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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롬이야기](23) 호수 위에 떠 오른 섬처녀 바오롬⦁食山峰
[오롬이야기](23) 호수 위에 떠 오른 섬처녀 바오롬⦁食山峰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20.07.10 22:45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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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주 오롬연구가·JDC오롬메니저
새롭게 밝히는 제주오롬 이야기
초록빛 바다 위에 뜬 섬 같은 바우오롬(오조리 서쪽)
▲ 초록빛 바다 위에 뜬 섬 같은 바우오롬(오조리 서쪽) @뉴스라인제주

성산포에서 오조리를 바라보면 잔잔한 호수에 떠도는 푸른 섬이 보인다. 내해 얕은 물 건너 사철 푸른 피라밋 하나, ‘바우오롬’이다. 지금 보기엔 청청 푸른 솔들이 오롬을 꽉 채워 상상하기 어려우나 나무들이 자라기 전에는 바위산이었다고 한다. 바우오롬은 화산 폭발 시 터지지 않아서 굼부리가 없는 원추형으로 사방 어디서 보아도 그 모양에 크게 다르지 않다.

동네에서는 바위투성이인 이 오롬을 ‘바우오름’이라 불렀는데 줄여서 ‘바오름’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고등학교 시절 오조리에서 1년을 지낸 바 있다. 특히 동네에 있는 해녀 누나들이 얼마나 챙겨 주었는지 모른다. 해녀누나들은 3월까지 제주에서 미역채취가 끝나면 육지로 ‘출가물질’을 떠났다가 추석 때쯤에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누이야 열물 사리엔 몽돌물가로 갈까?/ 삼복 허리 베어서 바닷물에 담글까?/ 고망고망
누이 속 비집던 파도야/ 서럽던 해녀 누이 벌써 해를 버렸는데/ 무정세월 모르고 찰랑
거리는구나/ 나갔던 물 밀물 되어 몽돌 소리치는데/ 청산 두고 육지청산 다녀오마 하
더니// 누이야 나 없는 세월에 홀로 가고 없구나/ 세월을 낚아도 다시 못올 누이야/
나는 홀로 그리워 바다만 바라는데 ~하략 종달해변 고망난 돌에서 「몽돌해변 누이야」 중에서

누나들이 육지서 돌아올 때면 선물을 사가지고 왔다. 겨울에는 목도리를 떠주기도 하여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하였는데 벌써 40~50년 전 이야기다. 귀향 후 누나들을 찾았지만 모두 동네에 없었다. 그 중에 특별히 챙겨주던 누나는 병들어 먼저 세상을 떠났다. 쓸쓸한 마음 나눌 친구들도 모두 고향 떠나 육지로 외국으로 가고 없으니 이젠 머언 옛날얘기다.

바우오름은 성산읍 오조리 313번지 일대에 있다. 오롬의 높이는 해발 60.2m, 비고 55m이니 겨우 바닷물에서 4.8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실제로 태풍이 불고난 뒤 오롬을 바라보면 오롬 자락은 온통 바닷물에 떠 밀려온 부유물을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다.

바우오롬이라 부르게된 바위들
▲ 바우오롬이라 부르게된 바위들 @뉴스라인제주

아주 오래 전 친구들과 바우오롬을 몇 번 올라보았다. 큰 바위들이 곳곳에 박혀 있고 칡넝쿨, 모람넝쿨, 가시덤불이 엉켜서 청산오롬日出峯이나 ᄃᆞ랑쉬오롬月郞峰을 오르는 것과 달리 유쾌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올라보면 동으로 청산오롬日出峯, 서로 ᄆᆞᆯ미오롬, 남으로 ᄃᆞ랑쉬, 북으로는 소섬牛島도 훤히 보여 나쁘지 만은 않았다.

그러나 50년이 지나서 바우오롬을 다시 보니 숙녀처럼 다소곳해져 천양지차다. 계단을 타고 오르니 잠시 정상이다. 정상에는 전망대도 있지만 크게 자란 나무들이 눈앞을 가린다. 숙녀로 자란 바오롬이 내외하듯 속을 보이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말해서일까? 최근에는 어느 정도 나무를 베어내어 이제는 그나마 전망이 트였다.

‘바우오롬’은 식산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옛날 왜놈들이 자주 침입하자 수산진 조방장-이순신은 전라순찰사 이광의 조방장이었고 이순신장군 수하의 조방장은 김완이었다 김완은 꾀를 내어 “바오롬을 낟가리처럼 꾸려서 많은 군사가 주둔한 것처럼 보이자”하여 ‘식량산’처럼 보이게 했다하여 ‘식산봉’이라 불리게 된 사연이 유달산의 노적봉 얘기처럼 전해진다.

바오롬을 오르다보면 지금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주인행세를 하나 본디는 제주산 후박나무, 참식나무, 동백나무, 천선과, 대나무 등이 주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주객이 전도되어 키 큰 나무들 사이에 옹색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 아래는 한 뼘쯤 되는 자금우들이 가득하다.

바우오롬 주변에 눈여겨 볼 것은 노란 무궁화인 ‘황근黃槿’이다. 황근은 동남아 지경 열대수인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 않아 아쉽다. 하도리 바닷가와 평대리 일주도로에도 가로수로 심겨있다. 그러나 이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그나마 바우오롬 자락에 ‘황근자생지’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황근 꽃 피는 갈대밭 너머 바우오롬(오조리 북쪽)
▲ 황근 꽃 피는 갈대밭 너머 바우오롬(오조리 북쪽) @뉴스라인제주

바오롬 늦가을.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기수해역 습지와 돌바퀴에는 황근 잎이 노랗게 빨갛게 단풍 들어 마치 붉은 꽃이 핀 것처럼 곱다. 또한 바우오롬 동녘바다는 국가 내수면 양식장으로 오조리 내해이다. 늦가을 바오롬 주위에 욱어진 갈대숲은 철새 도래지로 수백 철새 때가 노니는 게 장관이다.

바오름 올레길을 따라가면, 아름드리 후박나무, 참식나무와 팽나무와 돈나무, 구럼비나무, 천선과, 우묵사스레피, 보리수넝쿨들이 욱어져 산책길로도 그만이다. 북서쪽으로 나가면 황근자생지이고 주위에는 양배추, 부로콜리, 콜라비 등을 이삭 줍는 재미도 쏠쏠하다. 좌측으로 난 다리를 걷다보면 내해 얕은 돌섬에 황근 단풍이 곱다.

바오롬은 시흥리 멀미오롬서부터 올레 2번 코스를 거쳐서 청산오롬(일출봉) 남쪽 광치기해변까지 돌아가는 길이다. 몇 년 전에 ‘공항 가는 길’이라는 연속극이 촬영되면서 조금 더 알려지고 있다. 또한 청산오롬日出峯을 앵글에 전부 담을 수 있는 곳도 바우오롬이 제격이다.

초록빛 바오롬이 동편 내해에 비치면 오조리 바다도 초록빛이다. 또한 주위 바위섬들도 푸른 솔들이 비치어 초록빛 바다다. 청산오롬에 달이 뜨고 바오롬 앞 내해에 달이 비치면 두 개의 달을 동시에 본다하여 ‘식산쌍월食山双月’이라 하는데 이는 성산10경 중 하나이다.

달뜨던 4월, 고등학교 시절이다. 물 맑은 봄 바다에 배 띄워 노래하던 달밤이 그립다. 바오롬 자락에 세월은 흐르고 어제 같던 그 옛날 오조리 친구들도 누나들도 이제는 모두 가버리고 없다. 아직도 지울 수 없는 한 장 흑백사진처럼 가슴 속에 아련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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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2020-07-13 19:50:34
싯귀도 너무 아름답고 글도 정말 수고 많이 하셔서 쓰셨습니다. 우리 땅의 내력들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귀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김 대니얼 2020-07-12 22:21:40
배 띄어 달 보고 기도하시면
세상 떠난 누나 모습 어른거릴듯 ~~
우리 때의 자화상을 그려보면서
감동으로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박해동 2020-07-12 16:08:07
바우오름에 얽힌 이야기돌 잘 읽었습니다 특히 이 근처에서 물질하셨던 해녀 누님들에 그리움이 녹아있는 장면에서는 읽는 독자의 마음에도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제주의 오름 이야기로 향토 문화와 역사 그리고 문학을 드나들면서 써내시는 글들이 아주 잼나고 유익합니다 차후 향토 자료로도 가지를 인정 받으실 겁니다

임양 이명희 2020-07-11 10:38:21
좋은 글 배람 합니다.
세월도 가 버린 추억만이
남아 있습니다.

제주의 오름 마다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었네요.

정으로 수놓은 인정마다
정겨움이 있습니다.

좋은 글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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