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흙과 돌이 서로를 껴안고 엉켜있는 하논 어디쯤, 사시사철, 꽃들은 피어나고 새들은 지저귀고 시인이 자주 산책을 나서곤 하는 그리운 땅이여’
하논 . 3
문 상 금
길모퉁이 어디쯤
토종 갯나물 꽃으로
피어나고 싶다
자줏빛 짙은 잎에
노란 꽃대를
그리움의 깃발처럼
흔들고 싶다
펄럭이다
그래도 그리움이 남거들랑
잠시 갯나물의 톡 쏘는
매운맛 탓하며
눈물 글썽여도
좋을 하논에서
오늘은
갯나물 꽃으로
너에게로 가고 싶다
그 소박하고
진한 향으로
달려가고 싶다
-제5시집 「첫사랑」에 수록
언제부턴가 산책길을 나서다보면 바다 다음으로 자주 가는 곳이 바로 하논이다. 경사지고 구부러진 길 따라 굽이굽이 걸어가곤 한다.
길을 나서면 늘 만나게 되는 것들이 있다. 조용히 앞 다투어 피어나는 동백꽃들, 그 붉은 귀를 종긋한다, 동백꽃의 꽃술은 유독 짙고 노랗다.
길모퉁이 천천히 돌고 돌아 하논 가는 길, 검둥이도 컹컹 짖고 가끔 살찐 토종 어미닭과 병아리 서너 마리 게으르게 먹이 찾는 하논 가는 길
배추꽃과 무꽃 귤꽃까지 환히 피어 저절로 눈부신 하논 가는 길
어느 동화 속 붉은 정원(庭園)처럼 그 곳엔 힘 센 전사가 숨어서 살아 가끔은 붉은 동굴 비밀의 문이 열렸다 닫히곤 한다.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처럼 물과 불이 용솟음쳤던 아, 하논에서는 따뜻한 동화(童話) 한 편이 명작품(名作品)으로 늘 태어나곤 한다.
빈 밭에 오늘은 빼곡하게 엉킨 채로 자라고 있는, 일부는 벌써 꽃대가 올라오고 있는 갯나물 무리를 보았다, 이럴 때는 망설이지 않는다, 아무도 돌보지 않고 관심조차 없는 외진 빈 밭으로 성큼성큼 들어서서는 저절로 싹 나고 뿌리 내려 자라는 갯나물들을 한 웅큼 솎아주었다.
끈질긴 목숨들, 이 세상 어디에 질기지 않은 목숨이 있으랴마는, 뽑히는 그 순간에도 ‘톡’하고 매운 맛, 매운 향 터뜨리는 그 야무진 것들을 한바탕 버무려, 그 강한 기운을 맛볼 참이다.
시인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맛들을 알고 느끼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중에 갯나물 맛 같은 세상살이의 매운맛도 깃발처럼 펄럭이는 노란 꽃대의 그리움의 눈물 맛도 잘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가끔 아직은 빈 들판에 서서 갯나물이 되어 본다, 뿌리를 내리고 꽃대를 올려 노란 꽃을 피워 올려보곤 한다. [글 문상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