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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롬이야기](29) 철부지 색시같이 부끄러운 낭끼오롬
[오롬이야기](29) 철부지 색시같이 부끄러운 낭끼오롬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20.08.2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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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주 오롬연구가·JDC오롬메니저
◇새롭게 밝히는 제주오롬 이야기◇

성산읍 수산리 3954번지에 소재한 낭끼오름은 땅 번지가 그렇듯이 오롬이라기보다 낮은 언덕 같아서 변변치 않다. 그러나 이름은 많은데 낭곳, 낭껏, 남케, 남거봉 등으로 불렸다. '낭'은 제주어로 나무이다. ‘낭곳’의 ‘곳’은 제주어로 숲이며 낭궤(ㄱ+ㆍ+ㅣ로 써야하나 한글 고어 자판으로도 표기가 어렵다)는 제주어 ‘나무’의 변형들로 보인다. ‘끼’는 변두리를 뜻하는 말이라 하나 큰 의미 없는 말이다. 같은 뜻으로 일본어의 ‘키き’도 나무를 뜻하는 말이다.

남거봉은 한자로 수산진 남쪽 들판인 수산평에 거居(있을 거, 차지할 거)하는 오롬이란 뜻으로 ‘남거봉南居奉’이라고 쓸 수도 있고 ‘남쪽의 큰 벌판 중에 오롬이란 뜻으로 클 거巨자를 써서 ‘남거봉南巨奉’이라 할 수도 있으나 ‘남거봉南居奉’이란 뜻이 합당했으리라 보나 ‘남거봉’이라 할 뿐 한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낭끼, 낭게를 한자로 음차한 것이다. 탐라지초본(耽羅誌草本) ‘산천山川조’ 정의군에 24개 오롬이 나오나 ‘남거봉’은 없다. 이로 볼 때 낭끼오롬의 존재는 미미하다고 본다.

소송로 서쪽입구에서 본 낭끼오롬
▲ 소송로 서쪽입구에서 본 낭끼오롬 @뉴스라인제주

낭끼오롬은 해발185.1m 비고40m 밖에 안 되는 매우 낮은 오롬이다. 정상을 오르는데 5분정도면 도달한다. 오롬 둘레는 1.6킬로니 그리 작은 편이 아니라서 펑퍼짐하다. 도로상에 표지판이 없어서 눈으로 보는 것과 달리 지나쳐버린다. 뒤돌아서 한참 좁은 시멘트 길을 따라가 보니 오롬 한 바퀴를 돌게 되었다. 걷다보니 비포장 된 곳이 나오고 계속 걸으니 오롬 입구가 나온다. 서쪽을 보니 수송로(수산~송당) 아스팔트길 서쪽 정면에 길이 있는 걸 알았다.

수송로 서쪽 오롬 정면에 서면 벌판 중에 푸른 숲이 우거진 높지 않은 오롬이 보인다. 좌측에 저수탱크를 보며 따라가면 주차장이 있고 조금 더 가면 표지판이 보인다. 목재계단을 따라 오르면 정상까지는 150m로 5분이 안 되어 정상에 이른다. 입구가 있는 서쪽에서는 뒤집힌 조각배 같이 납작한 모양인데 남쪽에서 보면 그보다 조금 높게 보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동쪽을 돌아 북쪽으로 갈수록 점차 높아지며 피라미드 모양으로 변해간다.

낭끼오롬 정상서 본 동녘의 청산오롬
▲ 낭끼오롬 정상서 본 동녘의 청산오롬 @뉴스라인제주

700년 전 몽골에서 처음 말이 들어 온 게 성산포이다. 말들이 중산간 방목지로 옮겨갈 때 수산평 일대에 자연히 방목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점차 몽골과 다른 방법으로 사육되었을 것이다. 중국의 내몽골이나 고비사막 건너의 외몽골 초원은 삭막했다. 몽골에서도 소나 양은 가까운 곳에서 방목하나 말들은 멀리 떼를 이루어 풀을 찾아다니는 것은 제주와 같다.

제주의 겨울, 소는 서너 달 쯤 집에서 건초를 먹이며 관리한다. 말은 꼴을 베고 난 자리에 짧은 그루터기를 찾아 먹는다. 겨울에도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을 가까운 곳으로 내려왔다가 계절이 풀리면 다시 산지로 올라간다. 제주도에서는 풀이 마르는 영등달(2월)이면 산야에 방애불을 놓아 들판을 태운다. 진드기를 예방하고 거친 풀과 가시를 태워 관리하는데 낭끼오롬은 불타지 않은 벌판 변두리에 나무들이 남아 있어서 ‘낭끼오롬’이 되었을 것이다.

낭끼오롬 정상서 본 서녘의 풍차들
▲ 낭끼오롬 정상서 본 서녘의 풍차들 @뉴스라인제주

오롬 남쪽에서 둘레 길을 걷다보면 동북쪽으로 갈수록 길은 기우러지고 오롬은 높아진다. 북쪽으로 이르면 더 깊어져 비탈을 이룬다. 오롬 동북쪽 기슭은 침식되어 있는 데 형체가 확실하지 않다. 둥글고 얕은 원형 굼부리가 비탈지게 둘려 있다. 오롬의 서남쪽은 수송로 길에 접해 있으며 평평한 벌판을 이룬다. 오롬 4면은 벌판이었을 텐데 점차 농사를 지었을 것이다.

낭끼오롬은 나무가 많아야 할 텐데 오롬에 식재된 소나무, 편백나무가 주류이며 제주 원산인 고목들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고작 예덕나무, 참식나무, 졸참나무, 구럼비, 사스레피, 가막살, 보리똥, 청미래, 찔레 정도고 그나마 몇 그루에 지나지 않는다. 8월 말 처서를 지나는 정상에는 골등골풀꽃, 이질풀꽃, 엉컹퀴 등 몇 가지 풀꽃이 고작이다.

수송로 남쪽에서 본 낭끼오롬
▲ 수송로 남쪽에서 본 낭끼오롬 @뉴스라인제주

그러나 낭끼오롬 정상에 서면 사방의 주위가 트여 있어서 사면이 훤하다. 동쪽으로는 멀미오롬, 왕메, 소섬, 바오롬, 청산오롬, 큰물뫼 등이 보인다. 서쪽으로는 한라산 앞으로 표선면 영ᄆᆞ루, 개오롬, 뒤굽은오롬이 보인다. 북쪽으로는 풍력단지 풍차 뒤로 구좌읍의 동거미, 높은오롬, 손지오롬, 돌오롬, 둔지, 도랑쉬, 용눈이오롬 등이 보인다. 남쪽으로는 성산읍의 모구리, 나시레, 유가메오롬 등이 보인다.

낭끼오롬은 내세울 것 없는 촌색시 같다. 노꼬메, 도랑쉬같이 높지도 않고, 영ᄆᆞ루(영주산), 멀미오롬같이 넓지도 않다. 청산오롬(일출봉), 굴오롬(산방산)같이 수려하지도 않고, 물영아리, 물찻오롬처럼 특이하지도 않다. 거문오롬, 우진제비처럼 좋은 숲도 없는 그저 수수한 촌색시다. ᄆᆞ쉬(마소)떼나 키워내는 갑남을녀 같은 오롬. 곤주시(작은매미)가 운다. 제주의 여름도 처서를 맞으며 가을로 간다. 해 저무는 벌판에 긴 그림자를 앞세우고 귀가하는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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