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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롬이야기](24) 정의군을 내려보는 성읍리 앞오롬인 영ᄆᆞ루오롬
[오롬이야기](24) 정의군을 내려보는 성읍리 앞오롬인 영ᄆᆞ루오롬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20.07.18 07:5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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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주 오롬연구가·JDC오롬메니저
새롭게 밝히는 제주오롬 이야기
성산읍 수산리에서 본 영모르 가는 길
▲ 성산읍 수산리에서 본 영모르 가는 길 @뉴스라인제주

제주 오롬의 문외한들은 제주에 5개 산이 있는데 한라산⦁영주산(영ᄆᆞ루, 영지산)⦁산방산(굴뫼)⦁송악산(절우리오롬)⦁단산(바굼지오롬)⦁군산(군뫼)이라고 한다. 그러나 제주에는 한라산 하나 밖에 없다. 그 외로는 ‘산’이라하든 ‘뫼’라하든 ‘메’라하든 ‘미’라하든 모두 368개 기생오롬들 중 하나일 뿐이다.

영ᄆᆞ루오롬(영주산)의 높이는 제주 오롬들 11번째, 그중 면적은 세 번째이다. 조선 후기(1792, 정조16∼1872) 제주목사 이원조李源祚는 이를 영주산瀛洲山으로 표기하였으나 이는 한국어로 표기할 수 없기에 그렇게 썼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제주어를 되찾아야 할 때이고 영주산은 한라산을 일컫는 것이기에 예부터 불러온 영ᄆᆞ루오롬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정의군 성읍의 앞 오롬인 영ᄆᆞ롬은 ‘바다 가운데 선하고 아름다운 동산’이란 뜻으로 이는 한자표기에 불과하다. 삼국시대 이전 독립국이던 탐라는 고려 속국이 되어 ‘영주목瀛州牧, 전설의 바다 속 고을’로 전락해 버린다. 제주왕가는 유지되었으나 내치內治 정도이고 고려국에서 보낸 영주목사는 외교, 국방권을 가진 총독과 같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영주산瀛洲山이라 쓰인 것은 “정의현 북쪽 4리(960m정도)에 있다. 산 북쪽은 정의 · 김녕 · 함덕으로 신선이 많다. 세상에 전하기를 이 산이 곧 바다 위에 있는 신선산神仙山 중 하나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는 위치로 볼 때 영모루오롬이 확실하다.

『탐라지』에도 '영주산瀛洲山'으로 기재되어 있고 『탐라순력도』와 『해동지도』 등에도 '영주산瀛洲山'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원래 봉래산, 방장산과 더불어 삼신산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영주산은 정의군 읍성인 성읍마을의 영ᄆᆞ루오롬이 맞는데 이를 신성이 여겨 '영주산'이라 하였으나 ‘영주산’은 본래 한라산의 또 다른 별칭이다.

제주는 일목一牧(제주목), 일군一郡(정의군), 일현一縣(대정현)으로 이루어 졌는데 영ᄆᆞ루는 정의군 소재지 성읍골의 앞오롬이다. 사마천의 중국사기에 ‘삼신산은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이라’ 하였는데 이는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을 말하는 것이다. ‘진나라 시황은 동남동녀 3천을 영주산(한라산)에 보내어 불로초를 캐오게 했는데 이들이 불로초를 캐고 서西쪽으로 귀환歸還한 포구浦口’라 하여 ‘서귀포西歸浦’라는 지명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영모루정상 부근의 살찐 소떼들
▲ 영모루정상 부근의 살찐 소떼들 @뉴스라인제주

영ᄆᆞ루오롬은 말굽형 굼부리(분화구)가 서쪽으로 열려 있지만 어디서 보아도 오름의 모습은 별 차이없어 보인다. 탐방을 시작하는 입구는 서쪽으로 나 있는데 오른쪽 산불감시초소로 가기보다 입구 왼쪽 등성이를 타고 가는 게 더 묘미가 있다. 영ᄆᆞ루는 오롬이 있는 높은 지대인데 그 언덕 끝에 오롬이 있기에 곧 ‘영ᄆᆞ루오롬’인 것이다.

지난 가을, 영ᄆᆞ루를 찾았을 때는 가을꽃들이 만발하였다. 진보랏빛 꽃향유는 꿀풀과로 50~60cm까지 자라는데 제주꽃향유라 해야 할 것이다. 부산-경남 사람들 요리에는 방아, 경북-대구사람들은 산초(제피)를 쓰는 데 만주 조선족들은 향유(내기풀)를 많이 쓴다. 그래서 보신탕, 생선탕에 빠지지 않는 양념이다. 그러나 제주 향유는 향기는 같으나 아주 작아서 같은 종은 아닌 것 같다(동제주지역의 도랑쉬 등지에도 꽤 있다).

영ᄆᆞ루에 피는 연붉은빛 이질풀은 작은 이질풀로 보이는데 육지서 보는 이질풀과 달리 작아서 선이질풀로 보이고 육지종들과 다른 제주이질풀로 옛날에는 이질설사 약으로 사용하였다. 제주 ᄆᆞ쉬(馬牛)떼들은 이질풀을 먹어서인지 물똥을 싸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있어 보인다.

쑥부쟁이는 제주 오름의 가을꽃들 중 하나로 여기서도 흔한데 이따 끔은 연보랏빛 잔대꽃이 보인다. 잔대는 초롱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60~120cm까지 자라는데 백두산 자락에서 봄에 나물로 많이 꺾었었다. 그러나 제주오롬 잔대는 크기가 한 뼘 정도에 지나지 않고 꽃 역시 앙증맞다. 아마도 두메잔디로 보이며 육지에서 나물로 꺾던 잔대와 달리 작고 가늘다.

봄 늦은 5월, 영ᄆᆞ루를 따라 정상을 향하는 비탈진 언덕엔 잔디와 고운 풀들이 가득하다. 때맞추어 피어난 노란 개민들레, 보랏빛 엉컹퀴, 하얀 찔레와 푸른 잎 속에 흰 무더기 꽃을 피우는 가막살나무가 즐겁게 맞는다. 왼쪽으로는 굼부리까지 쭉쭉 뻗은 나무들이 마을목장과 자연스레 경계를 이룬다.

영ᄆᆞ루도 본래는 나무 없는 민둥산으로 영등달에는 테우리(목동)들이 ‘방에불’을 놓았을 것이다. 이는 소피를 빨아먹는 ‘어에(진독/진드기)를 방지하기 위해서 불을 놓았을 것이다. 박정희시대에 목축이 주업인 제주수렵사회를 농경사회인 육지와 같은 정책을 일괄 적용한 결과이다. 이를 알 수 있는 것은 조림된 나무들보다 고목이 된 본디나무들이 없다는 것이다.

영ᄆᆞ르 언덕을 오르는 곳에 핀 찔레꽃무리
▲ 영ᄆᆞ르 언덕을 오르는 곳에 핀 찔레꽃무리 @뉴스라인제주

영ᄆᆞ루오롬 남쪽으로는 성읍1리 마을이 보이고 서북쪽으로는 성읍2리, 북동쪽으로는 활미 마을이 있다. 성읍2리는 고려시대 몽골에서 성산포로 들어 온 말들을 키우는 국마장으로 쓰이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 말 목장은 사라지고 오롬 가득 소 때들 천국이다.

영ᄆᆞ루 언덕 동쪽으로는 풍력발전단지가 보이고 그 너머 푸른빛 밝은 청산오름(일출봉)과 소섬牛島이 보인다. 서남쪽 목재계단을 타고 언덕을 오르노라면 천지는 오직 나와 계단과 하늘뿐이라 마치 천상을 오르는 것 같으니 이 또한 영ᄆᆞ루 만의 체험일 것이다.

영ᄆᆞ루 오롬 북서쪽으로는 성읍1리와 멀지 않은 곳에 표선 앞바다와 민속촌도 보인다. 비로소 정상에 오르면 남서쪽으로 멀리 수많은 새끼 오롬들을 거느린 한라산이 느지막이 보인다. 영ᄆᆞ루오롬 굼부리는 마치 ᄀᆞᆯ채(삼태기)같이 열렸고 굼부리에는 가득 찬 조림 숲이 보인다.

영ᄆᆞ루 동쪽으로는 성읍저수지가 보인다. 이는 제주농어촌공사가 2003년부터 13년간 공사 끝에 완성 한 것이다. 이 저수지는 주위의 다른 오롬에서도 훤히 보이는 제주에서는 보기 드문 큰 저수지이다.

2020년 5월, 서남쪽 하산하는 곳을 수리하고 있었다. 일꾼들은 비 오듯 흘리는 땀을 연신 닦는가 하면 벌컥벌컥 물을 들이키는 이들도 있다. 미안한 마음에 연신 “수고햄수다! 수고햄수다!” 고개 숙여 인사하며 비탈을 내려온다. 낡은 시설은 걷어내고 굵은 목재를 세우고, 목재구멍에 굵은 로프를 끼우고, 바닥을 골라 야자매트를 깔고 있었다.

하산 길에 보니 찔레가 큰 나무를 타고 올라 꽃피운다. 또 하나의 하얀 꽃무리를 본다. 가막살나무가 꽃피는 계절이다. 산림녹화 정책으로 심겨진 조림나무들과 제주산나무들이 함께 숲을 이루고 그 옆으로는 마을묘지가 보인다. 산자가 죽은 자들도 함께 지내는데, 이미 외지인이 50%를 넘기고 있다. 제주는 과연 이 나무들처럼 본지인과 도래인이 공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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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주 2020-08-23 07:39:53
영모루오롬(영주산)은 제주 남동쪽에서는 가장 웅장한 모습이고 특히 등성이의 들꽃들과 목장풍경이 일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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