 가는 동안 도로와 밭 경계에 세워진 시비들과 마주했다. 한가로운 농촌 풍경과 시비, 흔하지 않은 풍경이 신선했다. 처음 수산저수지를 봤을 때처럼, 그때 그 느낌처럼.

팽나무를 이정표삼아 오른쪽으로 돌아서자 물메 초등학교가 있었다. ‘물메’라는 이름이 예쁘기도 하고 정감이 가서 학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뒤뜰에 ‘시와 만남 학생 시화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학생들의 작품을 코팅해서 진열한 선생님들의 정성에 놀라고, 학생들의 시적 표현에 놀라고, 시골 학교의 아기자기한 외관 풍경에 한껏 물드는 시간이었다.

애월읍 수산리 탐방
▲ 애월읍 수산리 탐방 ⓒ뉴스라인제주

수산서6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하천 맞은편으로 수산저수지가 펼쳐졌다. 예전 이곳에 왔을 때 하천까지 피어있던 은빛 억새를 떠올렸지만, 그때의 풍경은 기억 속에서만 간직해야 했다.

수은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돌아서는 구간마다에도 시비가 있었다. 산이 좋아 물이 좋아 있는 그대로 시적 풍경이지만, 길에 세워진 시비들을 보며 물메 초등학교 학생들의 시화전 풍경을 다시 음미했다.

감성 마을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서정을 느낄 수 있었다.

애월읍 수산리 탐방
▲ 애월읍 수산리 탐방 ⓒ뉴스라인제주

이쯤에서 ‘물메’의 뜻부터 알아봐야겠다. ‘물메’는 수산(水山)의 옛 지명으로 한자차용표기다. 물메오름(수산봉)은 정상에 물이 마르지 않는 샘물을 품고 있었고, 기우제를 지내던 곳 영봉이라고도 불렀다. 조선시대 봉수대를 설치했다고 해서 수산봉(水山烽), 봉수대를 폐지한 후로 수산봉(水山峰)으로 한자만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애월읍 수산리 탐방
▲ 애월읍 수산리 탐방 ⓒ뉴스라인제주

수은교 다리건너에서부터 곰솔나무까지 가려면 수산저수지 둘레길 절반 정도를 걸어야 한다. 맞은편으로 탁 트인 둑방과 잔잔한 물, 물을 향해 허리를 굽는 듯 서있는 곰솔나무, 그 뒤편 수산봉, 고요하고 아늑한 풍경에 심호흡을 하게 된다. 산만하던 마음이 가라앉는다.

저수지가 필요할 만큼 예전에 농사를 많이 지었던 곳일까? 제주도에는 쌀농사가 많지 않았다던데, 이곳에는 붕어 같은 민물고기가 살고 있을까?

문득 드는 생각에 혼자 웃고 만다. 아이들은 궁금한 것이 많다는데, 생각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애월읍 수산리 탐방
▲ 애월읍 수산리 탐방 ⓒ뉴스라인제주

집에 와서 자료를 정리해본 것이지만, 수산저수지는 인공저수지라고 한다. 동마을의 농지 2만4천여 평과 24가구의 집을 수몰시키고 44여 가구의 집을 철거시키면서 추진한 강력한 쌀 농업 진흥정책이었다.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면서 제대로 사용도 못하고 방치되다가 1980년대 이후 위락시설과 유료낚시터로 활용하려는 노력도 해보았지만, 여의치 않았던 듯하다. 수산저수지는 현재 ‘수산광령지구 수리시설개보수사업 토목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마을을 수몰시키고 얻은 평화롭고 아늑한 휠링 공간, 한을 승화시킨 예술이라는 말에 공감하는 시점이다.

애월읍 수산리 탐방
▲ 애월읍 수산리 탐방 ⓒ뉴스라인제주

천연기념물 곰솔나무 앞에 섰다. 높이 10m, 가슴높이의 둘레 4m, 지상 2m 높이쯤에 원줄기가 잘린 흔적이 있고, 그곳에서 사방으로 4가지를 뻗어 내리며 물을 향해 허리를 굽는 듯 서 있는 노송이다.

이 곰솔나무는 진주 강씨 제주입도 3세손이 자신이 살던 집 뒤뜰에 심었다고 한다. 그의 아들 강응현이 이 터를 이어받아 살다가 1601년(선조 34)에 발생한 문충기의 난으로, 문충기 사위였던 강응현이 역모죄에 휘말릴까봐 이곳을 떠나면서 곰솔나무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1971년 제주도 기념물 제8호로 지정, 2004년 5월 14일 천연기념물 제441호로 승격 지정되기까지 강씨 집안에서 이 곰솔나무를 관리했다고 한다.

애월읍 수산리 탐방
▲ 애월읍 수산리 탐방 ⓒ뉴스라인제주

저수지를 끼고 수산봉으로 오르는 길, 물메 호반팔경(湖畔八景) 중 하나인 원사종향 만령진혼(원사의 은은한 종소리 원혼 넋 진정시키누나) 4.3사건 피해사찰(水山寺), 현재 대원정사를 볼 수 있었다.

‘1933년 창건된 원천사가 뿌리인 사찰 대원정사에는 호국영령의 위패가 모셔져있다. 매년 삼월 삼짇날(음력 3월 3일) 충혼제를 올리고 있다.’

절 서쪽 자락에는 충혼묘지가 있다.

애월읍 수산리 탐방
▲ 애월읍 수산리 탐방 ⓒ뉴스라인제주

봉도고비 충절문촌(산자락 오래된 묘비, 충절문촌 증거한다) 조선시대 첨지중추부사를 제수 받은 士禎高漢柱(靈雲 髙景晙 부친)의 생애와 업적을 기린 묘비를 지나, 산정봉대 일망무제(산 정상 봉수대 탁 트인 사방 경계한다) 수산봉 정상에 올랐다. 사방이 숲에 가려 옛 모습은 아니었지만, 근린체육시설과 연못, 시비 등 깔끔하게 정돈된 근린공원이 있었다.

수산봉수가 설치되었던 군사기지, 동쪽으로 도원봉수(도두동) 서쪽으로 고내봉수(고내동)까지 연결하는 통신 역할을 했고, 제주 앞바다와 비양도까지 바다를 감시하던 안보의 요지였던 이곳은 경찰부대 콘크리트 건물과 송신기지탑이 있어 옛 봉수의 역할을 이어가는 듯 보였다.

애월읍 수산리 탐방
▲ 애월읍 수산리 탐방 ⓒ뉴스라인제주

정상에서 만난 시비에 새겨진 시 한 편 옮겨본다.
 

빗소리
 

이재무
 

빗소리에 젖는다
비에서 소리만을 따로 떼어내
바가지에 담고
양동이에 담고
욕조에 가득 채운다
소리를 퍼 올려 손을 닦고
발을 닦고 마음을 닦는다
소리를 방안에 가득 깔아놓고
첨벙첨벙 걸어 다닌다
소리의 줄기들을 세워
움막 한 채 짓는다

이왕이면 수산봉의 내력을 담은 시비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정상을 한 바퀴 돌아 오른편 계단으로 내려섰다. 햇살 받은 나뭇잎이 연둣빛이었다. 가을 연둣빛은 봄의 여린 잎과 다른 중후한 맛이랄까? 연둣빛에도 깊은 맛이 있음을 가을날에 읽었다.

애월읍 수산리 탐방
▲ 애월읍 수산리 탐방 ⓒ뉴스라인제주

물메 호반8경(湖畔八景)
 

제1경 성두적성 차향지예(城頭笛聲 此鄕之譽)
(성목의 경적 소리, 이 고장 명예 드높인다)

제2경 제안행로 수광은파(堤岸行路 水光銀波)
(제방길 호수에는 은빛 물결 출렁이네)

제3경 산정봉대 일망무제(山頂烽臺 一望無際)
(수산봉 정상 봉수대 사방이 확 트이고 조국수호 마을사랑 안보지혜가 숨을 쉰다)

제4경 봉도고비 충절문촌(峰道古碑 忠節文村)
(산자락 따라 선비내음 문필향기 풍긴다)

제5경 노송수호 산유지락(老松守湖 散遊至樂)
(노송이 호반을 지키며 풍유 멋을 더해준다)

제6경 수은교당 전래민풍(水雲敎堂 傳來民風)
(민족 종교의 성지인 수운교 법당 큰섬지 정한수로 기도하던 선영들의 숨결이 아름다운 민풍으로 맥을 이어간다)

제7경 당동정자 녹음민회(堂洞亭子 綠陰民會)
(녹음 벗 삼으며 민의를 논하고 꿈을 키웠던 민초의 함성이 들린다)

제8경 원사종향 만령진혼(院寺鐘響 萬靈鎭魂)
(원사의 은은한 종소리 중생 넋을 진정하누나)

2010년 마을주민들이 향토사학자이자 교육자인 김찬흡 선생께 의뢰해 수산저수지 주변의 아름다운 8곳을 선정했다고 한다. 지난 달 향년 90세로 고인이 되신 김찬흡 선생의 명복을 기원했다.

애월읍 수산리 탐방
▲ 애월읍 수산리 탐방 ⓒ뉴스라인제주

차가 세워진 곳으로 돌아오다가 제6경에 나오는 ‘큰섬지’를 찾아 수운교당을 끼고 하천 건너편에서 동남쪽으로 걸었다. 큰섬지에는 물의 양은 적었지만, 용천수가 나오고 있었고 고여 있는 물도 맑았다. 큰섬지에 대해 적어놓은 푯말이 훼손되어 읽을 수가 없어 아쉬웠다.

수산리 물메 마을에 가면 밭담길 따라 호반 8경을 만나고 시비 따라 감성에 물들고 세월 따라 변해온 역사와 조우한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2시간 정도 소요되는 ‘물메 밭담길’을 걸어도 좋고 간단하게 수산저수지 둘레길을 산책해도 좋고 수산봉에 올라도 좋다. 128개의 시비에 새겨진 시를 읽으며 104명의 시인을 기억하는 여유도 즐길 수 있다.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물메 마을로 가보자.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애월읍 수산리 탐방
▲ 애월읍 수산리 탐방 ⓒ뉴스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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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2022-12-30 21:47:03
몇년전에 제주 애월읍을 탐방한적이 있어요.작가님 글을 읽으며 다시 방문해서 추억을 쌓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양전형 2022-10-27 12:44:18
수고 하시는 그 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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