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순간의 예술 디카시 감상
일자리 잃고
집에는 차마 말할 수 없어
너의 곁에
잠시 한숨 내려놓고 쉬어 간다
_ 소정선
<소정선 시인>
시사모, 한국디카시인모임 회원
문학사랑신인상
제목을 읽고 사진을 응시하는데 코끝이 찡해집니다 이 디카시는 제목과 사진 그리고 언술이 완벽하게 하나의 흐름이 되어 감동을 줍니다
아무도 없는 공원 벤치 그 아래 종이컵이 덮인 술병과 널브러진 담배꽁초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집에는 차마 말 할 수 없어
너의 곁에
잠시 한숨 내려놓고 쉬어간다'
따로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할까요?
제 아버지는 건강 때문에 오십에 직장을 그만두었지요 아버지가 타고 다니던 자전거가 마당 한쪽에 우두커니 세워져 있고 밤늦게 안방에서 새
나오던 아버지의 신음소리와 어머니의 한숨소리로 가득했던 집
아주 오래전 일어났던 일인데 어제의 일처럼 기억됩니다.
아버지는 쉬며 치료를 받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지요
연락을 주겠다는 곳에서 연락이 오지 않고 퇴직금도 거의 동이 날 무렵 아버지는 아픈 몸을 이끌고 누군가 만나기 위해 외출을 했지요
그날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어머니는 들뜬 음성으로 아버지가 다시 취직이 되었다고 좋아라 했어요 그때 우리는 아버지가 어떤 어떤 일을 하게
되었는지는 궁금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아버지가 다시 일을 하게 되어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환호했었습니다
저는 상당히 긴 시간 아버지와 불화했었습니다 아버지의 무능이 저를 힘들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혼자 고민했을 아버지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얼마나 막막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아버지도 무서웠을 텐데
가장이라는 이유로 안 그런 척, 괜찮은 척했겠지요
그 나이 되도록 육종 연구만 했던 사람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막일을 하며
내색하지 않았던, 그러다 결국 다시 쓰러졌던 아버지
그날 제 아버지에게도 저 벤치가 있었을까요.
[글 구수영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