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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금의 시방목지](57) 이어도엔
[문상금의 시방목지](57) 이어도엔
  • 문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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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1.31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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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 돌아, 빙 돌아, 빙빙 돌아, 결국 이어도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뭍이란 걸 알았다’
 

이어도엔
 

문상금
 

늘 바닷물이 출렁일 때면
가끔 이어도는 어떤 곳일지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는지
참 궁금하였다

이어도엔
순비기꽃 닮은 눈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살까

이어도엔
머리를 파묻고 밤새워 울어본 적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살까

바람에 물이 온통 뒤집혀야
갈 수 있는 이어도엔,

항구에 반짝거리는 불빛만큼이나
그리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간다
 

-제3시집 「누군가의 따뜻한 손이 있기 때문이다」에 수록
 

문상금 시인
▲ 문상금 시인 ⓒ뉴스라인제주

겨울이 들어서자 첫 눈이 내렸다.

두 눈을 감고 양 겨드랑이에 숨겨진 날개를 활짝 펴고 한라산 1,100고지 근처를 날아가 보았다. 내가 한없이 좋아하는 겨울나무들이 거기 있었고 상고대를 보았다. 오후 햇살에 반짝거리는 겨울나무들, 얼음 옷을 입고 병정처럼 거기 서 있었다. 가만히 만져보았다. 마치 오래 입은 헌 옷처럼 친구처럼 그들은 내 영혼 깊숙이 다가와 자리하였다.

다섯 권의 창작시집을 내었고 이제 여섯 번째 시집 원고를 끝내 놓았다, 나의 외로운 영혼에서 태어난 원고 꾸러미를 가만히 어루만져 보았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정기적으로 태어나는 그것들을 마치 종이배를 냇물에 띄워 보내듯, 내 시(詩)들을 놓아 보내곤 한다. 내 영혼 깊은 곳에서 꿈틀대며 솟아나오던 그것들에게 한없는 자유(自由)를 주었고 부디 행복한 뭍에 당도해 단단히 뿌리 내려주기를 간절히 기도를 하였다.

시를 세상으로 내어놓는 작업은 아이를 출산하는 것과 같다, 그 산고의 퀭한 허탈함이 눈물로 쏟아져 멈추지 않을 때에는 종종 길을 떠났다.

소래포구를 가보았다. 비릿한 갯바람 풍기는 서귀포에서도 하루에 몇 번씩 바다를 보아야 편안해졌었는데 거기는 도통 바다라는 느낌이 안 들었다. 그리고 서서히 불안해지는 것이었다. 한바탕 조개구이를 먹고는 그냥 돌아섰다.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조금씩 편안해졌다. 쌩쌩 달리는 차창 밖으로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밤에 도착한 빛 고을 광주는 온통 눈 세상(世上)이었다. 따뜻한 설렁탕을 먹고는 오래도록 광주 시내를 걸었다. 가로등 밑으로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아무도 밟아보지 않은 골목길 눈 위를 쿵쿵 힘주어 발자국을 찍어 보았다. 그렇게 밤새도록 온통 함박눈이 내렸다.

내 외로운 마음에도 내렸고 앞으로 닥칠 내 불안한 마음에도 내렸고 내가 힘주어 찍은 발자국 위에도 주저 없이 내리고 내려, 상처 없고 따뜻한 또 하나의 흰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었다.

서귀포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천지연으로 가 바다 냄새를 킁킁 맡아 보았다. 내가 태어나 여태까지 나를 성장시켜준 바다가 비로소 거기에 있었다. 내가 아파할 때나 방황할 때 한바탕 울고 싶을 때 아무 말 없이 마치 어머니의 품 속 같은 따뜻한 자궁으로 품어 주었던 오랜 친구가 거기에 있었다. 또 눈물이 났다.

바람 따라 조금씩 흔들리며 더 짙어져가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 짙은 푸름 속에서 깊고 깊은 세상의 중심을 보았다. 그 중심은 결국 내가 평생 껴안고 뿌리내려야 할, 바로 우리 집이었다. 이어도였다.[글 문상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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