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5-02 09:56 (목)
[오롬이야기](33) 낮은 벌판 중에 꼭꼭 숨은 야생의 돌산, 돌리미
[오롬이야기](33) 낮은 벌판 중에 꼭꼭 숨은 야생의 돌산, 돌리미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20.09.16 09: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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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주 오롬연구가·JDC오롬메니저
◇새롭게 밝히는 제주오롬 이야기
서쪽에서 본 돌리미
▲ 서쪽에서 본 돌리미 @뉴스라인제주

바라보며도 찾을 수 없던 오롬, 이미 두 세 차례나 돌고 돌았지만 돌리미를 찾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작심하고 찾아내리란 생각으로 땅 번지가 가리키는 데로 차를 세웠다. 북동쪽으로 질퍽거리는 길을 따라간다. 수산리水山里가 달리 수산리가 아니구나. 돌리미 주위는 사방이 습지다. 오롬을 따라가며 보니 오롬은 그냥 그 자리인데 길은 길대로 가버린다. 오롬을 보며 오른 쪽을 보니 노루망이 쳐 있고 그 너머엔 가시덤불 투성이다.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오다 오롬이 보여 가자더니 황새, 억새가 키 높이다. 헤치고 가보았지만 돌담이 둘려 있고 그 너머로도 고사리, 억새, 가시밭이다. 다시 되돌아오는데 포장되지 않은 길이 오롬 쪽으로 나 있어 옳다구나 따라가 보았다. 좌측으로는 포크레인으로 캐낸 돌인 듯한데 산처럼 쌓였다. 길은 끊기고 시커멓게 넓고 큰 밭이 보인다. 이미 파종하여 막 싹 틔우는데 밭 가운데로는 키 큰 후박나무가 오롬까지 이어진 것 같아서 다시 따라간다.

돌리미 중간의 원형굼부리
▲ 돌리미 중간의 원형굼부리 @뉴스라인제주

그러나 가보니 돌담너머로 억새 가시덤불이 다시 길을 막는다. 더 이상 갈 수 없어 돌아오는데 왼쪽 끝으로 목장 철책이 보인다. 그러나 길이 없어 돌아갈까 하려는데 좌측으로 자동차바퀴자국이 보인다. 키 큰 억새를 깔아뭉개고 간 자국이다. 이제 길을 찾았다 싶었다. 후~ 하고 숨을 들이키며 내려다보니 밝은 초록빛 속에 쌀 톨 만한 노란 꽃들이 보여 등 굽혀 본다.

손으로 쓸어보니 솜털같이 부드럽다. 자골이다. 제주산 목초 중에 소들에겐 콩밥처럼 반가운 자골, 조밥 속에 콩을 찾던 우리들 어린 시절에는 흔하디흔한 제주산 목초인데 언제부터 인가 서양목초를 재배하다보니 요즘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야생의 들판에서 이렇게 보게 되다니... 차바퀴 자국을 따라가다 보니 용눈이가 아닌 곳에서 처음으로 야고를 본다.

남쪽에서 본 돌리미
▲ 남쪽에서 본 돌리미 @뉴스라인제주

야고는 열당과 한해살이 들꽃으로 억새뿌리에만 기생한다. 짧은 줄기에 비늘모양 잎이 몇 개 있고 가을에는 한 뼘 정도 꽃줄기 끝에 밝은 자주색 꽃이 피고 달걀모양의 씨가 열린다. 한라산과 오롬들에만 분포한다는 야고다. 고등기생 식물은 광합성도 하나 전기생半寄生식물은 엽록소가 없어 전혀 광합성을 못 하는 식물이다. 야고∙실새삼∙수정란풀 등은 그래서 동화작용도 못하고 숙주로부터 양분을 흡수하며 살아가는 전기생 식물이다.

얕은 언덕부터 자동차 자국을 따라가는데 솔가지가 가로막힌 언덕너머로도 바퀴자국이 나 있다. 그러고 보니 목장차가 아니고 산악자동차를 타고 질주한 것이다. “길을 내주어 고맙다는 생각과 더불어 이렇게 제주의 자연이 파괴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뇌리를 스치니 감사와 감정이 교차한다.

‘돌미’란 오롬 동편에 큰 바위 돌들이 박혀 있어 멀리서도 도드라져 보여 ‘돌뫼’라 한 것이 ‘돌미’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자로도 ‘돌산乭山’이라 한 것은 ‘돌뫼’를 그대로 음차 하여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롬을 아무리 뒤져도 바위는 보이지 않았다. 굼부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앞서 헤매던 중에 어디서 깨내어 쌓아둔 돌인지 이제 알게 되었다.

북쪽에서 본 돌리미
▲ 북쪽에서 본 돌리미 @뉴스라인제주

낮은 봉우리들이 남북으로 길게 누워있다. 동으로 등 굽고 서로 굼부리를 품었다. 지금은 농사를 짓지 않으나 굼부리임이 분명한 둥근 밭이 보인다. 그 너머에 바위 돌들이 둘려 있던 것이다. 길을 찾아 헤맬 때 초승달처럼 보이던 검은 흙 밭을 경계로 바윗돌들이 둘려 있었다. 그래서 ‘돌리미’란 이름이 생긴 것이다. 굼부리 너머 보였던 돌들이 여기서 깨트려져 쌓아 놓은 것이다. 이 돌들마저 치워져 버렸다면 ‘돌리미’ 어디에 바윗돌들이 있었다 할 것인가?

제주산림조합에서 출판한 ‘제주의 오롬 368’에는 돌리미가 원추형 오롬이라고 하나 돌리미는 남북 중간에 원형굼부리를 가진 오롬으로 보인다. 나지막한 돌리미 언덕 위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니 낭끼, 왕메, 큰물메, 청산오롬이 보이고 남서쪽으로는 낭거봉, 궁대악, 후곡악이 있는데 한라산은 오롬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북쪽으로는 수산리풍차단지와 그 너머로 구좌읍의 우뚝한 도랑쉬오롬과 곱닥허게(곱게) 누운 용눈이오롬도 보인다.

낮은 벌판 중에 꼭꼭 숨은 야생마 같은 오롬 돌리미, 돌미∙돌산도 좋지만 초승달처럼 서쪽으로 ‘돌리어진 바윗돌 너머에 누운 오롬’을 뜻하는 ‘돌리미’란 이름이 참 좋다. 어감도 좋고 제주어를 잘 표현하였다. 길 너머에 성산읍 ‘생태탐방공원’이 자리 잡았다. 매트를 깔고 난리치지 말고 생태는 그냥 두되 탐방로에 풀이나 베고 리본이나 메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돌리미에서 보는 야고
▲ 돌리미에서 보는 야고 @뉴스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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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주 2020-09-16 15:35:58
오롬을 알고 오롬을 보면 오롬이 더 정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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