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4-05-02 14:09 (목)
[현태식 칼럼](72) 목 좋은 곳을 찾아
[현태식 칼럼](72) 목 좋은 곳을 찾아
  • 영주일보
  • jeju@newslinejeju.com
  • 승인 2015.11.08 11: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태식 전 제주시의회 의장

 
장사는 목이 좋아야 한다. 목이 나쁘면 문 열고 파리 날린다. 중앙로가 뚫리고 길가에 고층을 짓는 집 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분통을 터뜨렸다. “너희들이 이렇게 거대하고 집을 짓고 뽐내지만 나처럼 가진 것이라곤 맨손바닥이고 건강은 최악이어서 내일일지 모레일지 드러눕는 날 불귀의 객이 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다면 그렇게 거대한 건물을 지으며 뽐낼 수 있나? 까불지마!” 허공에 대고 혼자만 마음 속으로 응어리를 푼다. 그러면서 나도 이 중앙로에 죽기 전에 땅 한 평이라도 만들어놓아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경찰이 더러워서, 지체높은 지사님 관사 곁을 떠야만 살 것이기에.....

그래서 H형과 동업을 청산한 이후로 수년째 중앙로에 점포 자리를 찾아 나섰다. 땅값이 워낙 비싸서 큰 땅은 엄두도 못내고 조그만 점포 하나만이라도 지어야 하는데 그런 곳을 구하지 못하다가, 제주시 이도1동 1410-5번지 72평 땅 중에 일부를 분할해서 팔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32평을 누구와 동업으로 사서 점포를 두 칸 지어 한 칸씩 사용하면 좋겠다고 결론내고 동업자를 구하려고 전도를 누볐다. 이런 작은 땅을 구하기란 하늘에 별따기인데 하면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중앙로를 헤매었다. 중앙로에 살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싶은 굴뚝같은 욕심이 나를 그렇게 움직이도록 했다.

그 당시 중앙로가 새로 확장하면서 교통의 요지로 변했다. 제주의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던 관덕정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특히 자동차 시대가 앞당겨지고 제1횡단도로고 서귀포와 연결된 후 동서로 흐르는 교통현상이 변했다. 서귀포와 제주시로 직결되면서 서문통이나 동문통 바깥쪽은 퇴조하고 중앙로는 제주도의 대동맥을 담당하는 요충 상가로 변하고 있었다. 따라서 사람과 교통수단이 시청 아래 광양을 거쳐 터미널로 연결되고 제주시 중심지로는 중앙로를 통하는 도로를 이용하게 되었다. 결국 중앙로가 인구 집중과 분산의 본마당인 것이다. 여기에 터를 잡으면 제주도 사람을 자연스럽게 다 만나게 되었다. 바로 상권의 목인 것이다. 이 목에 앉아 있으면 제주도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그 동태를 다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사코 이 중앙로에 비집고 들어갈 연구와 노력을 집중한 것이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형제항렬인 현창숙씨는 제주도청 과장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4·3사건에 잃고 어릴 때 홀어머니를 모시고 고생하며 학교 다닐 때부터 나와는 사이좋게 이웃에서 살아왔다. 환경이 불우하여 중학교 졸업하고 몇 년 후에야 고등학교에 간 것도 나와 처지가 비슷하다. 이 형은 부인이 수예점을 신성여중(지금의 중앙성당 앞) 앞에서 하여 비교적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 이 형을 찾아가서 중앙로는 장래성이 있다고 설명하고 땅은 32평짜리를 구할 수 있는데 돈이 없어 혼자 사지 못하겠으니 형님이 나와 같이 사서 점포를 짓고 하나씩 나누어 거기서 장사를 하면 장사가 잘 될 것이라고 이해시켰더니 그러자는 것이었다. 그래놓고는 더 말이 없었다. 싫은 모양이구나. 한 사람이 16평 땅이니 코딱지만 해서 마음 내킬리도 없다 싶어 딴 곳에서 동업자를 구하러 백방으로 노력해도 성사가 안되었다. 하루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래도 친하다는 것이 뭔가. 이렇게 식언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솟구쳐 단걸음에 도청에 가서 창숙 형을 만났다. 만나자마자 속사포처럼 이야기를 꺼냈다. “무슨 이야기를 하면 끝이 분명해야지, 약속을 해놓고 일언반구 말이 없으면 됩니까? 나는 형님을 하늘같이 믿었는데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면 신의는 존재합니까?”

그랬더니 창숙 형은 같이 사자는 것이었다. 그 형은 이미 구 시청(지금의 관덕정 서쪽) 앞 골목에 대지를 구입하고 여관을 지으려고 토신제까지 지내서 착공 직전에 있었지만 공사계획을 취소하고 나와 중앙로 땅을 흥정하러 나섰다. 나와 같이 땅 살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땅 한 평을 거저 주면서라도 이 땅을 사려던 것이 그렇게 안해도 사게 되었다. 땅 주인은 법원 국장을 지낸 강혁방씨였다. 부른 값에서 일원도 깎아주지 않았다. 하루종일 사정해도 돌부처럼 말이 없으니 말하는 사람이 진이 빠지고 제풀에 지친다. 할 수 없이 달라는 금액을 다 주고 샀다. 그래도 기분이 하늘을 날을 것 같았다. 이 땅을 계약한 날은 많은 감회에 젖었다. 얼마 살지 못한다고 단정하고 있었는데, 이제 사업도 번창해지고 가족도 아들 둘 딸 둘로 불어나고 또 제주시 심장부며 가장 번화가인 중앙로에 엉덩이 댈 곳을 마련했으니 어찌 인생역정의 필름이 파노라마처럼 돌아가지 않겠는가? 그런데 집을 지어야 하는데 집 지을 자금이 없다. 그래서 일년 이상을 미루었다. 어쨌든 그렇게 갈망하던 점포자리는 제주시에서 제일 좋은 곳에 마련한 것이다.

땅은 마련했으니 건물을 지어야 한다. 그러러면 돈을 더 벌어야 한다. 돈을 더 벌려면 한층 더 노력해야 한다. 오는 손님에 대하여는 더욱 공손히, 그리고 성실하게 대했다. 물건값을 양심적으로 해서 점점 신용을 쌓고, 고객을 끌어들이는 데 최선을 다했다. 꼭 집을 지어놓아야 하니까.

장사의 비결은 몇 가지 있다. 이것은 내가 장사를 하면서 터득한 사업 철학이다.
첫째는 신용이다. 없을수록 신용을 잃으면 안된다. 무슨 말도 헛되이 하면 안되고 지불할 것은 정확히 약속을 지키고 지키지 못할 것은 사전에 이해를 구해야 한다.

둘째는 자본이다. 아무리 신용을 지켜도 자본력이 약하면 사업을 확대할 수 없다. 투자하고 이익이 생기는 데는 자금을 동원할 수 있어야 한다. 자본력이 약할 때 합자를 하거나 동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도 남다른 신의가 쌓여있어야 가능하다.

셋째는 계획이 치밀하고 때를 잘 선택해야 하며, 시대의 변천을 잘 살펴 앞으로의 전망을 예측해야 한다. 겨울에 여름상품을 개업하는 것처럼 회전기간이 지나치게 오래 기다려야 매상을 올릴 수 있는 사업은 그만한 자금회전이 느린 것을 감당 할 수 있는 계획이 서있어야 하고, 사양길에 들어선 사업은 특수한 수요가 보장되지 않을 경우 손대지 말아야 한다. 상품의 생명이 짧거나 유행에 민감한 사업은 진입과 퇴출계획이 분명하고 과감히 정리하는 결단력을 갖추어야 한다.

넷째 인심이 있어야 한다. 남의 호감을 살만한 인간성을 갖추고, 교양과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 너무 인간미가 없으면 그 집 상품이 아무리 우수해도 업주가 꼴보기 싫어 거저준다 해도 안사겠다고 한다면 그 사업은 실패한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자전거 사업을 하면서 부업 비슷하게 오토바이 부속을 취급하였다. 제주도에 오토바이 부품을 제대로 공급하는 업자가 없고, 오토바이 수리소가 육지에서 소량의 부품을 구입하면 불편하고 단가가 비싸기에 이런 어려움도 해결할 겸해서 오토바이 부품 취급을 부업으로 하였다. 그런데 오토바이 판매업자가 나를 매우 비난하고 심지어 부산 부품상사에까지 악선전을 하였다. 터무니없는 모함에 화가 났지만 그대로 두고 보고 있었다.

제주시에 오토바이 수리업자를 불러다 놓고 나를 내려깔 때는 모두 고소해 하면서 좋다고들 했는데, 어느날 갑자기 나를 모함하던 업자가 오토바이 부속상을 차려놓고 도매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 업자가 오토바이 수리업자들에게 “내 물건을 전적으로 쓰라. 그렇지 않으면 부속을 아주 헐값에 파는 수리소를 만들겠다”면서 차에다 무슨 부품은 얼마라고 써 붙인 광고판을 매달고 제주시를 누비고 다녔다. 이렇게 되자 오토바이 수리업자가 나에게 달려와서 “우리는 그 사람 때문에 장사 다 해먹었다. 정말 그럴 수 있느냐”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서로 배포가 맞을 때는 나를 뒷공론하던 사람들이지만 자기 사업이 위협받게 되어 어쩔줄 몰라 하는 것을 보니 참 안되고 불쌍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타일렀다. “걱정마세요. 내가 다 알지요. 저 사람이 저렇게 하기 전에는 당신네 불러다가 나에 대하여 악선전을 계속 하였는데, 이제는 당신네 밥줄마저 끊겠다고 하니 우습네요. 그러나 세상일이 그렇게 간단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 사람이 저렇게 약자를 다 죽인다고 하지만 부품값을 너무 싸게 해서 수리하면 인건비도 나오지 않으니 자기부터 망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술료라 해서 따로 받아야 하는데 그러면 당신 보다 비싼 값으로 수리해야 하니 소비자에게 거짓말 하는 것이지요. 세상사람이 그 사람의 인간성을 다 알게 되니, 그때는 거기 가서 수리할 사람이 없게 되지요, 장사의 기본은 인심에 있음을 모르고 저런 것입니다. 말이 고우면 두부 사러 갔다가 비지 사고 온다는 옛말이 있는데, 비제기(비지) 값에 두부를 주어도 안사겠다면 두부는 썩는게 아닙니까?”하고 위로해서 돌려보냈다.

그 후부터 수리업자들이 나의 물건을 잘 사가고 그 집에는 잘 드나들지도 않았고, 결국 영세업자 죽이려 했다는 소문 때문에 부속장사는 손을 들게 된 것을 보았다. 나의 물건을 십원짜리라도 사준 사람에겐 정말 따뜻한 감사를 보내고 공손히 받들어야 계속해서 고객이 변함없이 오게 된다. 고객이 드나들면 몇 푼이라도 보태주고 가게 되는 것이다.

“남이 잘되면 나도 잘된다. 그러니 남이 잘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면 나에게도 도움도 주고 이익도 준다” 이런 생각으로 일을 하였다. 제주시에 큰 건설업자는 다 내 고객이 되었는데 그 비결도 별다른데 있지 않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신대로5길 16, 수연빌딩 103호(지층)
  • 대표전화 : 064-745-5670
  • 팩스 : 064-748-5670
  • 긴급 : 010-3698-0889
  • 청소년보호책임자 : 서보기
  • 사업자등록번호 : 616-28-27429
  • 등록번호 : 제주 아 01031
  • 등록일 : 2011-09-16
  • 창간일 : 2011-09-22
  • 법인명 : 뉴스라인제주
  • 제호 : 뉴스라인제주
  • 발행인 : 양대영
  • 편집인 : 양대영
  • 뉴스라인제주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뉴스라인제주.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newslinejeju.com
ND소프트